*칼국수 :청량리 혜성칼국수
그때 그건 아침이었을까 아니면 점심, 그렇지 않았다면 저녁이었을까. 시간이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겠지만 이곳에 와 있었을 그를 떠올리며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조그마한 연고마저 사라진 이 동쪽의 작은 동네를 사방이 무언가로 개발을 준비하는 가림막을 뒤집어쓰고 가려진 틈 사이로 다른 도시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단지 몇 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켜볼 수 있었다. ‘번화’라기보다는 ‘부산’스러운 그 온도나 분위기는 여전해서 별다를 것 없지만(대개 시장통이 그렇듯) 그걸 지켜보고 있는 시선과, 목적이 뚜렷해진 걸음 그리고 자발적이라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은 변함없이 낡아있었다.
물론 달라진 건 그것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었다. 당시에 가봤을지 정확한 기억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나지 않지만 오가던 길에 헤아리기 조차 쉽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버티고 선 그곳에, 오롯이 그곳만을 가기 위해 여기까지 온건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이끌려온 게 아니라면, 처음이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에겐 이 문을 드나드는 일이 시장조사였을지도, 어쩌면 집에서 오가는 일터에 중간쯤에서 한 끼를 든든하게 해결하는 에너지의 전략적 요충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오천 원이면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땀 한번 시원하게 닦아낼 수 있었다고 하니까. 전날까지 얼큰해진 간을 달랬을 수도 있고 요즘과 같은 이열치열의 여름이었을 수도, 아니면 기초화장품도 귀한 그때, 핸드크림은 바르지 않던 그 시절에 쩍쩍 갈라진 손에 담겨 얼어붙은 몸을 녹여줄 한 겨울의 뜨끈한 국물 한 그릇이 되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물을 한 번 떠올려 먹어보곤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어서 자세하고 천천히 한동안 지켜본다면 분명하게 다르지만 그 표정이나 말투, 웃을 때 습관적으로 얼굴을 비스듬하게 돌린다거나 하는 사소하지만 흘릴 수 있는 특징들이 어딘가 조금 닮아있어서 알게 모르게 안정감이 드는 건 단지 이곳으로 오는 동안 조금씩 만들어낸 기대의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어려웠다던 먹을 것 없어가 난 했다는 그 시절의 이야기에는 매일 같이 국수를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말아 올린 면처럼 따라왔다.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비싸니까 만만한 게 닭고기였고 한 번 삶으면 닭죽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을 몇 날 며칠 먹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 멸치 육수보다는 닭 육수로 끓인 칼국수가 맛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던 할아버지의 새하얗게 올라온 수염이 거칠게 움직이던 모습의 질감으로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리곤 이내 오래 참기라도 했다는 듯이 빨간색 뚜껑으로 닫혀있던 소주를 한 잔 따라 입으로 작은 굉음과 함께 투명한 액체는 빨려 들어갔다. 아마도 그 이야기는 살아오면서 셀 수 없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우연히 비교적 최근 그가 젊은 시절 종종 들렀다는 칼국수 가게를 알게 되었고 그게 청량리에 있는 혜성칼국수였다. 본능적으로 발자취 좇아 그곳에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 한산해 보이는 실내 분위기에 이끌릴 세도 없이 테이블에 앉았다. 나이 지긋하신 노인이 조심스레 메뉴를 물어왔다. 느지막하게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진행은 순조로웠다. 김치는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새로 만들어 내 온 것 같은 맛이었고 국물의 깊이란,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다시 차마 알지 못했던 예전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가뒀다. 내공이란 이런 것이구나.
화려한 고명도 아름다운 고급 식기 같은 것이 아니라 세월에 낡고 찌그러져 생체기가 잔뜩 묻어난 은색의 스테인리스 위에 차지도,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물을 한 잔 따라놓고 메뉴판에는 오롯이 한 가지의 만을 고집해 국물의 종류만을 선택할 수 있는 이곳에서, 차분히 기다리게 만드는 고요한 분위기에 무겁지 않은 한 그릇을 쉬이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 호탕한 氣魄(기백)이 느껴졌다. 그때 그 시절 그는 이 자리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칼국수를 한 젓가락 올리면서, 되직하면서도 투명한 국물을 그릇째 들어 올려 털어 넣으면서, 잘 익은 김치를 한 점 입에 넣으면서 대접처럼 보이는 이 스테인리스 물 잔에 물을 따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젠 더 이상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졌지만 말이다.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