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버섯매운탕

*버섯매운탕 :여의도 가양버섯칼국수

by HERMITAGE


가을 한 점이 찍혀있던 여름날이었다. 공존하기로 하는 두 개의 계절, 경쟁할 것 없이 서로 간 순서를 정했지만 먼저고 나중은 없었다. 하늘은 점차 성의 없어 보일 만큼 파랗게만 칠해졌고 전날의 기억이 잔열로 남은 어느 아침이었다. 멀지 않으면서 자유분방한 한적함을 필요했다.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가 고민이었다. 분주함이 사라진 고요한 작은 섬일지, 생색내야 할 때만 붐비는 동네의 여유로움일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간단했고 선택지는 단조로웠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유난히 멀리 갈 수 없는 날이 있다. 쨍한 날씨가 좋아 보여서 질투가 나는 바람에 일단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발목을 잡힌다. 채이는 피로는 무겁고 걸음걸이는 의욕을 떨어트려 보폭을 줄인다. 거기다 머리에 무언가 발라져 있지 않다거나 단단한 옷을 입기에 부담스러운 날엔 더러 그렇다. 너무 오래지 않고 잠시 몸을 실어 보는 정도일 수도 있고 충동적으로 줄지어 달리는 모습을 감상하다 보면 도착할 정도가 좋겠다.


머지않은 곳에 있을 낯선 곳에는 주말이면 알 수 없는 한적함이 밀려왔다. 섬을 가득 채우고 바둑알처럼 움직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횡단보도마저 戰意(전의)를 상실했다. 드문드문 검은 정장 차림에 행렬이 줄지어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잔치가 끝난 후 골목으로 파고들수록 인적은 드물게 변한다. 지금만큼은 그 많은 사람들의 걸음 수 보다 거대한 건물에 난 창의 개수가 더 많겠다. 특정 가게, 어떤 건물, 이제는 상징이 된 그런 곳이 아니라면 적어도 매주 돌아오는 이틀 동안만큼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어렵지 않게 目擊(목격)할 수 있다.


IMG_9306 2.jpg

이제는 수년 전이라 말해도 좋을 그해 어느 날에도 몇 번, 이야기 속에만 있던 장소를 이제야 찾았다. 어쩐지 선택을 주저하는 메뉴는 매번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막상 첫술이 배부르면서도 결정하는 데까지 몇 차례 고민에 빠진다. 어릴 적 먹고 나면 어딘가 허전해서 뜨겁고 빨갛기만 하던 알싸한 기억 때문일까. 이제는 맛있는 공허를 조금은 알게 되어 자리에 앉기만 하면 즐겁다. 진부하기를 넘어선 명성 탓인지 입구는 주말 거리와는 달리 분주했고 붐비면서 치열했다. 웨이팅을 도와주는 키오스크가 사람의 손때를 적잖이 타 세월의 흔적을 엿보는 동안 사람들의 손가락은 바쁘게 연락받을 휴대전화 번호를 눌러댔다. 줄지어 앉은 의자를 사이에 두고 사방에서는 한껏 불을 올리는 열기와 건강을 상징하는 두 가지의 식재료가 사정없이 오르내리고 채우는 과정은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치열했다.


IMG_9316 2.jpg


IMG_9294 2.jpg
IMG_9319 2.jpg

한 여름에는 무더위에 맞서는 보다 강렬한 열기로 보일지도 모르겠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딘가 헛헛해진 빈 공간을 채워주기에 요긴할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고 이 건물을 드나들 땐 미처 모르던 신세계의 입구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냄새는 붉고 투명했으며 탁하지 않아 질리기 어려운 칼칼함이 느껴지는 중이었다. 사방에서 전투적인 움직임이 역동성으로 느껴지면서 덩달아 자리를 들썩들썩하며 가까이 놓인 추가 재료를 계속해서 가져오게 만든다.


IMG_9337 2.jpg

버섯과 미나리, 구워만 먹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식재료를 이곳에는 마녀수프가 될 때까지 끓이기도 하고, 샤브샤브처럼 데쳐 먹기도 한다. 국물의 점성이랄까, 육수를 추가해 초심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빠질 수 없는 탄수화물을 불어넣기도 한다. 화력은 섭섭지 않을 만큼 열기를 더해주고, 밖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이곳의 온도와 풍경은 뜨겁기만 한 열기 가득한 메뉴 위로 차디찬 맥주를 몇 잔 들이켜게 만든다. 자꾸만 추가되는 주황빛의 병을 재차 재촉하는데도 붐비는 와중에 친절과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IMG_9323 2.jpg

붉게 칠한 벽면 사이로 진지하게 쓰여있는 글씨체가 눈에 띈다. 간간이 느껴지는 한 편의 시장통 같은 정겨운 분위기에서 어느 때보다 집중력 높은 시간을 보냈다. 주변으로 둘러앉은 구성원들이 수시로 바뀌어가는 동안 무르익기를 자처하고, 숨을 고르고, 충분한 수분을 있는 힘껏 섭취하는 동안 때 이른 선택의 한적하고 평화로움이 전쟁 같았던 이곳에서부터 여전히 남아있을 고요한 골목 어귀에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너무 늦게 온건 아닐까 하는 어설픈 걱정이 들었다. 언젠가 다시 같은 메뉴를 고민할 때면 주저 없이, 버섯 숨과 미나리 바람을 일으키며 작고 거대한 섬으로 돌아와 그해 자주 다니기를 좋아하던 건물 안에서 치열하게 전화번호를 누르겠다.


IMG_9343 2.jpg


EDITOR

:HERMITAGE

BY_@BIG_BEOM

keyword
이전 03화당신, 거기 있어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