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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Mar 08. 2024

여운까지 탄탄멘이야

명동과 회현역 사이 금산제면소 



아시아 동쪽에 있는 세 나라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슈로 언제나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이지만 그 때문에 묘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구간이 바로 美食(미식)이다. 세 나라가 비슷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나라마다의 개성을 담아 맛과 그릇에 표현해 내는 결과물은 다르다. 탄탄멘이라는 메뉴를 처음 맛 본건 서울 도심 한복판 회현동의 금산제면소는 아니었다. 같은 이름의 메뉴를 처음 주문한 건 막 도착한 도쿄의 어느 날 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중식을 파는 가게였다. 정신없이 날아오던 중에 몇 번의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도 그랬고 늦은 시간에 열려 있는 가게도 별로 없었다. 도시의 맛이 묻어나는 도쿄의 일식을 유난히 좋아하는 데다 현지에 갔으니 일본의 재해석이 들어가 있을 중식을 선택하게 된 흔치 않은 날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날은 어느 나라의 음식 인지보다 숙소로 이동하기 편한 역 주변에서 가장 붐비는 가게였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흔히 말하는 ‘구글지도맛집’으로 불리는 그런 곳이었다.


국적마다의 갖고 있는 맛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진 않아 모호하긴 했지만 이웃나라의 분위기를 나름대로 잘 해석한 메뉴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찬 하나 내어주지 않는 어색한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땐 감칠맛으로 점철된 붉고 기름진 국수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짧게 경험한 여행지에서 스친 탄탄멘은 나중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오래전부터 만들고 즐겨 먹고 있던 일본 음식인 츠케멘과 닮아있다. 



担担面(탄탄멘)은 아주 명확하게 중국의 음식이다. 영어식 표기는 Sichaun Noodles이다. dān dān miàn

(단단몐)이라고 읽는다. 중국의 대표적인 맛. 그 나라의 수많은 맛 중에 가장 잘 표현해 내면서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재료는 주로 고추기름과, 花椒(화쟈오)다. 이 붉고 자극적인 맛에 경험의 유무를 떠나 한국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고는 하지만 이 맛을 뺀 중국음식은 생각해 볼 수 없다. 입속에서는 언뜻 맵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극적이면서 얼얼하여 단순하게 그냥 맵기만 한 맛은 아니다. 한국의 청양고추가 주는 매운맛이 복싱에서 훅처럼 짧지만 굵게 치는 ‘강타’ 라면 중국의 화쟈오는 씹을 때마다 입속의 빈 공간을 찾아 여러 번 되받아치는 카운터’다. 복합적인 맛을 직관적이지 않다고 해석할지도 모르겠다. 


카운터’ 펀치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입속에 자극을 기다리는 작은 심지들이 터지기 폭발직전의 폭죽처럼 불타고 있는 느낌을 상상해 보면 된다. 언제일지도 모르지만 결코 터지지 않은 채로 이미 한 번 이상은 터진 것 같은 알싸한 여운이다. 한동안은 *도삭면에 푹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탄탄멘을 맛보면 가본 적 없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큰 나라였는지를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된다. 그만큼 전혀 다른 매력과 인상이다.


*도삭면은 탄탄멘처럼 중국의 대표적인 면요리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맛보기 전에 탄탄멘의 고향을 알게 된 건 뉴스나 신문에서부터였을 것이다. 쓰촨은 한국에서는 사천이라는 표현으로 맵거나 붉은 이미지의 맛으로 더 익숙한 지역으로 탄탄멘의 고향이자 대표 음식 중 하나다. 쓰촨을 직접 방문해 본 적은 없지만 회현동의 금산 제면소에서 경험한 탄탄멘은 비슷해 보이는 면 요리임에도 국적이 확실히 다르다. 한국식 재해석을 최소화하고 중식만이 갖고 있는 매력을 최대한 보여주되 자극적이기만 할 수 있는 맛을 살짝 빗겨나가 배려하는 노력까지 느껴진다. 


서울 안에서도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곳 중에 하나인 중구에서 중심에서는 조금 떨어진 골목에 아주 조용히 잘 익은 면 위에 녹진한 소스를 부어 최소한의 양념과 소스로 극대화된 맛을 보여준다. 주문하고 나온 탄탄멘의 주재료를 메뉴판의 간략하게 적힌 설명과 함께 찬찬히 살펴보면 구체적인 맛 설명에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이런 조합으로 탄생한 음식은 끝이 고소하면서 살짝 시큰하다가 이국적인 느낌이 들만큼 낯선 고유의 얼큰함을 경험한다. 쉽게 출구를 찾기 어려워 보이는 묘한 매력에 중독되는 시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한 번씩 씁쓸해지는 입맛에 자극이 필요하거나 무심결에 생각나는 날엔 먹고 있지 않아도 입안으로 코팅되는 맛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코를 간지럽히는 매콤한 기침과 함께.




EDITOR

:HERMITAGE

DAYTRIP_

BY_@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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