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교집 성수점
냉동 삼겹살의 鄕愁 (향수)는 어릴 적 외갓집 옥상에서 할아버지가 구워주시던 얇게 썰어 대패 보다 조금 더 두꺼운 돼지고기구이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냉삼이라는 단어를 유행처럼 사용하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저녁 ‘밥 한잔’ 하기 좋은 단골 메뉴였으리라. 이른 저녁부터 하루 종일 잘 들어온 볕 덕분에 적당히 달궈진 옥상 바닥 위에 돗자리를 깔고 고깃기름이 궤적으로 튄 자리는 오랜 시간 퇴적된 기름때가 더 이상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부루스타’를 올리고 기름은 한쪽 방향으로 기울여야 작은 구멍으로 떨어트릴 수 있는 코팅은 좀 벗겨져있고 사용감이 확실한 구이용 판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기름 떨어지는 구멍 아래로 종이컵을 넘어지지 않게 잘 받쳐둔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얇게 썰린, 살짝 얼어 있는 선홍색 핑크빛의 셔벗 같은 고기들을 한 점씩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며 굽던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지금처럼 반주를 할 순 없었지만 반주를 하는 어른들을 관찰하며 마성의 조합을 지켜보기만 하던 기억만 얼핏 남았다. 한창 냉삼이 유행하던 시기엔 유행을 좇지 않았다. 기왕에 먹는 고기, 말하자면 ‘제주도’ 스타일에 길들여져있다 보니 두껍게 썬 고기의 식감을 좋아할 뿐 아니라 ‘멜젓’이나 ‘갈치속젓’의 유무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작은 스테인리스 종지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을 수 없다면 허전함이 밀려왔다. 마침 사무실 근처에 있는 잠수교집을 누군가 예쁘게 찍어 놓은 饌(찬) 사진에 이끌려 방문했을 때 비로소 냉삼을 알게 되었다. 냉삼과 소주의 궁합은 일종의 세계관(점잖은 식사)을 파괴하는 치트키 같은 것이었음을.
성수점과 압구정, 여의도를 비롯해 여러 곳을 여러 번 방문했다. 이미 서울 곳곳에 여러 지점이 생겼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잠수교라는 이름이 익숙해졌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 나름대로 초반이었던 그때 가게의 첫인상은 젊은 감각의 사장님이 ‘작정’하고 준비한듯한 빼곡한 구성, 그동안 무수히 많은 고깃집을 다니며 가려운 곳들을 모아 한꺼번에 긁어주는 기분 들었다. 제대로 준비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있는 곳엔 있고 없을 땐 볼 수 없는 소주 선택지의 폭도 한층 넓다. 그래서 가장 만족스러운 두 가지를 꼽으라면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젓갈을 체험할 수 있는 쌈장과 명란을 섞어서 만든 명품명란쌈장과 부산의 소주 대선을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기는 거들 뿐이었다. 이미 두 가지 사실만으로 취향은 자극당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서도 다음의 재방문을 떠올릴 만큼 매력적이다. 번들해진 입을 닦고 그만큼 기름 튀는 동안 숨겨 뒀던 옷에선 육향의 여운이 남았지만 아쉬움 없는 선택이다. 어린 시절 가정집에서 한 번씩 목격되던 동그란 오봉 트레이를 가득 채워 나오는 기본 찬 구성은 환상적일 만큼 재밌고(그중에 선 특히 돼지기름에 구워도 먹는 계란말이가 귀여웠다) 메뉴판 주변으로 투박하게 붙은 벽보처럼 추가 주문용 메뉴들이 있는데 파김치나 청국장 같은 다채로움을 더한 라인업이었다. 재사용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회수되지 않아 단종되었다는 전설의 델몬트 오렌지주스 공병에 그 시절의 향수가 적절히 자극되는 ‘보리물’을 담아 마시는 동안 '옛날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만족하고도 또 얼큰해질 때까지 소주 한잔 기울이게 만드는 곳이다.
EDITOR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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