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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공무원의 파견근무 이야기

by 라미 Mar 29. 2025

저는 작년부터 세종의 모 부처에서 파견근무 중입니다. 1년간의 파견 기간 중에 어느새 거의 10개월 정도가 지나 버렸네요. 파견근무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직을 하지 않고도 다른 회사에서 근무해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파견을 갔다가 그 기관이 마음에 들면 전입을 하시는 분들도 종종 봐 왔습니다.


저도 원 소속기관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여기보다 좋은 회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파견근무를 통해서 그런 아쉬움이 대부분 해소된 게 기쁩니다. 파견기관도 나름의 장점이 있는 회사이지만, 원 소속기관이 좀더 저에게 맞는 곳이라는 확신이 시간이 갈수록 들었거든요.


파견근무는 공무원에게 상당히 흔한 기회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파견근무를 와서 느낀 점 일부를 공유해 보려고 해요.




제가 파견을 왔을 때 많은 분들이 파견근무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시곤 했습니다. 저는 항상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좀더 좋은 대답이 없을까 고민을 해 봤는데, 제가 파견을 온 이유는 그게 전부여서 달리 드릴 말씀이 없더라구요.


파견기관은 많은 면에서 원 소속기관과 달랐습니다. 저는 원래 처/청/위원회라고 부르는 작은 부처에 있다가 현재는 소위 대형부처라고 말하는 부 단위의 기관에 파견을 와 있는 상태인데, 확실히 업무의 스케일이나 산하기관의 규모, 지원 수준이 많이 달랐습니다. 업무량도 훨씬 많지만, 여러 산하기관에서 실무적인 일들을 대부분 도와주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전 기관에서는 공무원이 가내 수공업을 했다면, 현 기관에서는 기계를 통해 자동화하여 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 부처에서 'OO 종합계획'을 세울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거의 제가 자료를 찾고 생각해낸 내용으로 보고서를 썼었습니다.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부족한 채로 작성한 내용이라 제가 보기에도 부족함이 많았지만, 과장님과 상의해서 어찌저찌 계획을 완성했었습니다.


현 부처에서도 그런 계획을 세우는 업무를 많이 하는데요, 이 곳에서는 먼저 '전문가 워킹그룹'부터 구성을 한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산하기관을 통해 관련 산학연 전문가를 모아서 해당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워킹그룹을 만들더라구요. 예전에 저도 이런 방법을 썼더라면 훨씬 더 내실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이런 업무 방식을 배워갈 수 있어서 파견근무를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형부처일수록 상대적으로 국민적인 관심이 높은 분야를 다루다 보니, 언론에 업무 관련 기사가 실리는 일도 많고 외부에서 업무 관련 소위 '시어머니 짓'을 하는 일이 많더라구요.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가 내려와서 과장님과 동료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너무 템포가 빠르다는 점도 단점이었습니다. 도와주는 손발이 많아서 그런지, '이틀 후에 장/차관 행사를 당장 준비해라' 등의, 예전 기관이었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지시들이 실제로 내려오고 실현이 되더라구요. 빨리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이틀 후에 장관님 행사를 준비하려면 먼저 산하기관에 연락하고, '급에 맞는' 주요인사들을 급히 섭외해서 모양새 있게 배치를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은 직접 뛰어다니지는 않더라도 전화를 붙잡고 '정말 죄송하지만...' 하면서 호소하고 짧은 시간 준비하느라 빠뜨린 것은 없는지 행사 끝날 때까지 마음을 졸여야 하. 현장에서 직접 행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의 고생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윗분들의 호기심 해소 정도인 일에 왜 이런 난리를 피워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최근 나름의 이슈가 되었던, 노한동 작가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 더 잘 나와 있습니다. 파견 나와서 그 책을 읽으면서 구구절절이 공감이 안 가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대형부처일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인지 비효율도 커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런 부분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파견을 나올 때는 최대 2년까지 연장을 할 생각도 있었지만, 종합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원 소속기관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1년간의 파견 생활을 마무리하고 곧 복귀하려고 합니다.


파견근무를 와서 훌륭한 동료들과 과장님, 업무를 할 때 도와주시는 기관과 전문가 분들을 만나 배운 게 많습니다. 저희 과의 총괄 사무관님께도 배운 게 많은데요. 업무를 진정성 있게 하면서 상사에게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과장님 눈치만 보면서 주관 없이 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반성하게 되더라구요. 저도 돌아가면 머지않아 총괄 역할을 하게 될 텐데, 파견와서 본 사무관님의 모습이 자주 생각날 것 같습니다.




파견을 와서 세종시에도 살아 보고, 새로 느끼고 배운 게 많아 좋기도 했고, 이따금은 여기 사람들에 비해 제가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기 와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 많은 만큼, 1년 전에 기를 내어서 파견근무에 지원한 저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혹시 파견근무를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저는 꼭 추천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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