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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Feb 21. 2024

56살 먹은 황태가 해장국이 되었다는구나

무교동 북어국집


서울 시청을 지나 광화문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골목 한 켠 음식점 앞에 길게 늘어서있는 대기 줄을 심심치 않게 본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자주 다니는 우리 가족은 근방에 유난히 줄이 긴 음식점들을 지나칠 때마다 얼마나 맛이 있기에 볼 때마다 시간과 날씨 상관없이 매번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건지 매우 궁금했다. 단순히 맛집으로 유명해져서일까? 날씨가 쌀쌀하고 추운 계절이니 따뜻한 국물요리를 더 먹고 싶어 지는 게 당연지사. 그렇게 무심코 지나며 보던 대기 줄에 우리도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특별한 약속이나 일이 없는 날 우리 가족은 광화문으로 간다. 교보문고 그중에서도 광화문 지점에 머무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 날이 좋을 땐 책을 실컷 읽고 나서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아래 위치한 박물관에서 종종 놀곤 한다. 여름에는 광화문광장에 수영장이 있고 겨울에는 서울시청 앞에 스케이트장이 있어 좋은 행사에 우리도 살짝 한번 발을 담가 본다. ’을지로에서 광화문으로 다시 종로를 거쳐 동대문으로‘ 같은 경로로 자주 걸어 다니다 보면 먹게 되는 음식들이 매번 비슷했다. 자주 먹었던 음식보다 먹지 않았던 새로운 먹거리, 인기 있다는 식당을 찾는 게 요즘 남편의 취미생활 중 하나가 되었다.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한번 먹어보러 가자는 남편의 설득에 ‘무슨 ’황태해장국을 서울에서 먹어? 황태는 강원도 가서 먹는 거잖아?‘, ‘무교동은 낙지가 제맛 아닌가’라는 마음속 의사 표시를 고이 접어 다시 안으로 넣어둔다. ‘인기 있는 음식인데 우리도 한 번 먹어봐야지!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보러 가보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설 만큼 얼마나 맛있을까 줄을 서서 기다리며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생각보다 빠른 회전율에 대기 시간이 길지 않음에 감사하며 기다리는 내내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아이들을 말려가며 그렇게 차례를 기다렸다. 아이들 모두 맛있다를 연발하며 1인 1그릇을 클리어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먹는 음식이 한정되어 있고 양도 적은 막내가 맛있다며 한 그릇 다 먹을 때의 뿌듯함이란! 우리 부부에게는 막내가 맛있게 잘 먹는 음식점이 최고의 맛집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밥 한 그릇 더 먹어도 되냐고 묻는 먹성 좋은 큰아들. 그렇게 즐겁고 맛있게 먹다 보니 옆 테이블에 놓여있는 계란 프라이!!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알고 보니 개당 500원만 내면 프라이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 뒤늦게 알고 다음에는 꼭 달걀프라이도 시키자고 다짐을 하고 돌아왔던 아쉬움! 아이들을 스케이트 태운다고 추운 야외서 달달 떨던 몸을 움직여 그 한을 풀어보려 다시 간 맛집! 바로 1968년부터 56년 전통을 이어온 무교동 북어국집 이다.





조금 쌀쌀한 날씨에 아이들 스케이트를 태우고 나니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아이들과 남편은 스케이트 타는 걸 기다리며 사진을 찍어주느라 꽁꽁 몸이 얼어갔다. 아침에 일찍 먹고 나왔는데 시계가 벌써 1시가 되어가니 아이들도 배가 고프다 아우성이고 우리도 출출하면서 몸도 으슬으슬한 느낌이다. 추운 날씨 탓이었는지 아이들의 머릿속에 따뜻한 국물이 생각났다보다. ‘엄마 그 북어국집 있잖아. 거기 가요! 계란도 꼭 시키고!“. 역시 이런 건 기억을 잘하는 아이들이다. 남편도 나도 거리도 가깝고 이런 날씨에 안성맞춤인 따뜻한 황태해장국을 먹으러 슬슬 걸어 서울 시청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 도착했다.


<문 앞 선반에서 포장순서를 기다리는 음식들, 주문이 들어오면 굉장히 빠르게 음식을 준비해주는 식당 입구>



식당 문을 들어가면 한쪽에 위치한 선반은 포장해 가는 손님들의 음식들이 봉지봉지 쌓여 데려갈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끊임없이 주문을 받고 포장을 하고 서빙을 하느라 바쁜 주방과 홀을 구경하며 기다리면 빈자리로 안내해 주신다. 테이블로 가면서 보이는 다른 테이블의 그릇들을 힐끔 거리게 된다. 고픈배를 달래며 들어왔기에 이미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보이면 왠지 배가 더 고파지는 기분이 랄까? 이곳은 메뉴가 단일이라 오랜 시간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식구가 넷이라 “4개 주세요!” 주문을 하니 아이들이 따라 외친다 “알 4개도 주세요!” 북엇국집만의 언어인 ‘알’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으면 손님이 “계란 프라이 0개 주세요” 하거나 ’ 프라이되죠? 0개요‘주문하면 직원분은 주방을 보고 크게 외친다 ”여기 알 00개! “ 드디어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프라이까지 시켰으니 우리의 해장국을 기다려 볼까?



<밑반찬은 손님이 없을 때 뺴서 가져가고 홀을 깨끗이 정리한다>



손님이 한차례 빠져나간 공간은 열심히 청소되고 있었다. 테이블 가운데 빈 공간에는 손님이 들어오면 반찬 3종세트가 들어있는 통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부추무침과 배추김치 그리고 오이지무침이다. 반찬이 3가지 다 어찌나 맛있는지 밥을 먹는 내내 또 꺼내고 또 꺼내먹는 아이들. 큰 아이는 오이지무침을 막내는 김치를 너무 맛있게 먹고 우리는 역시 부추무침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반찬의 무한 셀프 리필이 이동하지 않고 자리에서 가능한 건 여기서 처음 본다. 정갈하고 맛있는 밑반찬 3종은 황태해장과 먹기 안성맞춤! 식사를 끝내고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직원들이 깨끗이 정리하고 청소한다. 매번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어도 깨끗함을 유지하는 식당의 비결인가 보다






국밥은 밥을 말아서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개인 식성 취향을 고려해 따로 주는 게 일반적이다. 하얀 쌀밥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하얀 밥!' 뽀얀 황태해장국 국물에 귀엽고 길쭉한 두부가 송송 들어가 있다. 어느 정도 간이 되어있어 그냥 먹어도 좋은데 우리 집 남자들은 제공되는 새우젓을 넣어 취향껏 간을 맞춘 뒤 먹는다. 밥과 국 물김치는 인원에 맞게 제공되는데 입 짧은 둘째는 조금밖에 못 먹는 물김치. 대신 아빠가 물김치 귀신이라 다 먹어치운다. 직원분들은 마스크를 쓰는 건 많이 봤어도 장갑까지 끼고 하나하나 서빙해 주시는 장면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맛있어 보이는 황태해장국의 비쥬얼, sunny side up 알>



드디어 황태 해장국 등장이요! 곧이어 알도 개수대로 출석 완료! 계란을 들여다보던 막내가 외친다.

“엄마 내가 원하는 계란이 이런 거야! 우리 집은 프라이를 하면 앞뒤로 다 구워서 노른자는 색이 이렇게 안 나오잖아! 내 취향은 이런 sunny side up 이라니까! “

‘니 손으로 해 먹어라’ 하고 싶었으나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엄마는 교양 있는 척 말해본다. “우리 아가 취향을 몰랐네! 다음부터 sunny side up으로 만들어 줄게! “ 하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습관처럼 계란을 휘딱 뒤집고 마는 건 일부러가 아닌데 말이다.


따뜻한 국물을 먼저 맛보는 사람부터 밥부터 국물에 쑹덩 넣고 푹푹 말고 퍼먹는 사람까지 가족들 각자의 취향껏 맛있게 먹어본다. 사실 배가 고프면 전투적으로 먹는 집이라 아이들 반찬이나 부족해 보이는걸 더 챙기다 보면 언제나 식사가 늦는 엄마를 걱정하는 건 언제나 장남. 오늘도 식사하다 멈춰서 한 마디 건네신다.

“엄마 알아서 먹게 두고 얼른 드세요!”



tip. 이번에 다녀오고 다시 안 사실! 밥과 북어해장국은 무료 리필 가능합니다! 부족하면 리필해서 한 그릇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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