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월급과 아이들 성적만 안 오르고 다른 건 다 오른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우스개로 하는 빈말이 아니다. 내려갈 줄 모르고 계속 고공행진 중인 물가에 웬만한 음식은 한 그릇 주문하려면 만원을 넘기가 일쑤여서 가족 다 같이 외식을 하려고 하면 메뉴별 음식 값부터 계산하게 된다. 광장시장에서 파는 육회와 낙지 탕탕이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매번 같은 음식만 먹이는 것보다 다른 메뉴를 먹이고 싶어 하던 남편이 “서울에 3천 원 짜장면 집이 있대! 가볼래?”묻는다. 폭발 중인 고물가시대 한 끼 외식하려면 인당 만원은 잡아야 하는 게 현실인데 서울 한복판에 3천 원대 자장면이 있다면 누가 믿을까? 갑자기 신이 난다. “당장 가보자! 멀 물어봐!” 그러자 남편이 약간은 작아진 목소리로 자신의 모니터를 가르치며 말한다. “근데, 니가 싫어할 수도 있어서. 아주 깨끗한 식당이 아니라 오래되고 조금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 워낙 식당 위생과 조리실의 상태 같은데 많이 예민하지라 남편이 눈치를 보며 사진을 보여준다. 가격이 싸서 맛이 궁금한데 사진으로 보이는 식당 모습은 영 가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과연 가격만 보고 시설쯤은 모르는 척 갈 것인가 고민을 거듭하는데 남편과 큰 아들이 가고 싶다며 한 번 가서 먹어보면 어떠냐고 둘이 한 달을 졸라대기에 한번 가 보자고 결심을 했다. ‘한 번 먹으러 가보자. 그렇게 저렴하고 맛있다는데 궁금하긴 하다!’ 사실 아가씨 때는 예쁘고 깨끗하고 분위기 있는 음식점만 가고 싶었다면 나이가 들어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가끔은 조금 허름한 식당이라도 가성비 맛집을 다니기도 한다. 남편이나 아이들까지 가는 걸 꺼려한다면 가볼 일이 없겠지만 나 말고는 그런 환경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세 남자 덕분에 드디어 가보기로 결정! 이동하며 궁금해서 가게에 대해 찾아보니 방산 시장의 상인들을 위해 저렴하게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는 것 같은데 이유가 어쨌든 싸고 맛있어서 가성비 최고라니 점점 더 맛이 궁금하다. 모두가 짜장면을 외칠 때 나는 언제나 그렇듯 짜장면보다는 짬뽕이, 면보다는 밥이다! 아이들은 항상 나를 위해 중국요리를 먹으러 갈 때면 불러주는 노래가 있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짬뽕밥이 좋다고 하셨어!” 이런 재미없는 아재개그는 다 아빠 탓이다.
막상 가게 앞에 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안에 자리가 없어서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앞에 먼저 오신 아저씨말씀을 듣고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가게 바로 앞이 길 가다 보니 차나 오토바이가 자주 지나가서 아이들이 튀어나갈까 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긴 한다. 점심시간 치고는 대기 줄은 짧은데 안에 손님들이 많이 계신 건지 좀처럼 나오는 사람도 없고 가게로 들어가질 못한다. 일부러 시간을 맞춘 건 아닌데 점심시간이어서인지 좀 붐비나 싶었다. 아이들은 점점 지루해져 가기 시작한다. 배가 항상 고픈 장남과 다리가 항상 아픈 막내의 징징 컬래버레이션을 꿋꿋하게 견뎌가며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거 같은데 수시로 가게 문을 열며 내부의 동태를 살피던 남편이 들어오란다. 먼저 들어간 남편과 아이들을 따라 들어가 본 식당 내부는 놀라움 그 차제였다. 좁고 긴 통로를 따라 펼쳐진 테이블과 의자들로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더 좁고 협소했다. 겨울이라 옷도 두터운데 내 상징보부상 가방까지 지고 다니니 편하게 앉거나 짐을 내려두기도 사실 힘들었다. 다 먹은 손님이 나가고 테이블이 치워지면 앉는 게 아니라 다 먹은 손님이 일어나려 하면 일단 들어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것도 인원에 맞춰 주인아주머니가 앉으라는 곳에 앉아서 주문을 해야 한다. 아주머니의 카리스마에 말을 잘 듣는 손님들을 보니 재미있는 장면이다. 그렇게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생각해 두었던 메뉴를 주문부터 재빠르게 해 본다.
메뉴는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았다. 상호명은 분식이나 분식메뉴는 없다. 처음 이 집을 알았을 때는 자장면이 3000원이었는데. 물가가 오른 탓인가 고새 300원이 올라 있었다. 그래도 자장면 곱빼기를 어디 가서 3500원에 먹는단 말인가? 메뉴가 다양해서 결정장애가 심한 막내가 메뉴 선정에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다. 역시나 남편과 큰 아들은 간짜장면 곱빼기를 외쳤고 나는 최애 짬뽕밥을 골랐다. 막내는 볶음밥과 계란덮밥, 고기덮밥 중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최종 결정은 ‘고기 덮밥’으로 정했다. 잡채를 좋아하는 아이라 잡채밥은 어떠냐고 권해봤지만 오늘은 별로 안 먹고 싶다고 단칼에 거절한다. 엄마가 조금 얻어먹어보려 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냉정하긴.
처음 테이블에 앉으면 주시는 따뜻한 보리차와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와 단무지가 기본으로 차려지는 전부이다. 이곳은 셀프가 아닌 직원 아주머니가 그릇에 담아 테이블에 직접 가져다주신다. 주문이나 결제도 앉은자리에서 혼자 하고 물이나 반찬 등은 알아서 가져다 먹는 일이 일반적이다 보니 물도 컵에 담아서 서빙해 주시는 모습이 새삼 신기했다. 열이 많은 장남은 차가운 냉수를 외쳤는데 냉수만큼은 근처 정수기에서 직접 떠먹어야 했다. 식당 내부와 자리들 사이가 좁다 보니 앞사람이 물을 뜨고 지나가면 다음 사람이 들어가서 물을 받아야 했다. 워낙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사람들이 서로서로 양보하고 비켜가며 별 불만 없이 맛있고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들이었다.
제일 먼저 테이블에 도착한 건 간짜장! 일단 비주얼이 살아있는 찐이다!! 항상 중국집에 가서 아이들이 짜장면을 시키면 짜장 소스 위에 면이 담긴 채로 나왔는데 간짜장을 시키니 그 자리에서 볶아진 자장 양념이 먼저 나오고 나서 면이 뒤이어 따로 나왔다. 일단 둘을 섞기 전에 짜장 소스부터 한 입 먹어보자. 짜장면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짜장소스는 너무 좋아한다. 음식 주인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한 숟갈 입에 넣고 씹으니 짭짤하고 고소한 짜장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드디어 나온 나의 짬뽕밥! 받자마자 내가 알던 짬뽕의 모습이 아니어서 잠시 멈칫했다. 빨간 국물에 가득 든 계란만 보이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주문을 잘못했나 하고 숟가락을 국물 깊이 넣어 떠보니 국물 안쪽에서 헤엄치고 있는 채소와 오징어들을 잡아낼 수 있었다. 밥을 국물에 말지 않고 따로 주는 것도 너무 좋았다. 국물에 밥이 말아져 나오면 왠지 남이 먹던 음식 먹는 기분이라 먹기 싫어진다. 아이들도 짬뽕국물을 좋아하는지라 많이 맵지 않아 그런지 아이들이 계속 국물을 퍼서 먹는다. 그때 큰 아들이 쳐다보며 “엄마 나랑 바꿔 먹을래?”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니 난 짜장면 보다 이게 더 좋거든? “ 그러자 막내가 형을 보며 ”형 이거 너무 많아 나랑 바꿔먹자! “ 장남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형이랑 같이 먹자. “ ”고마워 형“ 이럴 때 보면 우애가 참 남다른 형제 같구나?
막내가 고른 고기 덮밥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 다른 모습의 덮밥이었다. 약간 고추잡채처럼 고기와 야채를 볶아 볶음밥처럼 나올 줄 았았는데 예상을 깨고 약간은 제육볶음의 느낌이 나는 붉은빛이 영롱하게 볶아진 고기와 야채의 조화로운 모습이 밥 위에 촤라락 펼쳐져 있었다. 역시 매콤한 덮밥에는 계란국물이 국룰이다! 그런데 덮밥양이 상당하다. 이 정도면 큰 애가 먹을 양인데 뱃고래가 적은 막내는 반도 못 먹고 배가 터진다고 난리. 어쩔 수 없다 배가 넉넉한 큰 아들과 내가 구원투수로 나설 수밖에.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싹싹 긁어서 배가 터져나가게 맛있게 먹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가게 안부터 밖에까지 줄이 늘어서서 우리가 들어오기 전보다 훨씬 많아진 대기인원에 깜짝 놀랐다. 맛집은 맛집이구나!
메뉴 중에서 비싼 걸로 골라 먹었는데도 4명 가족이 먹은 음식값은 2만 원을 넘지 않았다. 단, 현금을 준비해서 계산해야 한다.사진을 보고 미리 걱정한 것과 달리 처음 가게의 모습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지만 가게 내부는 오래된 느낌은 있어도 지저분하거나 음식을 먹기 불편하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음식이 모두 맛있었고 양이 많아서 저렴한 가격에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종로나 청계천 쪽으로 약속이 생기거나 방문할 일이 생기면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한 끼를 위해 방문해 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