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 스테이크는 어릴 때 엄마를 따라 종로에 한 경양식 집에서 먹어본 고급 요리로만 머리에 기억된 추억의 음식이다. 넓고 큰 경양식집에서 맛있고 따끈한 스프를 주면 입맛을 싸악 돋은 후 일명 ‘칼질’을 하여 고기를 쓱싹쓱싹 썰어 포크로 콕 집어 먹고 있으면 귀족이나 공주가 된 듯 어깨가 뿜뿜 하던 꼬꼬마 시절이 있었다. 자라면서 특별히 함박스테이크를 사 먹거나 만들어 먹지 않아 한동안 잊고 살던 음식이었다.
큰 아이가 어릴 때 많이 아프고 작았던지라 아이에게 먹이기 위해 요리도 못하는 내가 함박스테이크를 집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요리를 좋아하고 레시피 공유를 좋아하는 지인이 어린아이에게 먹이기 쉬운 음식이라고 추천을 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일정비율로 갈아서 사 오고 계란과 빵가루 등을 섞어 패티를 만들고 소스를 만들어 패티 위에 얹어주면 완성인 간단해 보이는 요리였다. 직접 만들어보니 일일이 재료들을 적당량 덜어서 섞어 고기를 익히고 소스를 만드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 요리는 나랑 안 맞아를 속으로 외쳤다. 처음 만들었던 날 아이가 앉은자리에서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먹고 그릇을 들어 소스를 더 먹어보고자 입에 접시를 넣는 걸 보고 너무 기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 이후로 아이가 먹고 싶다 부탁하면 만들어 주곤 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엄마생활이 힘들어 함박도 가끔 만들다 기성품을 샀더니 아이들이 맛이 없다며 안 먹었다. 아무거나 잘 먹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니?
<직접 만든 함박, 잘 먹던 장남 쪼고미시절>
작년 겨울 남편이 가고 싶다고 해서 따라나섰던 식당이 있었다. 함박스테이크는 집에서도 맛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 굳이 멀리까지 사 먹으러 가자고 한다. 왜? 싶었다. 그렇지만 어디 가자고 하면 또 신이 나서 따라나서는 사람은 바로 나! 한참을 차를 타고 달리다 보니 생각보다 우리 집에서는 거리가 꽤 멀다 싶었는데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 아닌가.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대학들이 가는 길에 줄줄이 보이니 아이들에게 대학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기사식당들이 즐비한 골목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데 언제 가든 어떤 시간에 가도 항상 가게 앞은 기다리는 손님들로 항상 줄을 서있다.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의자도 준비되어 있어 순서대로 앉거나 서서 기다리면 손님이 나가는 대로 들어오라며 순서를 불러준다. 작년에 갔을 때도 날씨가 조금 쌀쌀했었는데 이번에는 살살 눈발도 날리며 찬바람이 불어서 아이들이 추워했다. 앉아있기가 추운지 둘 다 일어서서 달리기도 해 보고 제자리 뛰기도 해 보면서 추위를 이겨보려는 모습이 귀여웠지만 진정시켜야지. “가만히 안 있으면 점심 없다.”
순서가 된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어느샌가 뒤에 또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고 있다. 이러니 대기 줄이 줄지 않고 계속 늘어나는 거지. 줄을 서있다 보면 슬슬 심심해지기 시작하니 주변 건물들이나 식당들도 쓱 흝어보는 큰 아이. “엄마! 여기 주변이 다 기사식당 들인데요!” 처음 왔을 때 한 두 개는 본 것 같은데 여기저기 보이는 식당들 간판을 보니 큰 아이 말이 맞구나! 주변을 둘러본 후 다시 함박스텍 가게 창문에 붙어있는 다양한 설명들을 읽어본다. 운영 시간 안내, 대기 안내, 음식 가격도 크게 붙어있다. 가게 주변 골목이 식당이다 보니 주차선이 있는데 운이 좋으면 식당 앞에 주차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아쉽게도 건너편 공영주차장이나 근처 주차장을 이용했다. 물론 공영이라 저렴한 편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미리 정해놓은 메뉴로 주문!
생선가스를 가장 좋아하는 1인이라 마음에 품고 있다 들어가자마자 주문하려는데 직원분이 옆테이블 손님에게 “생선가스는 이미 품절입니다.” 결국 난 매운 함박스텍으로 종목을 변경해야 했다. 많이 먹고 싶다는 아빠와 큰아들은 함박스텍과 돈까스를 곱빼기로 시킨다. “막내는 양도 적은데 굳이 왜 곱빼기를 주문하는 거야?” “우리가 같이 먹어줄 거야! 많이 먹으려고!” 양이 많지 않은 남편이 곱빼기를 시키는 건 처음 봤다. 많이 먹고 싶어 잔뜩 시켜서 내 것도 먹고 아들 것도 먹겠다는 건가?
메인 음식 주문을 하면 슥슥슥 가져다주시는 기본 반찬들, 스프, 콩나물국, 양배추 샐러드, 깍두기를 주시는데 1년 전과 똑같은 비주얼과 맛이다. 그렇게 반찬들 집어 먹으며 떠드는데 금방 나오는 메인 메뉴들! 메뉴가 나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손을 든다 “저요! 여기에 주세요!”
<작년에 먹었던 함박, 생선까스, 돈까스>
작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해서 사진을 찾아보니 비주얼도 양도 차이가 없다. 다만 세상물정에 따라 가격이 500원 올랐다는 점. 사진 찍는 각도만 다를 뿐인데도 비슷해 보이는 음식들. 테이블에 메뉴가 하나씩 올라올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이미 손에 들고 있던 포크로 연식 찍어 먹느라 마음들이 급하다. 테이블에 비해 그릇들이 많다 보니 얼른얼른 입에 넣고 먹느라 바쁜 사람들로 식당은 가득하다.
<정신없이 먹다 본 식당 모습, 혼자 먹는 손님들과 기다리는 손님들을 볼 수 있다>
2008년 개업한 이후로 가성비 식당으로 유명한 이곳은 남녀노소 즐겨 찾고 가족단위도 많이 오지만 혼자 오는 손님도 많았다. 다른 식당과 달라 놀란 점 하나! 보통 손님이 붐비는 시간이나 대기 줄이 길면 4인 테이블에 다른 사람들을 합석시키거나 아예 혼자 손님은 안 받는 식당도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는 그럴 걱정이 전혀 없다는 사실! 혼자 오신 분들도 순서가 되면 4인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도 편안히 식사가 가능하다. 눈치를 주거나 타박을 주는 사람도 없고 여러 명이 온 손님과 똑같이 음식을 내어주고 직원 모두 친절하다. 홀에 음식이 나오는 중간중간에도 포장 손님들도 계속 드나들고 있는 모습. 항상 깨끗함을 유지하면서 저렴하고 맛있는 함박스텍을 친절하게 판매하고 있으니 어찌 많은 이들이 찾지 않을 수 있을까? 인기 있는 식당에는 이렇듯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