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 주말이라 오랜만에 늘어져있으려니 아침부터 아이들이 싸우기 시작한다. 나이차이도 있고 성향도 다른 편인 아이들은 별일 아닌 것도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며 소리를 지르며 싸워댄다. 사춘기 소년은 항상 짜증과 화를 달고 살고 아직 어린 동생은 항상 본인만 억울하다. 집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모습이 보기 싫어 야외서 운동하며 에너지를 쓰라고 나가자니 둘 다 흔쾌히 따라나선다. 야구 배트가 없어 가져 다 달란 말에 찾아서 주러 가는데 멀리서도 소리치는 게 들린다. 그새 캐치볼을 하다 불만이 가득한 채로 서로를 탓하며 싸우고 있다. 한 명씩 잡고 달래다 혼을 내보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결국 억울한 막내가 울다 집으로 간다. 큰 아이와 단 둘이 상황에 대해 차분히 대화를 하니 이해가 빠른 아이라 평정심을 찾아가며 동생 간식을 챙겨서 가자고 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며 오후에 할 일을 의논하는데 걸려온 남편의 전화. 아이들 기분도 풀어줄 겸 점심 먹으러 아이들이 다시 가자고 노래를 하는데 못 갔던 식당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건 남편이 근처로 출장을 갔다 회사 사람들과 식사하러 방문했는데 마음에 들었단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다음에 꼭 가족을 데려가는 남편이 우리 모두 좋아할 거라며 가보자고 이야기했다. 반신반의하며 방문했던 우리는 오는 내내 품었던 궁금증이 사라지고 잘 먹고 맛있다를 연발하는 아이들 덕에 기분 좋은 식사로 기억된다. 온 가족이 맛있고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던 그곳, 기사식당이지만 일반인도 많이 간다는 식당은 2호선 건대역을 지나 골목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송림식당’으로 간다.
오랜만에 따뜻해진 날씨로 봄나들이를 가는 건지 도로에 엄청난 차들로 꽉 차서 움직이질 않는다. ‘언제 도착하냐’, ‘차가 왜 이렇게 많냐’,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되냐’ 뒷자리에 앉아 오락을 하느라 눈과 손가락은 이성을 잃었는데 입을 살아 움직이는 아이들이다. 아이들도 소란스러운데 도로에 차도 많고 사고도 종종 보이니 눈도 어지럽고 마음도 편치 않다. 차의 움직임은 더뎌지니 운전자의 피곤한 심리상태가 느껴지고 있을 무렵 차들로 꽉 찬 식당 주차장에 도착했다. 역시 아이들이 먼저 신나서 차에서 내린다 “드디어 다시 왔다!”
기사 식당이지만 기사님들은 물론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많이 오는 송림식당은 입구에 들어서면 인원수부터 묻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2층으로 올라가세요 “ 남편에게 왜 우리는 맨날 1층에서 못 먹냐니까 기사님들이나 혼자 온 사람들이 가는 거 같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닌 거 같은데 아리송하다.
우리는 돼지불백을 먹으러 왔으니 일단 4인분부터 앉기 전에 주문! 지난번에 왔을 때 모르고 위 쪽으로 올라가면서 신발을 벗었는데 그냥 신고 올라가는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나랑 막내는 신발을 벗고 돌아다녔으니 다른 손님들이 보기에 얼마나 웃겼을까? 남편이 지금도 두고두고 놀리는 중이다. 이번에는 신발을 절대! 벗지 않고 올라가 자리를 잡아 본다. 사람이 많지만 식당 자체가 넓고 테이블이 많은 데다 빈자리가 거의 없는 걸 보니 언제 와도 인기가 있는 식당이다.
직원들도 눈코뜰 새 없이 테이블을 차리고 치우느라 말 걸기가 미안할 지경인데 다행히 주문한 밥과 반찬들이 순식간에 줄지어 나온다. 나머지 반찬들도 모자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가져다 먹을 수 있어 편리했다. 기본으로 주는 물김치가 매콤하고 시원해서 맛있었는데 막내는 잘 못 먹어서 엄마가 대신 맛있게 다 먹어줬다. 미역 줄기는 손질도 어려울 텐데 내가 좋아하는 나물이라 그런지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더 좋았다. 불백이 조리가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이루어져서 배고픔도 잠시다.
우리 막내가 이 식당을 가장 오고 싶어 하는 이유와 이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무한 리필 선짓국! 옆에 쌓인 그릇을 가져다 먹고 싶은 만큼 떠서 먹으면 된다. 선짓국은 따로 서빙을 해주지 않고 원하는 사람만 떠서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끊임없는 손님의 드나듬으로 주방은 정신없이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기에 직접 움직이는 게 좋다. 개인적인 성격이겠지만 누구에게 부탁해서 반찬을 좀 더 달라거나 필요한 무언가를 요청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인 데다 성격이 급한지라 본인이 원하는 만큼 직접 더 가져오는 식당이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식당의 특징 중 하나는 집게나 볶음 주걱 등이 없다. 다만 가위는 제공된다. 보통 넓은 팬에 고기를 볶으려면 긴 나무젓가락이나 주걱 등을 이용하는데 여기서는 본인의 숟가락으로 살살 뒤집고 섞어가며 볶는 특이한 방식이다.
불판에 올려진 고기가 나오면 같이 나온 밥과 마늘을 넣고 상추를 가위로 잘라서 함께 볶아지는 고기에 넣어준다. 옆에 있는 고추장 통에서 적당량을 덜고 볶음밥처럼 섞어가며 볶아주면 된다. 반찬으로 나오는 무채나 미역줄기, 김치 등은 따로 먹어도 되고 취향대로 넣어서 볶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반찬으로 따로 먹는 게 더 나아서 볶는데 넣지는 않았다. 상추는 불백을 볶을 때도 넣어 먹었지만 다 볶아진 돼지불백을 쌈을 싸서 먹기도 했다. 남편과 장남이 척척 조리를 해주니 이제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식사가 만들어지니 편하고 좋다!
우리 막내의 최애 선짓국! 두세 번 리필이 기본인 아이들이지만 막내는 특히 선지를 너무 좋아해 큰 덩이를 가져다 잘라가며 입에 넣고 맛있다를 외친다. 먼가 거부감이 드는 비주얼이라 못 먹는 음식이 손가락으로 꼽을 지경인 나에게도 선짓국은 좀 불편한 음식이었다. 먹을 생각을 못하던 나도 이곳에 와 처음 맛을 보았다. 분명 다른 식당과 맛 차이가 없다는데 내 입맛에도 이곳 선짓국만 먹게 되니 희한하긴 하다. 아이가 잘 먹으니 아빠는 신이 나서 열심히 떠다 주고 엄마는 더 먹으라며 응원을 보태준다.
잘 볶아서 맛있게 익은 불백 한 그릇 퍼서 반찬들과 선짓국까지 모아 놓으니 한상 가득 차려먹는 기분이 든다. 고기가 생각보다 많아서 먹으면서도 밥 반 고기 반을 먹는 기분이 든다. 그 와중에 불백보다 선짓국만 퍼먹는 막내 밥을 챙겨 먹이다 보니 금방 줄어드는 음식들. 양이 많은 큰 아들은 한쪽 팬의 밥들을 열심히 먹고 있어 천천히 먹으라며 한마디 보내본다. 외식을 할 때면 아이들이 심하게 편식하지 않아 감사하고 항상 맛있다며 잘 먹어줘서 다시 감사하다. 다만 체구가 작고 입이 짧은 막내 먹는 양과 속도가 좀 늘었으면 항상 안타깝다.
옆 테이블들에서는 식당을 예찬하는 커플들의 대화도 들리고 술 한잔 시켜놓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드시는 어르신들도 보인다. 우리처럼 가족끼리 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먹는 사람들까지 바쁘게 돌아가는 식당이 활기가 느껴진다. 어느새 비어버린 그릇들을 보며 볼록 나온 배를 두드리게 된다.
배부르게 먹고 1층으로 내려와 식사비를 계산하면 주인아주머니가 물어보신다. “커피 드릴까요 요구르트 드릴까요?” 우린 항상 후식은 요구르트다! 아이들이 어느새 두 개씩 챙겨 들고 신나서 마시고 있다. 후식까지 알뜰하게 챙겨 먹고 마무리!
매장에 들어가면 따로 수저나 냅킨통이 없어 처음엔 당황했는데 매장 중간에 냅킨이 담긴 봉지가 있고 필요시 가져갈 수 있는 가위도 잔뜩 담겨있다. 수저도 주방 쪽에 잔뜩 꽂혀있어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쓸 수 있어 동선만 잘 파악하면 이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물론 요청하면 직접 직원이 가져다준다. 성질 급한 나는 그 기다리는 게 힘들어 직접 움직이는 게 함정이다.
어릴 때 기사 식당은 친구들 손에 이끌려 처음 가봤는데 택시 기사님들의 식사 장소로 싸고 맛있었지만 우리를 제외하고 다 기사님들이라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종일 차에 앉아 운전만 하며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기사님들이 저렴하고 푸짐한 식사를 판매하는 곳을 기사식당이라 알고 있었는데 가족끼리 연인끼리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주 저렴하다! 는 가격은 아닐지라도 어느 식당에서 선짓국을 이렇게 실컷 먹을 수 있을까? 오랜 전통을 자랑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편안하게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하기 충분한 곳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