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에 만난 따뜻한 돌솥밥의 매력
여행을 다녀도 집에서 싸 온 김밥과 컵라면, 햇반, 밑반찬 등으로 자주 끼니를 해결하는 우리 가족. 잦은 여행과 장시간 이동이 많기에 먹는 시간을 줄여야 이동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선택한 방법이었다. 가끔 시간을 못 맞추면 한 끼 정도를 휴게소에서 해결하기도 했었다.
이번 겨울에 방문한 스키장은 처음 오는 곳이라 슬로프도 적응을 못했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랴, 40 평생 처음 신어본 스키를 타고 혼자 끙끙대며 내려오느라 땀범벅이 된 지친 몸을 이끌고 배를 채우지 않고는 도저히 집까지 갈 수 없었다. 주변 맛집을 공략해 보고자 배고픈 아이들에게 다양한 메뉴를 골라 물어보자 둘이 입을 맞춘 듯이 “곤드레밥 먹으러 가자!”를 외친다. 엄마는 생선도 먹고 싶은데 슬쩍 의견을 말해보지만 두 아이다 요지부동이다. 곤드레밥으로 대동단결 그렇게 찾아간 “함백산 돌솥밥”
스키장이라고는 용평만 다녀본 스알못(‘스’키장 잘 ’알‘지 ’못‘함)이 지나가다 구경만 몇 번 해봤던 하이원 스키장을 처음으로 경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맛집이 궁금해졌다. 지인들의 추천과 검색으로 알아낸 식당들을 두세 군데로 압축해 가족들에게 추천했건만 곤드레밥만 먹고 싶다는 아이들 성화에 남편도 가보자 하니 별다른 고민과 메뉴선택의 방황 없이 바로 출발.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다 온 것 같은데 사람들 줄 서 있는 것 좀 봐. 차는 어디에 세워야지?” 오후 1시 반이 지나고 있는 시점이라 많이 붐비는 점심시간은 피했을 거라 생각했던 게 내 착각이었다.
커 보이지 않는 식당, 밖으로 길게 줄을 선 사람들 그리고 주변은 주차된 차들로 꽉 들어차있는 상황. 도로에서 이동하는 차들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구석으로 차를 붙여가며 빈자리를 찾았으니 다행히 주차는 성공이다. 바람이 불어 다소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씨라 남편이 먼저 가서 줄을 서겠다 자처하니 아이들과 차에 남아 잠시 쉬고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슬슬 와보라는 남편의 호출에 아이들과 음식점으로 가보니 혼자 덩그러니 서있는 남편. 날이 쌀쌀하다 보니 순서대로 대기하던 사람들이 가게 안 대기장소에 들어가 다시 줄을 서있는 상황이었던 것. 남편 앞에 대기하던 사람까지 들어가서 혼자 기다렸다기에 같이 대기 줄을 서보는데 안에서 대기하시던 남자분이 문을 열고 날씨가 춥다고 대기하던 자리를 좁혀 아이들을 문 안쪽으로 넣어주신다. 감사 인사를 하고 보니 그분도 한 아이아빠셨던 거다. 부모의 마음으로 다른 아이에게도 베풀어주는 작은 배려에 감사하며 순서가 다가오길 다시 기다려본다.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 식당 내부는 두줄로 길에 놓인 상이 12개 남짓해 보였는데 그리 크지 않은 식당 내부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주방에서 직원 여러 명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에도 회전율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다른 곳에 가자고 하고도 남을 남편이 다른 데 가고 싶은 곳도 특별히 없고 가족들 배고픈 상태니 기다려보자 한다. 아이들은 기다려서 꼭 곤드레밥을 먹겠다니 별수 있나 기다리는 수밖에.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서서히 나오다 맨 앞에 대기하던 사람이 들어가려니 다 치우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단호한 목소리! 이유는 음식들이 치워지기 전에 들어오면 양념들이 옷에 묻을 수 있다는 것. 그런데도 길어진 기다림에 마음 급한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있고 들어가기도 하고 자리를 잡고 앉기도 했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밖에서도 줄 서 있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이 식당은 항상 붐비고 여유로운 시간이 따로 없나 생각이 들 정도. 드디어 우리의 순서가 되고 들어가자마자 이미 마음속으로 정했던 메뉴를 주문부터 했다. 들어온 테이블 순서대로 음식이 나오는데 이미 전에 들어온 테이블도 음식이 나오지 않은 모습을 보며 미리 주신 물 한잔을 마시며 스키 타던 이야기 메뉴판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다.
유독 메뉴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메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심술’. 분명 술은 맞는 것 같은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메뉴에 적혀있는 걸 보면 영어로는 fruit wine인데 한자로는 心酒 이란다. 당최 과일로 만든 술인게냐 마음으로 만든 술인게냐! 이렇게 혼란스러운 이름을 가진 술이 있다니! 혼자 떠들다 보니 가만히 듣던 남편이 “한잔 마시고 차에서 주무시면서 가시죠? “ 아이들 앞에서 술을 안 먹는 관계로 쿨하게 거절했지만 뒤늦게 더 궁금해진 심술. 마시지 않아도 사 올걸 그랬나 돌아와서도 궁금하다.
기다림에도 끝은 있는 법. 순서가 되자 차려진 밥상은 한정식집의 정갈하고 다양한 반찬 그 모습이었다. 신기했던 건 반찬 그릇의 위치가 있어 정확한 위치에 내려놓으시며 다 놓일 때까지 기다리라 하시니 반찬이 놓이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밑반찬이 깔리고 생선구이와 된장찌개가 놓이고 그 무거운 돌솥밥 4개를 한 번에 들고 와 분배해 주신다. 곤드레밥은 둘 다 아이들이 먹는 거라니 ”어머나 이게 웬일이여 애들이 이런 걸 먹는다고? “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니 씩 웃고 가신다. 신나게 밥을 그릇에 덜고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따뜻한 물을 부어두면 식사 시작!
아이들은 자기 입맛에 맞춰서 양념장을 넣고 밥을 비벼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을 집어 먹으며 맛있다고 열심히 먹어댄다. 우리 부부도 배가 많이 고팠던 건지 음식이 잘 맞았던 건지 어느 하나 맛없는 반찬이 없었다. 소시지 부침개와 제육, 콩나물과 버섯, 고사리, 연근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도 가득한테 남편이 좋아하는 동치미까지! 저 많은 반찬들을 하나도 안 남기고 싹 다 먹었고 생선과 찌개를 박박 긁어먹었더랬다.
따끈하고 고소한 돌솥밥은 추가해서 먹고 싶을 정도로 맛이 있었고 식사량이 많은 장남은 공깃밥이 따로 판매되지 않아 살짝 부족해 보여 엄마 밥을 좀 덜어줘야 했다. 입 짧은 둘째도 맛있다며 곤드레밥을 순식간에 먹고 누룽지도 싹싹 긁어먹는 걸 보니 기다림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점심식사였다.
대기 시간부터 식사를 기다리고 다 먹고 나오는 시간까지 거의 2시간은 걸렸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에도 계속해서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다 먹고 나온 게 뿌듯할 지경.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이 가족 모두의 배를 맛있고 든든하게 채워주어 집까지 오는 길이 편안했다는 점. 장시간의 여행을 하다 가끔 끼니를 놓칠 때면 아이들 배고플까 봐 걱정되고 간단히 끼니를 때우게 되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어린이 입맛인 남편도 몇 번이나 ‘맛있게 잘 먹었어’라고 하니 식당 검색과 선택의 뿌듯함이 느껴졌다. 정선 근처를 여행하거나 하이원 스키장에 들리는 분들은 기다림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음식을 즐겨보면 어떨까 하여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