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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Apr 23. 2024

왕따나무, 글을 쓴들 누가 읽어주겠는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성이시돌목장에서 빵구워지는 시간에 맞춰 따끈한 빵과 커피를 즐기고, 목장 내에 이라크 바그다드의 건축 양식이라는 오래된 목장 인부들의 숙소 테쉬폰을 둘러보며 한갓지게 놀다가 근처의 저 나무를 찾아 길가에 차를 세운다. 소지섭 cf로 인해 '소지섭나무', 들판에 덩그러니 혼자 서 있어서 '왕따나무'란 별명으로 불리우는 나홀로나무를 보러 찍으러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으로는 빈가지만 있어 더 쓸쓸해 보였던 나무가 잎을 달고 뒤편의 새별오름과 함께 적당히 빛을 받아내며 묵중하게 서있다.


 젊시절 햇빛 속에서 반짝이는 잎과 꽃들을 마구 흔들며 했던 노력과 시도와 때로는 원치 않던 거짓 타협들까지도 자부심과 오만함 안에서 용해되는 것이었지만, 세월이 지나 잎들과 꽃들이 떨어져 앙상하게 시들어 가는 때가 되어서는 뿌리 근본으로 들어가 진리를 새롭게 깨달아 간다는 시다.  


 잎과 꽃에 몰두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 자연스럽게 시들어가는 게 오히려 안온하다. 열렬히 광합성을 하지 않아도 되고 적은 햇빛으로 소소한 밥상을 차려 먹으면 된다. 소임을 다한 잎들이 와글거리며 연결되지 않아도 되고 이미 어여쁨을 마친 꽃들조차 그립지 않으니 바야흐로 호젓하다. 빈 가지의 날이 도래할 때를 위해 뿌리의 날에 집중하는 것이 조용하니 실속있다.


 미셸투르니에 <외면일기>에 "저는 말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글을 쓴들 누가 읽어주겠는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하물며 말해 무엇하랴, 내가 말하고 내가 듣듯이 내가 쓰고 내가 다시 읽는다. 빈 가지의 날을 위해 뿌리를 다지는 일이다. 왕따나무, 나홀로나무는 햇빛경쟁 뿌리경쟁이 없는 대가로 한량없는 고독에 단호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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