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인 여유가 들려주는 내 안의 본질적인 목소리를 찾아서
전시회 관람을 통해 한 동안 잊혀 왔던 나 자신 속으로 침잠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에 가깝다. 예술가들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바라보며 고고하게 존재의 본질을 물을 수 있는 경험은 익숙한 듯 생경한 경험이었다. 바로 어제까지 '얼마나 더 벌면 성공한 인생일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나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대해서는 행운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행운은 무엇일까? 나는 행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고정관념처럼 커다란 네잎클로버가 뇌 한가운데 등장한다. 이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로또나 복권으로 이미지가 이어지다 보면, '나란 사람은 정말 5,000원짜리 복권하나 안 맞는 사람'이지 싶다. 비단 복권뿐인가. 각종 사은 행사, 뽑기, 봄 소풍 보물찾기 조차에서도 행운이라고 할 만한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이러다 보니 애초에 로또 같은 것은 사지도 않는다. 어차피 안될 것을 안다. 같은 맥락에서 시험/취직에서도 운이라는 것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딱 고생한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는 것을 평생 지켜봤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도 운이 좋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서 나에게만 투자하는 것이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그렇다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알면서도 안 한 것도 많다.)
나 자신에 대한 집중으로 쌓아온 인생인데 나 자신을 잃고 있는 상황은 얼마나 큰 위기일까? 더군다나 그것이 위기인지 모를 만큼 중년의 나 자신에 대한 잠식은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조직의 구성원, 누군가의 아빠 등 사회적인 의미로 무장한 단어들이 나를 '가장 보통의 존재'로 만들고 그것이 내게 선물하는 안정감에 몸을 누인다. 이렇게 찬란하지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기차에서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충분히 낭만적이라는 말은 낭만이 충분하지 않은 인생, 혹은 그런 세상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비즈니스 창출의 본질적인 역설과도 맞닿아있다. 낭만이 충분하지 않은 인생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가 된다. 물론 이해와 받아들임은 다르다. '낭만 따위는 배가 불러야 하는 소리지. 지금 낭만이 중요해?'라는 이야기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배부르다는 것의 전제인 돈벌이로서의 낭만은 어떨까? 그것에 대한 것이 위에 언급한 비즈니스 창출의 본질적인 역설이 된다.
많은 회사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온갖 고객 데이터를 뽑아내서 분석하고 거액의 대가를 지불하고 유명한 컨설팅 업체의 자문을 듣는다. 그렇게 나온 100장짜리 보고서를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 10장 이내로 줄여낸다. 이것을 힘이 있는 사람에게 맡게 편집하고 보고하고 결정을 받는다. 가까스로 진행에 대한 허락을 받고 시장에 호기롭게 서비스를 내놓으면 고객은 외면한다. '어디가 잘못되었지?'라는 자문도 하기 전에 저조한 실적에 대한 보고에 대해 여러 곳에서 압박받는다. 또다시 데이터에 파고들어 밤샘을 자처한다. 잘 안되었다는 보고를 간신히 마치고 숨을 돌릴 때쯤, 기분 상할 만한 소식이 들린다. '그 비슷한 거 못 들어 본 모 회사가 시작했다는데 지금 반응이 엄청나다는데?'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시나리오에서 당사자인 '나 자신'은 소외감을 느낀다. 누구보다 열심히 해온 나라는 존재가 있지만 결국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시스템 안에서의 노력으로는 다른 '가장 보통의 존재'의 설렘을 얻을 수 없다. 조금 심한 비유를 하면, '어느 주부가 집이 지겨워서 카페에서 분위기 있게 커피 한잔 하려는데 둘러보니 옆집 아저씨만 가득 찬 상황'이 된다. 즉,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건드리지 못한 기획은 그 시작부터 반은 죽은 채로 시작한다.
게다가 효율성과 데이터로 무장한 기획은 모두가 기꺼이 하는 방식에 가깝다. 따라서 같은 데이터와 같은 효율성이라면 똑똑한 사람들이 내리는 결론은 합리성에 기반하여 거의 같다. 다른 사람보다 더 천재적이지 못해서 사업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무식하게 실행하지 않아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있거나 감각적으로 느꼈던 것을 무시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서비스는 낭만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서비스들이 세상의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고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현실적으로 효율에 기반한 사회 인프라에 가까운 서비스들은 이미 포화 상태이다. 제조업의 허들이 낮아진 것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하는 디자인과 성능만 명확하다면 단 10개라도 만들어줄 사람은 많다. 그만큼 효율과 생활 측면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서비스들이 도처에 포진되어 있다.
나라는 보잘것없는 개인이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향이 있다면 누군가의 '낭만'을 충족하는 기획이 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낭만'을 만족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물론 마음껏 떠드는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인생의 몇 없는 행운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결국 본질로 되돌아가면 연습이 중요하다. 지금은 혼잣말과 불평 레벨로 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구시렁 쟁이처럼 혼잣말을 삼킨다. '화장실 쓰레기통이 쉽게 안 열리네, 이거 꼭 이걸 써야 하는 건가?', '반찬 많이 주는 건 고마운데 숟가락 놓을 자리도 없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은 해봤나?' 불평에 가까운 이야기들이지만 결국 하나의 경험이 주는 가장 낭만적인 상황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는 데에 핵심이 있다. 내 것이 아니어도 그것이 완결된 경험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 사고 연습을 바로 이 노트에 시작하려고 한다.
' 또 모르지, 쓰다 보면 내가 평생 풀고 싶은 문제를 발견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