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적인 접근
수많은 사진들 중에 눈에 띄는 몇 장을 추린다. 사진을 고른 기준을 객관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누군가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개인의 취향이라고 답해둔다. 덧붙여 탈락된 사진의 이미지도 나쁘지 않다고 전해둔다. 쓸데없는 분쟁을 막기 위해 그냥 내 취향이 그런 것뿐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각각의 사진 속 객체에 대해 아주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한다. 5개의 후보 중에 3개는 내가 생각하기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거나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과감하게 후보에서 제외하고 나니 남은 것은 최종 2개다. 최종 2개는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자 한다.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하고 미리 정한 장소에 도착해서 최종 2개의 후보에 대해 탐색을 시작한다. 최종 후보 A와 B는 객관적인 스펙상에서 사실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오늘의 탐색자는 최종 후보 B를 최종 후보로 남기기로 마음을 정한다.
차를 사던지, 컴퓨터를 사던지, 가구를 사던지, 신발을 사던지 아니면 하다못해 맛있는 커피 한잔을 고르기 위한 작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다만 위에 묘사했던 장면은 ‘소개팅’이었다. 주어만 바꾸면 물건을 구매하는 장면이 되는 상당히 무미건조한 묘사지만 믿을만한 정보에 의존해서 신중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의미에서 행위 자체는 유사하다. 물론 소개팅 결과에 따른 낭만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다만 소개팅 자체의 행위는 아주 신중해야 하는 의사결정에 지나지 않는다. 묘사의 비인간적인 논쟁만 주제에서 제외하면 한 가지 자연스러운 의문이 남는다. ’왜 최종 후보 B가 선택되었지?‘
후보 A는 첫 만남에서 상대를 크게 칭찬한다. ‘정말 예쁘시네요.’ ’ 제 소개팅 인생 중 가장 예쁘세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칭찬인지 실수인지 모를 이야기를 두서없이 던진다. 물론 이 한마디 한마디가 탐색자의 심기를 건드렸을지 모른다. 다만 오늘 선택받지 못한 진짜 이유는 그다음 대화에 있다.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xx일을 10년 정도 해서 xx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이 재밌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꽤 좋은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최고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좋은 삶을 살고 있고 이제 부족한 것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xx일 하신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A는 최대한 잘난 체하지 않고 대화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그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매너도 좋다. 더군다나 다른 관점에서는 그 역시 최종 탐색자로서 오늘의 상대를 만나기까지 꽤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뭔가 낭만적이지는 않다.
후보 B는 첫 만남에서 본인이 잘 알고 있는 장소를 선택한다. 그 장소는 후보 B가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다. 상대가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가깝고 좋은 장소가 많은데 굳이 이곳까지 모시게 되어서 죄송해요. 뭐 드시겠어요?’ 상대가 새로운 장소에 편해지기까지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좋은 때가 되면 장소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물론 이런 접근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상대가 지루해 보이면 곧바로 다른 주제를 준비한다. 다만 그 주제는 삶의 가까운 곳에서 일상적인 내용들 중에 선택한다. 그 무엇도 그가 하는 일에 대한 부분을 이력서 형태로 풀어놓은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다. 다행히 상대가 흥미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B는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 지금까지 이런 취향을 가지고 이런 모습을 살아왔는지 설명을 한다. 그중에는 일이야기도 있고 취미도 있다. 그렇게 나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까지 적절히 이야기하고 나면 일단 첫 만남은 끝이다. 그 이후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어떤 낭만적인 동화에서도 그 이후이야기는 없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이혼했는지도 모르고, 백설공주가 남은 여생동안 왕자의 사과 독살을 꿈꿨다는 결말이 있을 수도 있다. 비슷한 접근으로 이 소개팅의 결말을 약 50년 후로 늘리고 나면 이야기의 맥이 없어진다. A와 잘되었을 수도 아니면 A도 B도 연관이 없는 결말이 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런 식의 접근이 아니라 낭만적인 첫 만남이라는 것에 대해 집중해 보면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A는 설득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스펙으로 봤다.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와 그동안의 노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이것만큼 객관적인 것이 없다. 따라서 A는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솔직한 접근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유효할 때가 있다. 다만 낭만적인 잣대로 생각해 보면 뭔가가 빠져있다. 잠깐 언급했지만 A 또한 그날의 평가자다. 따라서 A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잣대가 한편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반증이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같은 스펙을 가진 다른 대안이 있거나, 그보다 더 좋은 스펙이 나타나면 어떨까? 극단적 일수 있지만, 평생을 비교하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반대로 B는 이미 자신의 스펙이 어느 정도 전달되어 있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더 길게 풀어봤자 이력서만 늘려 적는 행위라는 걸 알고 있다. 어차피 스펙은 한 두줄의 이미지로 모든 게 설명된다. 오히려 같은 스펙의 대안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한다면 그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가능성에 대한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현재에 대한 WHY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내 인생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꿈을 꾸고 있으며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조금 더 인간적으로 연결되기를 바라고 객관적으로 말할 수 없는 유대관계가 생긴다. 혹자는 그런 게 사기 아닐까?라고 말할 수 있지만 꿈꾸는 것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사기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모든 위대한 창조자들은 사기꾼이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A는 기술되어 있는 자신의 현재를 팔았고, B는 왜라는 질문과 함께 미래에 있는 꿈을 팔았다. 탐색자는 같은 현실이라면 B가 가지고 있는 미래의 가치도 함께 나누어 가졌으면 했고, 결국 B를 선택하게 되었다. 언어적 표현으로서는 B가 조금 더 낭만적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된다. (물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B가 정말 사기꾼일 수 있다)
효율성은 삶과 직결되어 있다. 효율적인 것에 대해서는 선택할 객체가 가지고 있는 객관적 사실이 중요하다.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지만 효율성의 문제는 꼭 스펙으로 비교되어야만 한다. 다만, 그 효율성이 충족되고 나서의 결정은 여러 방면으로 튀어나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객체를 소개할 때 낭만적인 포인트가 무기가 될 수 있다.
[예 1]
내 옷은 보통 모두 내가 고르고 사지만 이상하게도 트레이닝 의류만큼은 아내의 몫이다. 더 기이한 점은 아내는 꼭 비싸지만 룰루레몬 상품을 나에게 선물한다. 처음 한두 번은 굳이 동네에서 뛰는데 이런 상품까지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옷이 묘하게 편하거나 잘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았다.(사준다면 조용히 받자) 이번엔 4번째 선물을 받았다. 트레이닝 바지인데 역시나 편하다. 운동할 때가 아니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옷을 입으려고 택을 자르려고 보니 아래가 보인다.
‘WHY WE MADE THIS’
이 옷을 왜 만들었는지 ‘왜‘에 대해서 서술한다. 재밌는 점은 이 택(Tag)의 반대편에는 같은 내용의 한국어 번역본을 스티커에 프린팅 해서 붙여놨다. 수입해서 스티커 택을 따로 붙이는 것은 비용이다. 이 부분은 꽤 잘 아는 영역이 되는데 보통은 그런 작업은 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만 하는 게 업계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런데 이 설명을 위해서 한국어 스티커를 또 붙였다고? 이것은 본사에서 의도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소한 룰루레몬은 알고 있다. 그들이 뭘 하려고 하는지를 고객에게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게다가 그들은 믿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은 분명히 이 행위를 이해해 줄 거야.'
[예 2]
매주 일요일 전시회를 간다. 오늘도 전시회를 향하다 보니 문득 주차 할인이 되는 신용카드를 안 가져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고자 했던 장소에 주차가 할인이 안되면 꽤 많은 비용을 일부러 내야 하기 때문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주차비가 뭐 얼마나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계획 자체를 부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에이 모르겠다, 좋은 카페의 경험도 영감을 주겠지라는 생각에 평소에 눈여겨봤던 재즈 카페로 행선지를 옮긴다.
'카페 시노라'라는 곳인데 서촌과 북촌점이 있다고 한다. 북촌점으로 향했다. 다만 매장의 정확한 위치를 생각하면 계동점 정도가 적확하다. 그런데 아마도 지역 인지도를 활용해서 북촌점이라고 명명한 것 같지만 묘하게 거리감이 생긴다. 도착하니 4~5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바 자리만 있다. 카페 인테리어를 뜯어보고 메뉴판을 정독한다. 프렌치토스트와 커피가 메인이다. 간단하게 메인 상품을 시키고 책상 위를 보니 A4용지에 잔뜩 글이 쓰여있다. 갤러리에 가면 있는 설명자료처럼 매장의 콘셉트 음악에 대해 역사를 포함해서 설명해 놓은 작은 전단지이다. 4월의 음악은 보사노바다. 보사노바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상세하다. 다만 바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적극적인 위치에 배치되어있지는 않다.
여러모로 정돈된 카페다. 특히 메뉴, 음악, 위치는 말할 것 없이 잘 짜여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 뭐지?'
주문한 모든 메뉴를 해치우고 바에 있는 주인에게 묻는다. ‘음악 콘셉트 변경의 주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보사노바 설명도 올해 2번째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주기가 있을까요?’. 조금 구체적인 질문에 놀란 표정으로 답한다. ’아 그거, 본점에서 누가 뭐 하는 건데 약 2달에 한번 정도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전체 구성이 더할 나위 없는데 뭔가 어색한 것은 ‘Why’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매뉴얼은 많았는데 그 진심은 아직 사람에게 인수인계가 안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 자체가 관광지라서 그런지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오간다. 원했던 재즈를 설명하고 들려주기엔 힙한 상점이 되어버린 것 같다. 다음에는 본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낭만적인 첫 만남은 중요하다. 그 낭만은 서로를 현혹시키기 위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움직인다. 다만 우리는 같은 목표라는 것을 향유하고 그 안에서 서로를 도와주며 결국 이루어낸다.
나라는 사람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을 정의하고 그리고 그게 물건이든 신념이든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정하고 이해해 나가는 것이 낭만적인 정공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대체 뭘 공유하고 싶지?' '어떤 낭만적인 것을 공유할 수 있을까?' 같이 이야기해 보는 자리를 자주 갖는 것도 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게 무엇이든 첫 만남만큼은 지켜보는 주체가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낭만적인 것이 될 수 있게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