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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raun Jul 26. 2024

2주간 휴가와 간밤의 꿈

자신을 끊임없이 파헤치는 사람

 야단스러운 한 주를 끝으로 2주간 휴가를 냈다. 남편의 출산 휴가도 2주로 늘어났기 때문에 넉넉한 시간이다. 애초에 둘째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써야 할 휴가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어오다가 어색한 흐름 속에서 강제로 휴가를 맞이했다. 업무적으로는 좋은 흐름이다. 3년간 버티고 버텨온 일이 마무리가 되어간다. 보통 내가 몰입하는 일에는 버틴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냥 시간이 흘렀을 뿐일 거다. 다만 이번에는 정말 버텼다. 이유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단순한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은 버팀이다. 이렇게 버티다 보니 결국 시간은 지나갔고 그 버텼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휴가 전날 즐거운 마음으로 회식에 참여했다. 사려 깊은 팀원이 묻는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이렇게 큰 일을 하고 나시면 엄청 뿌듯하실 것 같습니다.' 평소만큼 문장이 단도직입적으로 귀에 꽂히지 않는다. 다만 그저 '이게 큰일이었던 건가?' 혹은 '나 정말 뿌듯한 거 맞아?'라는 덧붙임 문장만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니 군중의 한가운데서 주인공처럼 굴고 있는 내가 있다. 어쩌면 이런 면에서 술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복잡하게 나를 이해하기 위해 고통받기보다는 단순히 그 자리 그 분위기에서 나라는 사람을 역할극 하는 모습이 편한 거 아닐까? 그런 면에서는 사상 최고의 광대일 거라고 생각했다. 안 되는 일본어를 섞어가며 함께 일하는 현지 상사를 하늘 끝까지 치켜세우는 한편, 같이 수고한 사무실 동료들에게는 우리의 능력은 예사 것이 아니라며 힘을 북돋아 본다. 그 중심에 내가 있고 우리는 더 큰 것을 해낼 것이라며 제법 호기롭게 이야기하던 나는 육아에 지친 아내의 전화 한 통에 '넵 바로 갑니다'라고 그 자리를 뒤로한다. 그렇게 돌아오는 택시에서의 고요함이 평소보다 낯설다.



 회식이라는 공연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광대는 첫째 아들을 재우려고 방에 함께 눕는다. 어지간히 기분 좋았던 나는 아빠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담아서 아들에게 간단히 자랑을 늘어놓아본다. 아들은 5살밖에 되지 않지만 사려 깊은 친구다. 듣던 가장 친한 친구는 '우와'를 연발해 준다. 정말 친한 친구가 맞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로 돌아온 친한 친구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빠 사람은 다 죽어?, 그럼 아빠도 죽어? 아빠가 죽으면 난 속상해'   

 빠르긴 하지만 평범할 수도 있는 질문에 공연하던 광대는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갑자기 꺼내진 '죽음'이라는 주제 앞에서 짜인 공연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 생각은 안 해도 돼. xx가 나중에 아빠만큼 크고 결혼도하고 아이도 나을 때까지는 계속 있을 거야. 그래서 속상할 걱정은 안 해도 돼.'라고 말하면서 한편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 약속은 내가 할 수 있는건가?', '그렇게 모든 게 준비되고 없어진다고 해도 속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는가?' 결국 정말 중요한 '죽음'이라는 주제 앞에서는 몰입하지 못하는 가짜 주제는 공연의 막을 내리게 된다.


 


 뭔가 뒤틀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주를 조금 더 잘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평소 읽어보고 싶었던 이어령 교수님의 책도 구입했다. 첫날은 조용히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이를 등하원 시키는 것에도 평소보다 여유가 있었고 그 여유가 느껴지는지 첫째 녀석도 하원하는 차 안에서 많은 장난을 걸어온다. 어떻게든 평소보다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고 이내 꿈을 꾸게 되었다.

 커다란 회의실에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10명 남짓이 앉아있었는데 내 양옆으로 뭔가 익숙한 얼굴들이 앉아있다. 중학교 때 유명했던 건달들이다. 물론 한 번도 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당해본적은 없으나 잊었던 25년 전 원초적인 두려움이 느껴진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남자 중학교는 폭력의 온상이었다. 초등학교 때 싸움이야 당사자인 양 편에서 같이 하는 것이었지만 중학교에서 본 것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약한 아이를 자리에 앉혀놓고 주먹도 아니라 따귀를 때리는 그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따귀를 맞는 아이의 표정도 체념적이고 그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들어보니 때리는 녀석의 형이 폭력 조직에 있다고 한다. 이게 무슨 학교인가?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럼에도 학교는 학력평가라는 목표를 위해 집단을 나누었던 것 같다. 공부를 하는 학생과 하지 않는 학생. 되도록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따로 건드리지 않게 선도했다. 게다가 나는 어쩌다 초등학교 때 유도부를 했던 경험 때문에 운동부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생겨서 괜히 누군가 나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다만 누군가 건드렸으면 아마도 속절없이 무너졌겠지 싶다. 그렇게 그때부터 처세술이 강해졌다. 다만 표리부동한 상황 때문에 항상 긴장한 상태에서 맞지 않는 광대의 처세술이었겠지 싶다.

 어쨌든 과거의 건달들이 앉아있는 풍경이다 보니 꿈이라는 인식이 없어도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평소처럼 꿈속에서도 일을 해 본다. 주제는 생각나지 않지만 꿈에서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주장하고 있었고 그 아이디어가 잘 적용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건 이렇게 바꿔야 해'라고 주장한다. 한편 오른쪽의 건달이 말한다. '네가 이것을 하자며. 여태까지 네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었기 때문에 참았다. 그런데 이렇게 자세한 사항도 없이 바꾼다고?' 아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훨씬 비속어가 섞인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곧바로 나를 한대 칠 모양새이다. 그러자 덩치가 더 큰 왼쪽 녀석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어?, 근데 한국말이 아니다. 들어보니 일본어다. 갈수록 가관이다.



 갑자기 잠에서 깬 것은 둘째 아이가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항상 듣던 소리지만 오늘만큼은 반가웠다. 이 꿈은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호문클루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파우스트를 읽다가 발견했고 나중에는 프로이트 교양 수업을 듣다가 호문클루스라는 만화를 접하게 되었다. 플라스크에 있는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에서 이어지는 개념이다. 보통은 만들어진 인간 혹은 극도로 사회화된 인간의 비판적인 정의로서 쓰이는 것 같다. 특히 만화에서는 탐욕에 찌든 사람이 그 탐욕에 관련된 신체 기관이 왜곡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말이 많은 사람은 입술만 남아있는 그런 형태다.

 정확히  '내가 호문클루스라면 어떤 이미지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아마도 쓸데없는 생각을 크게 늘려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는 모양새일까? 어쩌면 뇌와 입만 커다래져버린 모습이겠다.


 


 나는 자신을 끊임없이 파헤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실 피곤하다. 적당히 행하고 적당히 속이고 충분히 즐거워하면 백배는 행복해질 것 같다. 그런데 태생부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항상 모든 상황에서 나를 가장 먼저 의심해 본다. 그리고 항상 돌아볼 때마다 어김없이 모순된 구석이 존재한다. 꼭 요즘 받고 있는 도수치료 같다. 매주 가는데도 매번 갈 때마다 어딘가 뼈가 틀어져있다. 지난주는 골반뼈 이번주는 목뼈. 계속해서 자세가 틀어져서 그렇다는데 이런 식이면 평생 도수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마도 도수치료야 보험이 닿는 데까지가 한계가 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 모순을 찾는 것은 어쩌면 평생 하게 될 운명 같은 게 아닐까?

 본질적으로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비슷한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는 왠지 이런 특성의 사람들만 모아서 협회를 만들고 일을 진행하면 효율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절대 합쳐질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라고도 동시에 생각한다. 애초에 이런 특성의 사람들은 정도가 다를 뿐인지 실제로 본인이 원하는 삶의 그림이 명확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계속해서 모순이 발견되는 것은 그 삶에 근접하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 같다. 오늘도 오랜만에 다시 한번 해묵은 질문을 해본다.



'서촌에 1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 맛있는 빵을 굽는 빵집 사장님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대기업의 성공했다는 임원이 되고 싶은가'


아직도 내 대답은 '빵집 사장님'이다. 최소한 호문클루스는 안될 것 같아서. 계속해서 모순은 이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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