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를 찍은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켰다.

by 이만희

1996년 1월 가슴이 시리고 칼바람 불던 날, 앞에 가시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 동생의 손을 잡고 학교 교문을 처음 들어갔다.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를 뒤로 한 채 외할머니의 눈물을 벗 삼아 교무실로 들어갔다. 입학 상담을 끝내고 복도로 나오면서 상담을 해주신 선생님께서 점자일람표와 점자책을 손에 쥐어 주셨다. 그 순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설레고 감사했다.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점자 일람표를 달력 뒷면에 크게 그리게 했다. 매직으로 손바닥 크기로 초성, 중성, 종성, 약어, 약자까지 달력에 그리도록 하였다. 밤새도록 책상에 앉아 한글 점자를 만졌다. 점자를 만지다가 잠이 들면 꿈에서도 점자를 공부했다. 손끝으로 자음과 모음을 읽게 되고 약자, 약어도 점독할 수 있었다. 노력을 할수록 한 줄을 읽던 시간은 한 문단으로 늘어났고 손가락도 덜 아프게 되었다.


한 페이지를 겨우 읽게 되었을 때 1996년 3월 특수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 후 봄꽃이 만개한 4월,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교과서를 읽어 보라고 하셨다. 나는 더듬더듬 한글 점자를 읽었다. 교실에서 침묵을 깨는 선생님의 한마디는 ‘점자를 잘 읽었다’였다. 선생님께서는 점자를 빨리 익힌 학생은 없었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한 손으로 읽는 것보다 양손으로 읽으면 더욱 속도가 빠르다고 하시며 양손으로 책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점자 시집을 교실로 가져와 읽었다. 시집을 읽으며 점자를 찍는 재미는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였다. 점자를 구성하는 6점들은 세상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였다. 점자를 열심히 찍으면서 대학도 입학하고 교사 자격증도 취득하여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같은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만나면서 점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일반학교를 다니다가 사고나 질병으로 중도에 실명한 학생들에게 점자 학습의 필요성을 말해 주었다. 실명으로 삶의 의지가 꺾이고 절망 속에서 좌절하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출근하면 아침시간에 점자를 가르치고 있다. 노을이 지는 운동장에 서서 가만히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학교를 입학하고 점자를 익히면서 인내했던 시간들은 나에게 강한 의지를 남겼다. 오늘도 나는 출근길에 결심한다. 나와 학생의 성장을 위해 나는 오늘도 점자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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