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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랑 May 16. 2024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 안마를 했다.

 어깨가 아프신 장모님이 집에 오셨다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 장모님 집 근처에 있는 병원을 다녀 보셨지만 소용이 없어 나를 찾아오셨다. 매일 오전과 오후 2번씩 안마를 해 드렸다장모님은 "어깨도 안 아프고 잘 치료받고 간다."라고 고마워하셨고, "자네가 안마를 할 줄 알아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씀하셨다.

  1994년 유난히도 더웠던 봄과 함께 나는 앞을 보지 못했다병원에서 2시간 넘게 진행된 검사 결과는 '원인불명으로 인한 시신경손상'이었다의사와 5분간 상담하면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다니던 고등학교도 휴학했다아침 8시가 되면 동네 아이들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이 듣기 싫어 이불속으로 들어가 라디오를 켰다오후에는 산에 있는 약수터에 가서 약수를 받았다약수터에서 내려오는 길에 집에서 챙겨 온 쌀을 비둘기에게 주었다저녁이 되면 술창고로 가서 빈병을 정리했다아버지는 포장마차에 술과 음료를 납품하고 빈병을 수거하셨다뒤섞여 있는 빈병들을 주류별로 박스에 채워 넣었다가끔씩 입구 쪽이 깨진 병이 있어 손을 베였다다치지 않으려고 목장갑을 끼고 더듬거리며 빈병을 정리했다

  휴학 기간이 끝나자마자 학교의 권고로 자퇴해야 했다자퇴를 하려면 진단서가 필요했다병원에 가는 택시에서 대전 MBC '여성시대'를 들었다특수학교 졸업식을 소개하고 인터뷰도 방송했다그 순간 나는 특수학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고 특수학교에 전화를 걸었다학교 관계자는 입학하려면 시각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나는 '시각장애인'이란 말을 처음 들었고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어머니는 내가 특수학교에 가는 것을 반대하셨지만 어제와 같은 무의미한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았다나는 아버지께 부탁드려 동네 병원에 가서 시각장애 등급을 받았다

 실명한 지 2년 만에 특수학교 고등부에 입학했다다른 학생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주로 엄지손가락으로 안마하는 방법을 배웠다학교에서 배운 안마를 부모님에게 해 드렸다처음에는 많이 아프다고 하셨지만안마를 받으시고는 몸이 가볍고 시원하다고 좋아하셨다고등부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했다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 방학에는 안마사로 일을 했다안마시술소에서 안마사로 일을 할수록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맹세했다

  2003년 내가 다녔던 특수학교에 교사로 발령받았다후배이며 제자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은 나를 설레게 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온 신규교사에게 안마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은 없었다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변화해야 했다교사 중심의 교과서를 외워서 하는 수업이 아닌 학생 중심의 참여하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교사로서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 동안 동료 교사와 함께 자원봉사로 매일 지역주민 20여 명에게 안마를 했다안마를 하면서 경험을 쌓고 수업에 대한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2006년 5월 25일 동료 선생님들과 회식을 하다가 식당 텔레비전에서 헌법재판소에서 '안마사법'을 위헌 판결 했다는 방송을 들었다다음 날 수업을 하는 데 선생님 저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라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갑자기 눈물이 나서 교실 밖 복도로 나갔다우리 학생들이 이제 직업을 못 가지게 되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절망과 분노가 치솟았다그때부터 학생들과 함께 시각장애인 안마업권 회복을 위해 집회가 있는 곳으로 갔다서울에 있는 마포대교명동성당맹학교국회의사당 등 학생들의 안전과 대국민 설득을 위해 노력했다또한매주 금요일에는 저녁 7시부터 기차역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비가 오거나 날이 더워도 촛불문화제를 준비했다시각장애학생들의 직업 수호와 우리 안마업권 회복을 위해 간절하게 호소했다관할 경찰서에 가서 집회 신고를 했다나는 정보관의 관심 대상이 되었고형사들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지 않고 데모나 하고 다니냐?"라고 나무랐다.

 3개월 뒤에 안마사법이 법률로 제정되었다그날 국회의사당 앞에서 본회의 통과를 위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오후 5시경 비는 내리고 아스팔트는 뜨거웠던 그날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각장애인의 안마사'법이 통과되었다전국에서 올라온 시각장애인들 모두가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나도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2008년 처음 전공과 담임을 맡으면서 학생들과 창업동아리 꿈너머꿈을 만들었다법률로써 안마업권이 회복이 되었지만 당시에도 학생들이 졸업을 하면 안마시술소로 진로를 선택해야 했다창업동아리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안마원을 창업할 수 있도록 특별 지도를 하며 퇴근 시간 이후에도 실습실에 남아서 안마지도를 했다또한한 달에 두 번씩 학생들을 데리고 안마원을 견학했다

 학생을 가르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마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다안마를 배우면 시각장애인도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이다학생들에게 안마로 정성을 다하면 선한 마음이 안마의 손맛을 좋게 하고 놀라운 효과도 본다고 가르친다나는 지금도 가족에게 안마를 한다3인 아들은 허리가 아프다고 안마를 해 달라고 하고초등학교에 다니는 딸도 종아리를 안마해 달라고 한다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어깨가 아프다고 하는 아내에게도 안마를 한다

  나는 안마를 배웠기에 존재감을 증명해 나갔다안마로 나를 드러내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가족과 지역주민들에게 안마를 하면서 인생의 태도도 변화했다안마를 할 수 있어 한계를 극복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안마를 하다 보니 미래를 바꿀 수 있었다안마를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인생은 반복이다안마를 반복하며 살다 보니 좋은 인생이 되었다



#나는잘살았다.

#당당하다는믿음

#자신감있는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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