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희망을 담은 목소리

by 이만희

시각장애학교에서 교사로 살아온 시간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목소리가 단순한 소리 이상이라는 사실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오직 소리로만 존재한다. 내 목소리는 그들의 손이 되고 발이 되며, 때로는 세상과 그들 사이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된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려 애쓰면서도, 정작 나는 내 목소리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입학 상담 전화는 늘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장애인 콜택시 회원 가입 방법을 묻는 전화가 오는가 하면, 기차 시간표를 물어보는 이도 있다. 활동지원사는 어디서 알아보냐고, 어떤 병원이 좋으냐고. 학교 입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나는 입학과 관련 없는 질문을 받을 때도 목소리에 변화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그들에게 학교라는 곳은 삶의 전부나 다름없으니까.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뒤섞인 목소리들. 나는 그 목소리들을 받아 안으며 생각한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따뜻한 안내자가 되어주자고.

전화 상담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톤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청각이 예민하다.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도, 작은 변화도 그들은 알아챈다. 혹시라도 내 목소리에서 불편함이나 짜증이 묻어 나올까 봐, 나는 의식적으로 평온함을 유지하려 애쓴다.

목소리는 감정의 지문이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즐거움도, 내가 숨기려 해도 목소리는 정직하게 그것들을 드러낸다.

목소리는 타고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발성 연습을 하고, 톤을 조절하고, 말의 속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목소리는 달라진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으며 혼자 따라 하는 시간들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조각가가 돌을 깎듯, 나는 내 목소리를 깎아나갔다.

장애인학교의 입학 상담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안을 해소하고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때로는 절망 속에서 마지막 한 줄기 빛을 찾는 심정으로 전화를 거는 이들도 있었다. 직접 전화하기 어려워 가족이나 활동지원사가 대신 문의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의 간절함 앞에서, 나는 더욱 세심해져야 했다. 차갑고 건조한 안내 멘트가 아니라, 열정과 정성이 담긴 목소리를 내려고 애써야 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목소리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이다. 그래서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 정보 이상의 무엇이 된다. 교육 과정을 설명할 때는 명확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신뢰를 주어야 하고, 진학 상담을 할 때는 힘 있는 목소리로 미래를 그려주어야 한다.

정확한 발음은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첫 단추다. 특히 처음 듣는 정보일수록 또렷한 발음은 필수였다. 시각장애인들은 내 목소리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기 때문에, 작은 발음 실수도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치 얼음판 위를 걷듯, 나는 한 음절 한 음절 조심스럽게 발음했다.

내 목소리의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 나의 통화 내용을 녹음해서 다시 들었다. 객관적으로 내 목소리를 평가하고, 개선점을 찾아보았다. 음량은 적절한가, 속도는 너무 빠르지 않은가, 톤은 어떤가, 발음은 정확한가. 스스로를 분석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나은 목소리를 만들어 갔다.

목소리에 음량도 중요했다. 너무 작으면 자신감이 없어 보였고, 너무 크면 부담스러워했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 부드럽고 낮은 음량으로, 격려가 필요할 때는 힘 있고 또렷한 음량으로. 상황에 맞춰 조절했다.

말의 속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 빠르면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 느리면 지루했다. 복잡한 입학 절차를 설명할 때는 천천히, 핵심을 강조할 때는 약간 빠르게. 리듬을 타듯 속도를 조절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휘 선택부터 말의 수준, 억양, 발성, 강약까지. 모든 것을 상대방에 맞춰 조절해야 했다. 중도 실명으로 시력을 잃은 성인에게는 쉬운 단어로, 차분하고 정중하게, 젊은 학생들에게는 조금 더 편안하고 격의 없이 말했다.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 목소리에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어."

그들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빛이고,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다. 그 목소리를 통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교실에서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목소리 속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고, 세상을 향한 간절한 외침이 숨어 있다. 나는 그 목소리에 응답하며,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려 애쓴다.

장애인학교의 입학 상담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목소리에 진심과 희망을 담는다. 내 목소리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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