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어로 만들어진다

by 이만희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 명확하지 않은 언어는 명확하지 않은 사고를 낳는다. 말이 흐릿하면 생각도 흐릿해지고, 생각이 흐릿하면 삶 역시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말부터 바로 세우려고 한다. 언어를 다듬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다듬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교사이고, 작가이다. 이 두 이름은 나의 직업이기 이전에 삶의 태도이다. 교사는 질문하는 사람이고, 작가는 사유하는 사람이다. 나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나를 세운다. 세계는 언어로 인식되고, 언어의 사용은 곧 인생의 사용법이 된다. 내가 쓰는 언어의 한계가 곧 내가 사는 삶의 한계가 된다면, 배움을 멈출 수는 없다.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려는 태도, 문제의 근원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용기, 그것이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의미 역시 주어지지 않는다.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성취의 가치는 크기에 있지 않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온전히 살아 있었는가, 그 즐거움에 있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당장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고요한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가. 삶의 의미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지금의 태도 속에서, 오늘의 선택 속에서 생겨난다.

사유하는 힘은 나를 바로 세우는 힘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일 나를 새롭게 세우는 일,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고 나를 존중하는 태도다. 사고의 기초를 다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자연스럽게 바로 선다. 익숙함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교직에 몸담은 지 스무 해가 넘었다. 과거의 내가 가지고 있던 사고의 틀과 지금의 틀이 같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나는 멈추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되돌아보고, 의심하고, 다시 세웠다. 자기 극복이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언어와 사고의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다. 사회가 만든 틀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중년 교사의 삶은 바쁘다. 그래서 나는 루틴을 만든다. 이른 아침,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작은 규율을 지키며 하루를 연다. 수업과 업무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은 나에게 정직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스스로에게 시련을 주는 삶은 나를 소진시키는 삶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잃는 순간, 삶 전체가 흐트러진다. 누구에게도 부당하게 행동하지 않으려 애쓰고, 흔들릴수록 나를 더 단단히 붙잡는다. 내가 걷는 길은 결국 나에게로 가는 길이다. 과거에 머무르기보다, 미래의 지향을 바라보며 걷는다.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고통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글을 썼다. 글쓰기는 나를 통제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었다. 책을 읽고, 다시 쓰고, 또 읽었다. 그 시간들이 쌓이며 나는 조금씩 성장했고, 삶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선의를 건네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감정을 통제당하지 않으려 한다. 평정심은 훈련의 결과다. 분노는 나를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분노는 의미와 가치를 남기지 않는다. 감정을 억압하지 않되,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으려 애쓴다. 나의 본성에 따라, 나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다.

언어를 바로 세우는 일은 결국 삶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언어를 점검하며, 나의 사고를 다듬으며, 나의 삶을 만들어간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자기 통제의 방식이고, 나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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