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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프생 1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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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투안 Jun 06. 2023

프랑스 어학원을 찾아서,
'불며들러 내가 왔도다!'

프생 1막 3장


불뽕가

-앙뚜안이 상타투언(쌩떼띠엔) 도착하는 대목


<아니리>

그리하야 산 넘고 물 건너 불란서 한양 파리까정 왔더니만은 불쌍코 불쌍한 나그네 앙뚜안이 갈 곳은 여기도 아니었더라. 유학원서 알려준 주소를 보아허니, 쩌어기 남녘의 리용 근처 상타투언이라는 고을이렸다. 앙뚜안은 서둘러서 채비허여 민박집 문을 나서는디!

(두둥탁!)


<창> (자진모리장단, 평조로 발랄하게)

앙뚜안이가 나가신다 대문을 열고 나갔더니

휘황찬란 불란서 한양 백태천광 파리로구나

이 모든 것 뒤로허고 내 갈 길이 어디인고

기차 타러 가는 맘이 싱숭생숭 난리로세


올랐다가 내렸다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고지고 밀고 끌어 역까정 왔더니만은

죽마고우 카드 긁어 예약해 온 차표로는

본인명의 확인불가 무용- 지물- 이라더라


아이고오 내 신세야 까막눈이 내팔자요

항의 한번 못 해보고 백유로를 또 털렸네

복잡다기 다사다난 개고생이 선연허여

눈물이 뚝- 뚝- 땀이 되어 흐르는구나


어쩌겄소 체념허고 빈 자리나 찾아주소

돈 백으로 차표사고 남은 전으로 가비사니(커피 사마시니)

이야말로 천하제일 가비맛이 아닐텐고

앙뚜안이 비로소 태평 성정을 찾았더라


<아니리>

앙뚜안이가 탄 기차가 남녘으로 내려갈 제, 사방천지 분간을 못할맹키 백설이 내리더라. 리용은 어디인고, 상타투언도 모르오니, 부지소향 실려가매 앙뚜안은 공연히 적적하더라. 몇 시간이나 지났을꼬, 상타투언에 당도허여 역전으로 나섰더니 빙천설지 깜깜한 밤이더라.


<창> (중모리장단, 계면조로 최대한 서럽게)

앙뚜안이가 읊조릴제, 내 놈의 사주팔자

역마살이 웬말이며 타국 살이가 웬말인고

조실부모도 아니옵고 야반도주도 아닐진대

어찌하야 이내 몸은 혈혈단신 홀로인고


그 때서야 앙뚜안이 뇌리가 번뜩헌디

이러다간 동사하여 부모유체도 못 추리겄소

캔디낭자 코스프레일랑 내일로 미뤄두어

내 몸 누일 기숙사나 서둘러서 찾아가세


여보시오 불님네덜(프랑스인들이여) 이내 말씀 들어보소

내 갈 길 좀 알려주오 꼬똔*이라 하옵디다

불인들이 몰려들어 이 설로에는 불가허네

심사숙고 허덜 말고 택시나 타옵게나


이 몸이 이팔청춘인디 택시가 웬말이오

파리서 백유로 털려 나는 그리는 못하겄소

절약 삼창 했더니만은 부지불식에 트램타서

앙뚜안이가 개고생길을 제 발로 걸어가더라


트램역에 내렸더니만 앙뚜안이 환장허겄네

산천초목은 어데가고 설산이라니 웬말이냐

불뽕맞은 이 내 몸이 극동에서 왔더니만은

박복한 팔자여라 산전수전을 못 면하네


캐리어를 들고 밀어 눈 밭에 길 만들어

콧물이 앞을가려 사지분간 못할 적에

꼬똔에 다왔더니 철창문이 닫혀있네

봉수아 문여시오 앙뚜안이가 도착했소.


*꼬똔 : 기숙사 이름




미술 유학을 떠나겠다고 유학원에 상담하니, 몇 군데 어학원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예산과 여러 조건들을 토대로 나에게 제시한 리스트는 주로 지방 도시의 국립대학 소속의 어학원이었다. 한국인이 적어서 불어를 배우기에 좋은 환경이고, 도시에 미대가 있으니 분위기를 경험해 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선택했던 도시는 생테티엔. Saint-Etienne.


난생처음 들어보는 도시였다. 리옹 근처에 있는 중소도시. 과거 광산업이 흥했던 곳이고 고도가 높은 편이다. 대략적인 정보만 찾아보아서는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어느 곳이든 새로운 환경일 테니 일단 가서 몸으로 부딪치자, 그런 마음이었다.


9월에 1학기가 시작해서 6월에 2학기가 끝나는 프랑스의 학체계상, 나는 1학기가 끝난 시점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학기 단위로 등록이 가능했지만 향후 미대 입시를 염두에 두고 3학기를 등록했다. 평생 가볼 수나 있을까 싶은 도시 목록에도 없던, 그러니까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곳에서 일 년 반을 보내게 된 셈이다.


2학기, 나에게는 새 학기가 시작하기까지 며칠이 남아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주어진 일은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 것뿐이었다. 주변에 장 볼 수 있는 마트가 어디에 있는지, 요리는 어떻게 해먹고, 빨래는 어디서 하는지 등의 단순한 일상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데에 집중했다. 텅 비어있던 좁디좁은 기숙사 방에 정을 붙이기까지 며칠이 걸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렇게 시간을 보낼 뿐.


2010년 1월, 프랑스 전역에 예외적으로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었다. 파리보다도 남쪽이었지만 고도가 높았던 생테티엔에는 겨우내 눈이 가득 쌓여있었다.


기숙사 방 창 밖 풍경. 2010년.
생테티엔 시내에는 트램이 다닌다. 2010년.
눈이 가득 쌓인 도시. 2010년.
동네 산책을 해본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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