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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옷은 못 들어가는 관광지

주말엔 나도 관광객

by 에밀리

주말이다. 낯선 도시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파타야의 바닷가로 향했다. 사실 이번 여행은 당일치기로 놀고 돌아올 생각으로 아무런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나온 거였는데, 그 덕분에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유가 참 좋았다.


이 또한 내가 태국 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이겠지.


오늘은 맛집이라 불리는 곳을 찾았다.

스크린샷 2025-07-07 오전 9.28.01.png 챗지피티로 맛집을 찾는과정

나는 요즘은 맛집을 찾는데에 챗지피티를 많이 쓰는 편인데, 최근에 여행을 다니면서 챗지피티가 알려준 맛집을 찾아갔더니 나쁘지 않은 기억 때문이었다.


특히 "현지 언어로 찾아달라"는 프롬프트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는 현지인의 리뷰나 추천을 보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했는데, 이젠 AI가 그 나라의 언어로 검색해 결과를 한국어로 가져와주는 세상이다.


태국어로 파타야 맛집 검색해줘


챗지피티와 대화를 해 보니 파타야는 바다 근처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해산물을 먹는게 좋을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현지인으로 살아왔지만, 오늘만은 관광객이니까 관광지 스러운곳을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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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내부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딱 느껴졌다. 아, 여긴 현지인보다는 외국인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구나.


일단 직원분이 전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점에서 현지 식당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관광객들이 좋아할 법 한 탁 트인 바다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 바다 위로 햇살이 반짝이고, 야외 테이블마다 커다란 파라솔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가격표를 보고 살짝 웃음이 났다.


랍스터 하나에 550바트, 한화로 2만 3천 원 정도.

내가 평소 회사 근처에서 먹는 점심은 고작 40바트인데, 여긴 그 열 배를 넘는다.


하지만 랍스터를 이만 삼천원에 먹을 수 있다는건 얼마나 축복받은 가격인가!


랍스터가 2만3천원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망설임 없이 랍스터 하나와 망고스무디(170바트-7100원), 그리고 흰쌀밥 (25바트)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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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요리들


망고스무디를 마시며 잠깐 상념에 잠겼다. 회사에서라면 이 스무디도 30바트였겠지. 한국에서는 이 가격이면 정말 싸다고 느꼈을 텐데, 태국 물가에 익숙해진 지금의 나는 괜히 비싸다고 느끼고 있다. 참 이상하다.


한 나라에서의 감각이 또 다른 나라에서는 완전히 달라지는구나. 한국의 자아와 태국의 자아가 속으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계산을 잠시 내려두고 싶었다. 평일에는 태국 공장 회사원이지만 주말엔 관광객인 삶. 그리고 관광객스럽게 비싼 레스토랑에 와서 평소 먹는 음식보다 10배는 비싼 랍스터를 먹는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봤자 23000원이다!)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난 정말 '관광객 스러운 곳' 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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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진리의 성전. 이름부터 거창하게 관광지스럽다.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한 발 물러서게 되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웬지 현지인이 아니라 정말 관광객처럼 다니고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매표소에 들어가자마자 한국어가 들렸다.


진리의 성전은 매표소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있어 조금 걸어야 했다. 그리고 진리의 성전은 가이드가 동행해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데, 난 영어 가이드를 신청했기 때문에 20분정도 기다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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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게 당근을 줄 수 있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동물들 (말과 양 등...)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체험이 있었다. 난 말띠라 그런가 말을 정말 좋아하기 떄문에 말에게 당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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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 규제와 나의 복장

성전에 입장하기 전 복장을 확인하는 곳이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짧은 치마나 야한 옷을 입지 못하게 되어있다. 티켓을 확인하는 직원분은 나의 복장을 훑더니 들어가도 된다고 해주었다.


성전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기시감이 몰려왔다. ‘여기… 나 예전에 온 적 있지 않았나?’

나중에 어머니와 전화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넌 기억도 안 나? 나는 딱 사진 보자마자 생각났는데.”

알고 보니 어릴 적 가족여행으로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기억은 희미했지만, 유일하게 하나 확실하게 기억 나는것은 그때도 복장검사가 신기하게 다가왔다는 거다. 복장검사가 낮이 익어서 기억난 여행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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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성전은, 종교의 틀을 넘어 하나의 예술 그 자체였다.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나무 궁전처럼 조용히 바닷가를 등지고 서 있는데, 전통 태국식 건축양식에 힌두교와 불교의 신화를 절묘하게 결합한 곳이다. 건물을 구성하는 나무 하나하나 의미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는 점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진리의 성전은 특이하게, 못 하나 없이 나무를 이어붙여 지어진 건물이다. 전통 태국식 건축양식이라나.


성전의 외벽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롭게 보인다. 천장부터 문 기둥까지,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정교한 조각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신과 인간, 우주와 자연의 순환에 대한 상징들이 마치 숨을 쉬듯 얽혀 있고, 보는 이의 사고를 멈추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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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들어서면 어두운 목재의 깊이와 햇살이 만들어내는 명암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지는 나무 기둥은 마치 우주의 축처럼 느껴지고, 그 위를 장식한 각종 신들의 형상은 경건함을 넘어 경이로움을 준다.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은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진리의 성전에는 수백명의 목수들이 실시간으로 나무를 깎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 작품을 건물에 합치거나 대체하는 식으로 건물을 유지한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처럼, 진리의 성전은 단 한 번도 완성된 적이 없다. 오래된 조각은 시간이 지나 사라지고, 그 자리는 늘 새로운 작품으로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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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

진리의 성전 입구 근처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커피 향이 난다. 수백명의 목수들이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잡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실제로 수백 명의 목수들이 성전의 여러 부분에서 조각을 새기고, 나무를 깎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목격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이곳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계속해서 글을 적고, 스케치를 했다. 듣는 것만으로는 이 감정을 담아내기에 부족했다. 내가 느끼는 이 압도적인 감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진리의 성전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아름답고, 언제나 만들어지고 있기에 더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오래된 나를 잠시 내려놓고, 낯선 도시의 바람과, 반짝이는 햇살, 그리고 끊임없이 조각되는 시간의 결을 느꼈다.

하루뿐인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 하루는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다.




(다음날, 회사)


옆자리 상사: 주말동안 뭐했어?

나: 파타야에 갔어요 (사진을 보여주며)

옆자리 상사: ??? 나 여기 한번도 안가봤어ㅋㅋㅋ (파타야 근처 3n년째 사는 태국인)


태국 현지 사람들은 관광지에 잘 가지 않는다... (어찌보면 당연함, 경복궁엔 외국인들이 더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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