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나는 매일 베란다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1

<1화> 베란다, 기다림이 시작된 자리

by 예연

그해 여름을 베란다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내가 기다린 것은 한 통의 편지.

그 편지는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와야 했다.



대입 시험을 문전에 둔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은 숨이 차도록 내용이 많다. 교사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내달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이 아프도록 필기를 하고 질문을 하며 매달린다. 


하지만 수면 부족 상태에서 춘곤증에 식곤증까지 덮치는 때면 모범생들마저도 눈꺼풀이 까물까물한다.


  “여러분, 너무 피곤해 보입니다.  남은 20분을 제대로 집중하기 위해 5분만 쉬세요.”

  “아…….”


여기저기서 새어 나오는 안도의 탄식. 상당수는 이미 상체를 중력에 완전히 내맡겼다. 나는 아픈 목을 달래기 위해 물 한 모금을 마신다. 그때, 정적을 깨고 생뚱맞은 소리가 들린다.


  “샘! 쉬는 동안 첫사랑 얘기해 줘요.”


‘사랑’이라는 말에 몇몇 아이들 눈에 힘이 들어가고 나의 반응을 살핀다. 비록 ‘대학’, ‘공부’라는 틀에 갇혀 사는 수험생활이지만, 이 젊은 아이들에게 이성이나 사랑에 대한 본능적인 동경이 왜 없겠는가.


“샘, 얘기 듣고 싶어요. 잠이 확 깰 것 같아요.”


간절함이 묻어 있는 말투로 한 아이가 분위기를 몰아간다.


  “음…, 대신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짧게. 듣고 나면 더 열심히 하는 겁니다.”


배시시 웃는 얼굴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이들이 밝게 웃는 모습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감동적이다. 목을 새로 가다듬는다.



내 첫사랑은 한 통의 편지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해 여름, 방학과 함께 베란다에 돗자리를 펴고 내 거처를 마련했다. 아파트 앞 동에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집배원이 나타나는 걸 베란다에서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그가 등장하면 재빨리 현관으로 내려가 우리 집 우편물을 확인했다.


돗자리 위에 살림살이가 하나씩 늘어갔다. 처음엔 부채, 그다음엔 라디오, 그리곤 물병, 물컵, 책, 연습장, 연필, 거울, 두루마리 휴지, 손톱깎이…. 내가 하는 짓이 신경 쓰였던지 대체 왜 거기서 그러는 거냐고 묻는 언니의 물음에,


  “여기가 시원하니까.”


태연한 척 말했다.


   그해의 최고 기온에 대한 예보가 아침 뉴스의 주요 내용으로 보도되던 날, 국그릇에 얼려 놓은 커다란 얼음 덩어리로 겨우 낮 동안을 버텼다. 밤이 되어 기온이 조금 떨어지자 창밖에서 언뜻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거다 싶어서 베개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돗자리 위에 늘어놓은 짐들은 대충 발로 쓱 밀었다. 베개를 베고 눕자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지자 촘촘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모래 알갱이 같은 별들. 파르르 떨며 투명하게 빛났다.


라디오에서는 차분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의  DJ가 진행하는 영화 음악 프로를 하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공중전화에서 기타를 치며 부르는 사랑 노래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괜스레 미소가 스며 나왔다.


별이 그 수를 더할수록 하늘은 옻칠을 한 듯 윤기 나는 새까만 빛깔이 되었다. 나는 그 허공 한가운데로 떠올랐다. 별들이 마음속에 알알이 내려앉았다.


   기다리던 편지의 발신자는 여자중학교 1학년 때의 국어 선생님. 내게 그분은 존경스러운 여러 선생님들 중 한 분이었을 뿐, 처음엔 그 어떤 사적인 감정도 없었다. 그분은 학생들에게 이성으로서의 인기가 무척 많았다.


그 당시는 성별이 분리되어 학교가 운영될 때라 이성 교제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여학교에서 남자 선생님들은 흠모의 대상이기 쉬웠다.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은 복도에서 어떻게든 그분께 말을 시켜보려고 서성거렸다. 그러면 그분은 가던 길을 멈추고 대화를 전부 받아주었다.


그분이 지나가고 나면 선생님이 누구와 더 눈을 맞췄고, 누구에게 더 웃어 보였는지를 놓고 투닥거리기도 했다. 왜들 그러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하던 1학년들도 봄이 가고 시나브로 여름이 오는 속에서 제법 몸의 굴곡이 바뀌어 나가며 여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발육 상태가 남달라 가슴 크기가 이미 성인만 하게 크고 틈만 나면 손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같은 반 혜인이는 국어 선생님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 공공연히 자신이 장차 그분의 아내가 될 것임을 자신감이 가득한 몸짓과 표정으로 공표하고는 했다.


   그날도 혜인이는 아침부터 손거울에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국어 선생님을 화제로 유일한 단짝인 자옥이에게 자랑거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아이들은 혜인이가 자신과 대비되는 면이 많은,  거기다 착하고 순진하기까지 한 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미모를 돋보이게 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인다고 수군거렸다.)


둘의 대화 내용인즉, 어제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는데 그 내용이 어떻고, 글씨체가 어떻고, 마지막 인사가 어떻고... 순간 의아했다.


  ‘뭐? 선생님이 학생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내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교사의 권위적인 태도로 사제지간의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적인 내용이 담긴, ‘안녕.’ 하는 인사가 담긴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그때 내게 편지라는 것은 또래끼리 비밀 얘기나 속마음을 털어놓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과? 그 묘한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며칠을 문득문득 그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느 늦은 밤, 밤기운에 빠져 있던 나는 결단을 내렸다.


  ‘한번 보내 보자. 그래서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


   사춘기에 접어들어 자아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면서 여러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답을 찾아 글들은 차고 넘치게 쏟아져 나왔다. 새벽이 되도록 잠들지 못했다. 


친구들에게서는 그 답을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을 선생님께 여쭈었다. 맞춤법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혹시 예의가 없어 보이지는 않는지 수도 없이 읽고 고치며 완성해 낸 편지를 우체통 앞에 서서 넣을지 말지를 고민했다.

  ‘혜인이는 원래 선생님하고 친하잖아. 나는 누구인지조차도 모르실 텐데…. 답장 안 오면 괜히 나만 창피해지는 거 아닐까?’


아직 갈등 중인데 그만 손이 먼저 움직여 우체통 입구에 편지를 슬며시 밀어 넣어 버렸다. 편지는 흔적도 없이 우체통 속으로 사라졌다. 잠깐 동안 그 까만 입구를 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여름, 그 편지 한 통으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여기까지! To be continued.”


외치고는 휙 하고 돌아서서 다음 단원명을 칠판에 적어 나간다. 등 뒤로 아이들이 내지르는 야유의 함성이 교실을 꽉 채운다.


  “에이 선생님, 너무 짧아요. 답장이 왔는지까지만 말해주면 안 돼요?”

  “야, 답장이 왔겠지. 그러니까 사랑 이야기잖아.”

  “아닐 수도 있어. 그렇죠, 샘?”


나는 말려들지 않는다.


  “지금 살펴볼 이 작품은 수능 시험에 나올 확률이 꽤 높아요.”


   이 한마디에 아이들은 가시지 않는 여운을 아쉬운 표정에 담은 채 필기할 준비를 한다. 잠이 어느 정도 달아난 맑은 눈을 하고서. 이렇게 나의 첫사랑 이야기는 뼈대만 간추려 미니시리즈 드라마 수 회분으로 감질나게 나뉘어 시청자들이 유독 지쳐 보일 때면 방영됐다.



- 이 글은 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