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나는 매일
베란다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2

<2화> 기다림이 길어지던 날들

by 예연

그 드라마는 계속되었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 다음날부터 집 우편함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전엔 굳이 우편함을 눈여겨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그 속엔 부모님 앞으로 온 각종 고지서 같은 것들만 들어 있으므로 그쪽엔 눈길도 주지 않고 휑하니 지나쳤었다.


그랬던 우편함이 이제 와서 무슨 볼일이냐는 듯 거만한 눈으로 나를 내리깔아 보며 거대해져 있었다. 우편함의 텅 빈 공간은 유독 새까맣고 크게 도드라져 보였다. 풀이 죽어 계단을 느릿느릿 걸어 올라갔다.


   그다음 날부터 영문을 알 수 없는 당황스러운 변화가 내게 찾아왔다. 수업 시간에 여느 때처럼 함박웃음을 웃는 국어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시선이 황급히 아래로 떨어졌다.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고, 진땀이 나서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후엔 복도 저 멀리서 걸어오는 선생님을 보고는 찰나의 순간에 친구들 뒤로 몸을 숨기려 안간힘을 쓰다가 친구 발을 밟아 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소동이 벌어져서 선생님의 주의를 끌게 됐다. 가까이 다가오셨다.


둘 사이의 거리가 짧아진 만큼 내 심박 수 주기도 짧아져 버렸다. 머리가 핑 돌고 식은땀이 났다. 그 이후 모든 수업 시간 동안 칠판에도, 교과서에도, 창밖의 풍경에도 오직 그분만이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날도 우편함 속에 선생님의 편지는 없었다. 부모님 앞으로 온 우편물을 손에 들고 터덕터덕 계단을 올랐다. 문득 우편물이 도착하는 데에 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해졌다.


  “언니, 편지 보내면 상대방이 받는 데 며칠이나 걸려?”

  “편지? 한 3, 4일 걸릴걸?”

  “아! 그렇게 오래 걸려?”


더 있어야 답장이 오겠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그다음 날은 여름 방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내 방학 계획표에 가족 여행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학원도 다니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그저 고요하고 지루했다.


엄마는 자식이 많은 데다 술을 즐기는 아버지와 전쟁을 치르느라 막내인 내게까지 잔소리를 할 여력이 없었다. 그 덕에 종일 라디오를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독서를 하며 빈둥거렸다.


하지만 이번 방학은 첫날부터 뭔가 달랐다. 언제 올지 모르는 선생님의 편지를 기다리는 동안 희망과 실망이 끝없이 엇갈렸다. 하루가 꿈틀거렸다.


매미들의 불협화음을 들으며 잠이 깼다. 늦은 아침을 먹고 필요한 짐을 챙겨 베란다 돗자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난간 밖 집배원의 등장을 의식하며 이것저것 실없는 짓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베란다는 더없이 편안한 놀이터이자 안식처가 돼 주었다.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내가 계산해 본 날짜에서 며칠이 더 지나고 있었다. 집배원이 나타날 때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우편함을 확인했다. 내게 온 편지는 없었다. 가족들 앞으로 온 우편물을 챙겨다 주는 착한 일만 하고 있었다.


내일은 오겠지. 또 그다음 날에는, 선생님도 방학이니까 좀 쉬면서 천천히 답장을 쓸 테니까 시간이 걸리는 거겠지. 그런 위안과 실망의 반복 속에서 방학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 역시 선생님은 나를 전혀 모르시는 거였나 봐. 혜인이는 선생님과 친하고 얼굴도 예쁘니까. 그래서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거겠지.’


그렇게 담담한 척하며 결론을 내렸다. 묶여 있던 목줄이 풀어지는 것같이 후련하기도 했다. 다만, 편지 속에 늘어놓은 내 어설픈 의견들을 제발 선생님께서 기억하지 못하시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몇 명인가는 방학 동안 뒤바뀐 낮과 밤 때문에 하품만 연거푸 해댔다. 국어 시간, 선생님은 여전히 밝고 환한 표정으로 활기차게 인사를 하며 교실 앞문을 열었다. 편지를 보내기 전만큼은 아니어도 선생님과 조심스럽게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오지도 않을 답장을 기다리며 방학 내내 혼자서 애를 태웠던 일이 마치 꿈속에서 벌어진 일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것을 부정이라도 하듯 내게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면 자동적으로 내 시선이 우편함을 향했다. 우편물이 올 시간이든 아니든 그곳을 지날 때면 버릇처럼 우편함을 쳐다보며 지나갔다.


 개학을 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서쪽에서 따갑게 쏟아지는 뙤약볕에 인상을 쓰며 현관에 들어섰다. 새하얗고 기다란 편지 봉투 하나가 우리 집 우편함에 길쭉하니 튀어나오게 꽂혀 있었다.


꺼내어 수신자를 살피려고 봉투 앞면을 확인하는데, 너무나 익숙한 글씨체와 낯익은 이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정지해 버렸다.


국어 선생님이다….



- 여러분도 간절한 기다림의 기억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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