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우리는 편지로 통했다
편지를 들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깊은숨으로 일단 마음을 진정시켰다. 봉투 입구를 조심히 뜯고 단정하게 접혀 있는 편지지를 꺼냈다.
줄만 그어져 있는 하얀 편지지. 그 위에 늘 칠판에서나 보던 국어 선생님의 글씨가 있었다. 즐겨 사용하시던 수성펜으로 쓴 것 같은 느낌의 글씨가 투박한 편지지와 잘 어울렸다.
방학식이 있던 날, 고향인 지방으로 내려가 머물다가 개학 전날이 돼서야 올라왔다고 했다. 개학 날 교무실 자리에 놓여 있던 내 편지를 그제야 봤고, 너무 늦어 버린 답장을 서둘러 쓴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항상 조용히 집중하는 너를 기억한다며 2학기에도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라고 했다.
그 편지를 몇 번쯤 반복해서 읽었을까? 열 번? 오십 번? 아마도 백 번은 읽지 않았을까? 편지를 통으로 외울 정도였으니까.
그날 밤 괜히 신경 쓰이는 언니를 피해 베란다에 작은 상을 펴고 앉았다. 교과서로 편지지의 윗부분을 가리고 답장을 써 내려갔다. 늦은 밤까지 편지는 이어졌다.
그분의 편지가 신발 상자에 몇 통쯤 쌓였다. 그동안 조금씩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우리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에서 선생님을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선생님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시선을 떨구었다. 제발 얼굴이 빨개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지막이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작은 목소리로 그저 ‘어’하는 대답뿐…. 그렇게 서로 스쳐 지나갔다. 학생들과 장난치기를 좋아해 복도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그냥 보내지 않는 분인데….
만일 혜인이라도 마주쳤다면,
“키는 어제보다 좀 컸어?”
따위의 농담에, 혜인이는 아양을 떨었을 테고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퍼져나갔을 텐데…. 하지만 뭐,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편지로 통하는 사이니까!
언젠가 그분께 질문할 것이 있다는 친구의 부탁으로 함께 교무실에 간 적이 있었다. 이럴 땐 싫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그분 앞에만 서면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말도 못 하는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싫었다. 하지만 멋진 제목의 책들이 꽂힌 책장을 배경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그분의 모습은 나를 설레게 했다.
친구는 국어 시간에 배운 시에 대한 질문을 했다. 공교롭게도 그 내용은 얼마 전 우리가 편지에서 주고받은 적이 있던 내용이었다. 수업 내용에 대한 질문은 내가 그분에게 편지를 쓰기 위한 최고의 당위적인 화젯거리였다. 선생님은,
“아, 그 부분이 쉽게 잘 이해가 안 되지? 그건 말이야. 시속에서 화자가…”
설명을 멈췄다. 불현듯 나를 봤다.
“네가 설명해 줄래?”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으며 버벅거리긴 했지만, 편지에서 말씀해 주신 대로 설명을 했다. 친구는 맞냐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선생님.
화끈거리는 내 얼굴은 감출 수 없는 기쁨을 억제하느라 이곳저곳이 부자연스럽게 경직되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분의 청바지 끝단만 빤히 쳐다봤다.
교무실을 나오자마자, 공부에 대한 자존심이 센 그 친구는 퉁명스럽게 내게 물었다.
“야,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 넌 학원도 안 다니고, 공부도 잘 안 하잖아?”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들키면 안 되니까. 우리는 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사이니까!
우리의 서신 교환은 계속되었고, 나는 2학년이 되었다. 반 배정이 발표되던 날,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었는지보다 국어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가 애타게 궁금했다. 그분이 우리 반의 국어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해에도 그분은 여전히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인기 연예인보다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를 나온 게 틀림없다거나, 결혼하면 아주 가정적일 거라거나, 그분 정도면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겠냐거나…. 어떤 이야기들은 나를 우울하게 했고, 때로 잠 못 들게 했다.
남자 선생님들이 방과 후에 축구를 하기라도 하면 교실은 아이들로 가득했다. 종례가 끝나기도 전에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던 아이들이 그날은 피켓까지 즉석에서 제작해 흔들고 소리소리 지르며 응원했다.
나는 문제집을 풀며 공부하는 척을 했다. 아이들의 환호와 대화 속 중계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귀를 기울이면서. 그때,
“어머!”
“어떡해, 어떡해!”
몇몇의 비명소리에 아이들이 창문으로 몰려갔다. 나는 펜을 떨어뜨린 채, 일어서서 까치발을 하고 운동장을 살폈다.
누군가 넘어져 있었다. 선생님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