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몸바사로!

우간다인과의 사랑, 영화 화이트 마사이

by 만다지
KakaoTalk_20210914_190807935_01.jpg 영화 화이트 마사이 캡처본.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RWmU9CHgss&t=11s

2009년 한국인 봉사자들 중에서는 외장하드에 영화를 많이 담아와서 공유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서로의 영화를 비교해보고 공유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내가 우간다, 아부다비, 라오스, 말라위를 거쳐오며 계속됐는데, 2019년 전까지는 나도 외장하드에 드라마,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잔뜩 넣고 다녔다. 새로 온 사람이 있으면 외장하드부터 까는(?) 것이 일종의 통성명과도 같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지금은 넷플릭스나 유투브에 접근 가능한 인터넷 속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굳이 외장하드에 여러가지 영상을 담아오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고보니 10년 새 아프리카의 인터넷 속도도 몰라보게 개선되었음을 새삼 느낀다.


당시 한국인 봉사자들 사이에서 가장 Hot했던 영화는 “화이트 마사이 Then White Massai”였다. 유럽인 여자가 약혼자와 함께 케냐 몸바사(Mombasa)를 찾았다가 마사이족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아 키우다 문화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남자를 떠나는 내용이었는데, 아무래도 우간다와 케냐라는 지리적인 근접성과 우리가 경험한 문화차이 등으로 인해 영화에 더욱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한동안은 영화 속 유럽인 여자처럼 몸바사에서 사랑을 찾아보자는 의미로 “가자, 몸바사로!”라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곤 했다.


영화에서 남자는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고국으로 떠날 수 있도록 신원보증을 해주는 것을 망설이다 이내 승낙하고 여자를 보내주는데, 버스에 올라타려는 여자에게 다시 돌아올 것인지 재차 묻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I know you will never come back”이라고 말하고 쓸쓸한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를 두고 w는 “한 여자가 두 남자를 슬프게 한 영화’라고 평가했고, 나를 비롯한 다른 봉사자들도 사랑에 있어서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던 듯하다. 단순히 “신데렐라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 속 결말처럼 인생사가 어느 한 단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Enjoy로 끝낼 것인가, Future를 만들어 낼 것인가는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우간다인과 사랑을 나눌 수는 있지만, 결혼은 그들 속으로 파고들어 온전히 스며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느꼈다.


어느 날 카잉가(Kayinga)가 나에게 남자친구는 없는지 묻기에 “금방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남자친구를 어떻게 사귀냐”며 웃었다. 그러자 카잉가는 “UPA 외국인 봉사자들은 모두 우간다인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하나씩 있다던데?”라며 나에게 더 캐낼 것은 없나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사실 카잉가가 주워들은 이야기는 사실이었고, 아시아인을 제외한 봉사자들은 대부분 우간다인과 연애 중이었다. 걔 중 일부는 정말 결혼까지 성공하여 우간다인 연인을 고국으로 데려가는 사례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봉사활동을 마치면 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마치 현지 처, 현지 남편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외국인 봉사자들과 사귀는 우간다인들 또한 진지한 경우는 드물었고, 사귀던 봉사자가 떠나면 새로 온 봉사자와 잘 해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순진한 현지인들의 마음을 흔들고 떠나버리는 외국인들도 싫었지만 이기적인 사랑의 상대가 되는 현지인들 또한 그리 순진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도 들어서 이러한 관계에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정의하는 사랑과 타인이 정의하는 사랑은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짧은 기간의 사랑이라도 체류 기간이라는 시간적 제약을 사전에 알고 시작한 관계였다면 이별 또한 한순간의 이별은 아닐 것이며, 정해진 시간 동안 서로에게 충실한 관계로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면 그것도 또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말 진지한 관계라는 판단이 든다면 미래를 계획하고 서로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험이 시간, 감정 낭비라고 생각되진 않을 터였다.


언젠가 캄보디아에서 다시 만난 c와 우간다 봉사활동에 대해 추억하다가, 왜 당시 유럽인 여성 봉사자들이 우간다인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신체적 매력, 성적 매력… 다 떠나서 이유는 하나라는 것이다. 대부분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나이에 봉사활동을 왔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을 가족 이외에는 들어 본 적 없는데, 우간다 남자들이 “사랑해”라고 말하면 거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순수한 시절의 사랑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다시 현지에 돌아와서 사랑을 이어가거나 결혼하거나 하는 등 헌신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과 감정은 그 당사자들만 아는 거겠지만, 당시 하나의 시류와 같았던 우간다인과의 연애에는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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