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합은 우리가 아닐 수 있다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

by 만다지
KakaoTalk_20210914_215717801.jpg 도시 문명의 전파소와도 같았던 캄팔라 완데게야(Wandegeya)에 위치한 아캄웨시(Akamwesi) 호스텔에서 모인 한국인들의 모습

처음 우간다에 가기 전 나는 어쩌면 잘못돼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겁을 먹어도 한참 먹었던 것인데, 짧은 봉사활동 기간이나마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말하기 위해 정말 많은 지인들을 만났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디로 간다 말도 없이 한국을 떠나는 게 일쑤라 사람들에게 불평도 많이 듣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간다에서 만난 인연들은 정말 각별하게 느껴졌다. 처음 경험해보는 해외에서의 중장기 체류 그리고 아프리카라는 환상속의 공간이 절묘하게 맞물리며 나에게는 “온 몸의 세포가 열리는” 기분을 선사하기도 했던 우간다였다. 더욱이 한달 남짓 모국어를 말하지 못하다 만난 한국인 봉사자들은 같은 한국어를 말한다는 점만으로도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듯 하다.


한국에서의 나는 항상 약자라는 기분을 떨치지 못했는데 우간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난생 처음으로 내가 약자가 아니라고 느꼈다. “부모님 뭐하시니”라는 질문만 들으면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배경에 대해 늘 자신감이 없었고 어서 빨리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향인 작은 섬 완도를 떠나 머나먼 서울로 대학을 가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 나름대로 농어촌 전형도 아닌 정시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왔다는 자부심도 잠시, 이번에는 “어느 대학에 다니니”라는 질문에 작아졌다. 내 나름대로 노력해서 온 학교였지만, 그런 학교도 있었나 하는 표정으로 “응, 그래 성공해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늘 자신감이 없는 삶만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 뭐하시냐는 질문에 “니 부모 인생이랑 니 인생이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맞받아치기도 했고, 완도는 촌구석이라는 비아냥에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데요”라며 말대꾸하기도 했다. 대학 때도 수업은 안 들어갈 지 언정 신발 뒷축이 닳도록 취재현장을 누볐고, 기고 원고를 받기 위해 교수님에게 30번 넘게 전화할 정도로 독하게 살았다. 한번 차인 후에는 내 외모를 탓하며 두달 동안 13키로 넘게 살을 빼 보기도 했고, 살 찐 여자들을 보면 왜 살을 못 빼는지 답답함도 느꼈다. 하지만 내 마음 근원에 자리잡은 약자의식은 늘 나를 공허하게 했고, 내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를 채찍질하는데 열중하게 했다.


우간다에서 나는 나를 스스로 옥죄던 것 들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모두가 평등한 선에서 출발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정환경, 학벌, 외모 등은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는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누가 돈이 많건 적건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은 정해져 있었기에 소비 패턴으로 부를 가늠하는 짓거리 또한 없었다. 짧은 봉사활동 기간동안 생애 처음으로 느낀 해방감으로 만난 친구들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했고,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들과의 추억은 가슴 속 한 켠에 곱게 자리잡고 있다.


물론 우간다에 체류하던 한국인 20대들로 구성된 작은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늘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작은 인간관계는 편안함을 주기도 했지만 서로의 생활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는 생각에 상대가 무리를 벗어나고자 하면 서운한 감정마저 느끼곤 했던 때였다. 서로 같은 감정을 나누는 것을 공감이라고 한다면 공감은 했더라도 공감의 결과물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그때는 몰랐다. 너와 나의 합은 우리지만 너와 내가 우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왔다고 해서 그 도움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건 내 기대에 불과할 수도 있고, 내가 기억하는 도움의 크기가 상대가 기억하는 크기와 다를 수도 있다. 같은 현상에 대해 서로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던 시절이기도 했다.


우간다 봉사활동을 계기로 한국을 떠나 계속해서 객지생활을 해왔지만 나는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들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는 편이다. 만나고 안 만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너무 편하지 않도록 심리적 거리를 1미터 정도 두는 것이다. 그건 살아온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게 될 심적 무게에 대해 알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즐거움과 갈등을 수반하게 마련인데 흙탕물이 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이 많은 한국에 비해 해외생활은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적다. 내가 한 말이 와전돼서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도 하는 작은 사회에서는 작은 인간관계를 촘촘히 가꾸기 보다는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두는 편이 서로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 “언제 왔어요?”, “언제 가세요?”라는 질문으로 정해진 체류 기간동안 가족보다 가깝게 지내는 언니, 오빠, 동생, 친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립된 환경과 관계가 주는 친밀감의 장단점을 아는 나는 거리를 살짝 두고 서로 조심할 수 있는 관계가 좋다.



keyword
이전 21화망국의 한(恨)을 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