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말라리아에 걸리다

어린 아이였다면 못 버틸 고통

by 만다지
KakaoTalk_20210915_183713430.jpg 이 사진은 2010년 우간다를 떠나기전 찍은 사진인데, 말라리아 걸렸을 때 힘이 없어서 어디든 기대곤 했던 모습이랑 비슷해서 가져왔음.

우기가 되자 말라리아에 걸리는 봉사자들이 늘어갔다. 누구나 엔테베 공항에 내리는 순간 모기에 물리기 마련이라 언제 말라리아에 걸릴 지 모르는 일이었다. 말라리아도 단계가 있어서 가볍게 앓는 사람도 있지만 중증에 이르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사태가 생기는데, 대만인 봉사자 한 명은 증상이 심각하여 나이로비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우간다에서 손쓸 수 없는 상태라 급하게 대만인 사업가가 마련해준 헬기를 타고 나이로비로 이송되어 갔다고 했다. 내가 만약 말라리아에 걸려서 심각한 상황이면 어떻게 될지를 혼자 상상해보았다. 아마 치왕갈라에서 캄팔라까지 이동하는 동안 구불구불한 흙길에서 숨을 거두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바나나 잎을 바라보고 ‘그래도 즐거웠다’ 되뇌며 눈을 감을 것만 같았다.


주말마다 치왕갈라와 캄팔라를 오가느라 쌓인 피로 때문이었을까. 나도 결국 말라리아에 걸리고 말았다. 여느 때처럼 밤새 술 마신 다음 날 자고 일어나보니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그냥 숙취라고 생각한 나는 친구들과 함께 마사카행 미니버스에 자리를 잡았다. 멀미가 나는 듯 어지러웠지만 빈 속에 차를 타서겠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었다. 마사카에 도착하자 온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어지러워 입안에서 맴도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게 되었다. 치왕갈라로 향하는 택시를 잡은 친구들은 나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했지만 걷는 것조차 힘겨웠고, 훗날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술이 덜 깬 줄 알았다고 한다…


간신히 치왕갈라 숙소에 도착하니 두통, 발열, 오한, 오심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옷을 껴입고 담요를 뒤집어쓴 채 옆 마을 마콘도(Makondo)로 간 친구들을 기다렸다. 심상치 않은 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내 이마를 짚어보더니 “보통 아픈 게 아닌 거 같은데?”하고 걱정하였다. 소식을 들은 카잉가(Kayinga)는 “말라리아가 틀림없다”고 말하며, 저녁에는 병원들이 문을 닫았으니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머리 아프고, 열나고, 춥고, 구역질나는 밤을 보내는 가운데 이번에는 설사가 시작되었다. 숙소에서 화장실까지 걷을 힘도 없는데다, 재래식 화장실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똥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났지만 어떻게든 싸야 하는 이 현실이 절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설사는 시간 당 3번 꼴로 발생했고 나중에는 물만 마셔도 배가 아파왔다.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침이 되자 증상은 더 심해졌고, 나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차가운 방바닥을 뒹굴었다. 누군가 방문 앞에서 나를 부르자 문을 열어 고개를 들어보니, 최근에 옆집으로 이사 온 교감 선생님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릇들을 집 앞에 늘어놓았냐”며 화내는 그녀가 가리키는 손가락 사이로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꺼내놓은 그릇들과 제리캔(Jerrycan)이 보였다. “치우겠다”고 말한 뒤 밖으로 힘겹게 나가보니 교감 선생님은 물론 그릇, 제리캔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그날 교감 선생님은 학교로 복귀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릇이나 제리캔 또한 내가 캄팔라로 가기 전 모두 방안에 들여놓았던 터라, 나를 타박한 교감 선생님도 집 앞의 그릇과 제리캔도 실은 내가 본 환시였던 것이다.


보다(Bodaboda 오토바이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 중심을 잃어 바닥에 떨어질 뻔한 내가 걱정된 친구들은 뒤에 앉아서 나를 잡아 주었다. 마콘도 병원에서 간단한 피검사 후 “Positive” 진단과 함께 이틀 치 약이 주어졌는데, 차도가 보이지 않자 다시 방문하여 열흘 치 약을 처방 받았다. 약 복용을 위해선 무엇이든 먹어야 했지만 한입 먹고 더는 먹을 수가 없었다. 먹고 싶은 게 생겨 입에 댈라 치면 입맛이 다시 사라졌다. 혼자 방안에 누워있던 나는 친구들이 사다 놓은 짜파티(Chapati)를 조금씩 뜯어먹었고, 마사카에 나가는 카잉가에게 오렌지 주스를 부탁하여 홀짝일 뿐이었다. 카잉가는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며 마토케(Matoke 우간다 주식)를 주겠다고 했지만 썩 반가운 호의가 아니었다. 친구들은 나를 그들의 숙소로 데려갔고 마콘도 초등학교 교장인 벤(Ben)은 가장 좋은 방을 나에게 내어주었다. 몸이 아프니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났다.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짭짤한 계란 후라이가 먹고 싶었던 나는 벤의 부인이 만들어준 후라이가 싱겁게 느껴지자 신경질을 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망나니 짓이었다.


밥과 약을 먹고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하는 게 일이었던 나는 힘이 없어서 걸을 수도 없는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토할 것 같아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던 어느 날 밤이었을까. 안방을 내어준 채 작은 방으로 옮긴 네 식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Kim은 언제 나아요?”라고 묻는 아들 벤(Ben Junior)의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물론 내가 완쾌해야 그들이 안방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는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먼저 느껴졌다. 말라리아는 열흘이 지나자 회복됐고 높은 열로 인해 잠시 겪었던 사시 또한 사라졌다. 말 그대로 온 몸으로 아팠던 말라리아를 한번 겪고 나니, 성인이라 버텼지 어린 아이였다면 못 버틸 고통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독한 말라리아를 한번 겪은 후 다행히 지금까지 말라리아가 날 찾아왔던 적은 한번도 없다. 다시 걸린다면 경증으로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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