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일본인의 음주대결
주말마다 캄팔라로 향하던 나에게서 치왕갈라 이야기를 들은 한국인 봉사자들은 나의 생활에 대해 몹시 궁금해하며 치왕갈라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부터 집을 청소하고 장을 봐서 먹을 것을 마련하는 한편 술집에 들러 맥주를 한짝 구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점심때가 다 돼서 도착한 친구들은 벌써 지친 모습이었고 그들의 여정 또한 구불구불한 흙길처럼 험난했다. 마사카 시내에서 운좋게도 바로 출발하는 택시를 탔는데, 어쩐일로 여러사람을 태우지 않고 한국인들만 태운 것이 수상하여 호주머니에 짱돌을 숨겼다는 h오빠의 이야기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수 틀리면 바로 짱돌로 기사를 내리치려고 했다는 그의 고백에 동생들을 지키려는 K-오빠의 이미지가 겹쳤다.
친구들과 함께 마을을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치왕갈라에서 유명인사가 된 나와 함께 있었던 탓에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환호했고 h오빠는 "너 이래서 여기 사는 거지?"라고 놀려댔다. 마침 히로키도 캄팔라에 가지 않고 숙소에서 머물렀기에 히로키에게도 친구들을 소개시켜주었다. 밤마다 야동을 보는 히로키는 이미 한국인 봉사자들 사이에서 유명인사였고, 그가 가진 은둔의 이미지로 인해 우리끼리 부르는 그의 별명은 "야인"이었다. 당시 치왕갈라를 처음 방문한 친구들은 h오빠, w, j 였는데, 캄팔라에서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오히려 치왕갈라에서의 생활을 부러워하여 당황스러웠다. 비좁고 불편한 숙소지만 나만의 공간을 갖고 현지 주민들과 더 가까이서 활동하는 나의 모습이 어쩌면 그들이 꿈꿔왔던 우간다 봉사활동이 아니었는지 싶었다.
마을에서 구입한 파파야, 짜파티, 카사바 튀김, 맘바(메기과의 생선) 튀김, 감자칩 등을 그릇에 담아 내놓으니 그럭저럭 방바닥 가득 멋진 밥상을 차려낼 수 있었다. 우간다에서 파파야를 처음 먹어본 나는 한동안 파파야에 꽂혀서 매일 파파야를 구입했는데, 친구들도 내가 고른 파파야가 제일 맛있다며 칭찬했다. 맘바 튀김은 특별히 야시장 맘바 장수에게 미리 부탁해서 구입한거였는데, 캄팔라에서는 맘바튀김을 못봤다는 친구들에게 뭔가 진미를 대접한 기분이 들어서 어깨가 으쓱했다. 카사바 튀김도 바나나 잎과 함께 셋팅하니 정말 현지인 다 된 느낌이었다.
식사 후 자연스레 운동장에 나가 작은 모닥불을 피우며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며 내가 한국에서 알바했을 때의 이야기가 나왔다. 김포공항 커피숍에서 알바할 때 일인데, 한달 꼬박 쉬지 않고 일하니 88만원 조금 넘게 나왔더랬다. 이게 최저 생계비구나 하는 생각에 사회가 권장하는 최소한의 소비마저 줄여보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집까지 걸어왔던 이야기를 하니 h오빠는 "야 너 무슨 한총련급인데?"라고 말해 다같이 웃었다. 내가 내 삶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힘들게 이런 저런 이론을 끌어와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그냥 계속 농담이 오가고 즐거운 이야기만 했던 참 재미난 시절이었다.
친구들은 첫 방문 이후로 계속해서 치왕갈라를 찾았다. 나는 캄팔라 생활의 단조로움 그리고 한국인들과의 관계로 국한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치왕갈라를 찾은 친구들이 너무 반가웠다. 하루는 히로키를 초대하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기로 했다. 내 말대로 히로키가 정말 밤마다 야동을 보는 것인지 알아보자는 황당한 미션이 주어졌고, h오빠는 자연스레 우간다 여행에 대한 주제로 화제를 돌려 히로키가 스스로 노트북을 가져오게 끔 유도했다. 나는 분명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며 확인할 필요도 없다고 항변했지만 다들 히로키의 노트북에 눈길이 쏠렸다. 히로키는 자기가 방문했던 여행지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다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문 밖을 나섰다. h오빠는 재빨리 바탕화면과 외장하드를 뒤져서 야동 폴더를 찾아냈고, "우간다에 온 이후 처음으로 설렌다"고 말했다. 나는 행여나 히로키에게 들킬까봐 가슴이 조마조마 했지만 h오빠가 모든 탐색을 마칠 무렵 히로키가 돌아왔고 우리는 태연하게 사진 폴더를 구경하였다.
우리는 히로키에게 술을 먹여보자고 동의했고 말을 계속 시키면서 술을 계속 권했다. "망국의 한(恨)을 풀자"는 것이 목표였고, 술이 약한 히로키는 맥주 몇병 후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더는 못 마시겠다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성공했다고 웃고 있을 무렵 히로키는 방으로 가다 말고 문 밖에 있는 나무를 짚고 토하기 시작했다. '어, 이게 아닌데' 싶었던 나와 w는 히로키를 부축해서 침대까지 데려다주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h오빠가 "히로키가 우리보다 나이도 많은데 어린 얘들 앞에서 쪽팔리겠다"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옆방에 잠든 사람이 있으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 한짝을 모두 비우고 자정이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점심 때가 다 돼서야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한 우리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뭐 먹지' 생각하고 있었고, 흰 죽에 간장을 뿌려서 먹을 참이었다. 히로키가 방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방금 만든 듯한 따끈따끈한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서 있었다. 술로 가 버린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를 술로 보낸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방안에 들고와서 들여다보니 가쓰오부시가 춤추고 마요네즈, 생강절임, 김가루로 장식된 오꼬노미야끼였다. 우리는 "와, 우간다에서 일본인이 만든 오꼬노미야끼를 다 먹네"라고 감탄하며 한 젓가락 씩 먹었고, "이야, 야인 좋은 사람이네"라며 히로키를 칭찬했다. 오꼬노미야끼 한 장을 다 먹은 우리는 "근데 왜 한 장만 줘. 대가리가 몇인데 한장만 주고 있어"라며, 한국인의 정(情)과 상반되는 야인의 대접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망국의 한(恨)은 풀려도 풀리지 않을 난제와 같아 보였다. 그 뒤로 히로키는 우리와 술을 마실 때면 차나 음료수를 들고 와서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