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모어 나일!(One more NILE)

알코올 중독의 길 in 우간다

by 만다지
19905342_1392691520813688_8515605403612808511_n.jpg 2017년 우간다를 다시 찾았을 때 w와 함께 방문한 한식당 아리랑에서 꿈에 그리던 나일 맥주를 마셨다

다양한 맥주가 시중에 판매되는 우간다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라면 나일(NILE)을 들 수 있다. 나일 강의 발원지가 우간다 진자(Jinja)에 위치해 있어 우간다를 Source of River Nile이라고도 부르는데, 우간다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또한 나일 맥주이다. 나일 스페셜의 알코올 도수는 5.6%로 당시 마셔왔던 한국 맥주보다는 꽤 쎈 편이었는데, 현지인들은 나일 맥주보다는 벨(Bell), 클럽(Club), 필스너(Pilsner)를 선호했고 나일 스페셜을 고집하는 건 으레 외국인들이었다. 나를 비롯한 한국인 봉사자들 또한 만나면 모두 손에 나일 한병씩 들고 있었고, 나일 정도는 마셔줘야 우간다에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여러 맥주들을 맛보고 즐기더라도 결국 나일에게 돌아오고야 말았다.


치왕갈라에서 캄팔라로 가는 직행버스는 새벽 5시에 출발했는데, 출발 시각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택시나 미니버스와 달리 직행버스는 시간을 철저히 엄수했다. 버스는 큰 경적소리를 내며 마을을 지나갔는데 자다가도 버스 경적소리를 들으면 '아차' 싶은 마음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될 정도도로 소리가 컸다. 마을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버스는 길가에서 서서 손을 흔드는 노파도 외면하고, 길을 지나는 닭도 그냥 치어 죽이고 지나갔다. 버스는 마사카 시내에서도 멈추지 않고 중간에 화장실 가라며 2번 정도 세워준 후 그대로 캄팔라로 향하였다. 캄팔라에 도착하면 오전 9시 정도 되었고 캄팔라 Old taxi park에서 와키소(Wakiso) 행 버스를 타고 난사나(Nansana) stage에 내리면 오전 내 UPA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봉사자들은 자비로 자신의 Farewell을 준비하곤 했는데, 물론 조용히 귀국하는 봉사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술과 음식을 마련해 다른 봉사자들을 대접하는 게 하나의 전통이었다. 이것도 UPA 숙소에 봉사자들이 많을 때 떠나는 사람의 페어웰은 나름 화기애애했지만, 봉사자들이 적을 때는 파티도 별로 재미가 없어서 김이 빠지는 부분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면 한국인 봉사자들은 주말을 맞아 밀린 빨래를 하느라 정신 없었다. 물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돈을 주고 빨래를 맡길 수도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빨래를 잘 헹구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나도 내 손으로 직접 옷을 빠는 것이 익숙했다.


해가 지면 본격적으로 캄팔라에서의 화려한 밤이 시작됐다. 미리 예약한 보다보다(Bodaboda)가 UPA 숙소 마당에 들어서면 요금을 담합하여 보다 기사들과 흥정을 했다. "We are small small"이라고 우기며 오토바이 1대당 2명씩 타면, 보다 기사들은 "하..." 한숨을 쉬며 할 수 없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밤공기를 가르면 치왕갈라에서 혼자 지낼 때 느꼈던 고독은 저만큼 달아나고 시원한 바람이 얼굴만 간지럽혀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녁 8시의 클럽들은 한산했고 카발라갈라(Kabalagala)의 핫한 클럽들을 몇군데 들어가 본 후 사람이 많은 클럽을 선택해 입장했다. 당시 가장 핫한 클럽은 이구아나(Iguana)였는데 캄팔라의 외국인들은 여기 다 있다 싶을 정도로 사람도 많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음악도 좋고 술도 잘 들어갔다.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말도 안되는 춤도 추고, 다른 사람의 춤도 따라하며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술이 떨어지면 카운터로 다가가 바맨에게 "원 모어 나일!"하고 외치면 음악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혀서, 바맨이 "뭐?"하며 내 쪽으로 몸을 숙일 때 다시 한번 "원 모어 나일!"이라고 말해야 술을 살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클럽은 공연을 하는 클럽만 가봤던 나, 가끔 삐끼에게 잡혀 나이트에 들어가보기만 해봤던 나는 우간다에서 처음 클럽같은 클럽을 가봤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이구아나에서 놀다가 음악이 늘어지면 Steak out 또는 새롭게 발견한 다른 클럽으로 몰려가서 놀았다. 당시 클럽의 수준은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의 비율, 음악, 사람 수 등을 기반으로 정해졌는데, 진짜 쎄보(Ssebo, 현지 남성), 냐보(Nyabo, 현지 여성)들이 많은 곳은 음악이 현지 음악이라 별로 재미가 없었다. 당시 클럽에서는 Black eyed peas의 Boom boom pow가 흘러나오면 다같이 한데 모여서 춤을 췄고, 잘 추지도 못하지만 열심히 따라하면서 정말 웃긴 춤을 많이 추었다.


이구아나는 사람이 많고 분위기가 좋을 때는 새벽까지도 영업을 했는데, 밤 10시~11시 사이에 사람들이 가장 많고 재미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날 그날 핫한 클럽은 모두 달랐고 봉사자 신분에서는 이구아나가 최고였지만, 진짜 좋은 클럽들은 카발라갈라가 아닌 다른 부유한 동네에 있었다. 가끔 클럽에 갔다가 재미가 없어서 허탕치는 날도 있어서, 아예 클럽에서 만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어느 클럽이 좋은지 물어보고 출발할 때도 있었다. 한참 놀고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 한국인 봉사자들끼리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혼자서라면 클럽이고 뭐고 밤에 돌아다니지도 못했을텐데 여럿이서 같이 몰려다니니 위험한 줄도 모르고 즐겁게 돌아다닌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전기사 포함 3명이나 타서 이미 과적한 오토바이를 헬멧도 안쓰고 탄 내 자신이 정말 용감하게 느껴진다. 당시에는 우간다가 치안이 좋아서 밤에 오토바이를 타도 별일이 없었는데, 2017년에 잠깐 가보니 치안이 나빠져서 대낮에도 오토바이를 탔다가 소매치기를 당할 뻔 했다.


클럽에 가지 않을 때는 집 근처 로컬 펍에서 모여 술을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펍에 딸린 화장실은 재래식 화장실이었는데, 조준을 잘못하면 변이 엉덩이 뒤로 쌓일만큼 변기 구멍이 엄청 작았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화장실에 들어서자 똥냄새가 나를 감쌌고, 숨을 쉬는 건지 똥냄새를 먹는 건지 모를 정도로 답답함이 몰려왔다. 거기에 조준을 잘못해서 봉변을 당한 나는 갖고 간 휴지를 매우 경제적으로 사용하고나서야 무사히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이 이야기를 봉사자들에게 전하니 모두 박장대소했고 내 별명은 똥쟁이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도 장건강이 좋아 화장실을 자주 가기도 했던 나의 이야기는 개그 소재로 쓰이기도 했는데,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하고 물으면 "똥쟁입니더"하고 대답하며 웃는 것이 한동안 유행이었다. 그리고 과연 수능 국어 영역을 경험한 사람들답게, 직업의 의미로써 쓰일 때는 "똥쟁이"가 아닌 "똥장이"가 맞다고 갑론을박이 오고 갔다. 술을 잘 마시진 못해도 마시는 것을 즐겼던 나는 봉사활동을 하면 금욕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하고 한국을 떠나기 전 사람들을 만나 술자리를 많이 가졌는데, 오히려 우간다에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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