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청혼과 입양 권유를 거절하는 방법
우간다 사람들이 조금 친분이 생겼다 싶으면 으레 하는 말이 있었다. "킴, 언제 나를 한국으로 데려갈 거야?"라고. 이 말을 처음 접한 건 UPA 숙소가 위치한 난사나(Nansana) 마을에서였는데, 숙소로 매일같이 나를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킴, 나 학교 간다!"고 말하며 등교하던 나카차(Nakacha) 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카차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다가와 "You are going to die soon"이라고 소리쳤고 어이가 없었던 어느 봉사자는 "Don't worry, we gonna live longer than you"라며 우간다의 낮은 평균 수명을 지적했다.
나카차는 당시 영어를 잘 못해서 말이 짧았던 내가 만만했는지 친근했는지 나에게 와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조잘조잘 떠들어댔는데, 외국인들 만나 이야기 하는 것을 즐기는 영락없는 말괄량이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였다. 하루는 나카차가 나를 자기 가족들에게 소개시켜주겠다며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아직 봉사활동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현지인 가정에 방문하다니 설렌 마음으로 나카차를 따라서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닭, 오리가 마당을 돌아다니며 휘갈긴 분뇨가 마당에 수북하여 질척질척한데 어린 아이들이 마당 한구석에서 흙장난 하는 것을 어른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웃고 떠들기 바빴다. 현지인들은 다 이렇게 사는가 의문도 들며, 이래서 질병 감염률이 높은건가 나름의 추측도 하게 되는 집안 환경에 충격을 받았지만 미소로 응대하며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한국에서 왔다고?" 나를 보며 웃던 어머니는 마당에서 흙장난 하던 아기를 한번 안아보라며, 아기의 한쪽 팔을 들어 아이를 들어올렸다. 아직 뼈가 다 성장하지도 않은 아기를 그것도 한 쪽 팔를 잡아 당겨 들어올리는 모습에 두번 째 충격을 받은 나는 "No!"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기는 물론 그 어머니조차 문제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기를 한쪽 팔만 잡고 들어올리는 건 모든 가정이 비슷했는데, 한국에서는 아기가 행여나 잘못될가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는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한국의 육아 지식은 다시 쓰여져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내 고양이도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팔로 받치고 안는데, 사람의 아기를 한쪽 팔만 잡고 들어올려 안는 모습을 보면 아기 팔이 괜찮은지 걱정을 하게 되는 건 당연했다.
처음으로 우간다 아기를 가슴에 안아 보는 느낌은 한국 아기들이 주는 느낌과는 달랐다. 한국 아기보다 더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TV에서 보던, 굶주려서 뼈만 남은 그런 아기들이 아니었다. 포실포실 살이 올라 허벅지와 종아리 구분이 없는데 살결이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자꾸만 안고 싶었다. 아기를 안은 나에게 어머니는 내 나이와 혼인 여부를 묻고, 당시 23세에 결혼도 안했다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내 남편과 결혼해"라며 세번 째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행히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 이웃 여성도 다같이 웃는 분위기라 안심했는데, 무슨 이런 막장 유머가 다 있나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에게 자기는 아이들이 많다며, 내가 방금 안았던 아기를 줄테니 나더러 키우라고 말했다. 한국으로 데려가라는 말과 함께.
우간다인들의 유머나 화법에 적응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는데, 대부분 "그냥 해 본 소리" 또는 "아님 말고" 식의 일단 던져보는 스타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내가 자기 집 아이를 조금이라도 귀여워하면 "한국으로 데려가라"고 부탁하는 수많은 부모들을 만났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기가 아무리 귀여워도 눈길을 주는 것을 참았는데, 나중에는 "응, 나도 한국에 남편과 자식들이 있어"라고 웃어 넘기면서 입양 권유(?)를 깔끔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 우간다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개인 인적사항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거나, 야인처럼 은둔 생활을 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미혼이라면 기혼으로 말하고 자식도 몇명 있어서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야 수많은 청혼, 입양 권유 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는 사실대로 말해도 좋지만 길에서 만난 가벼운 인연들에게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게 신상에 편하다. 은둔 생활 같은 경우는,,, 나도 잠깐 해봤지만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