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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ul 09. 2024

나만의 퍼펙트데이즈

당신의 하루는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나요?

영화 '퍼펙트데이'를 보았다. 일본 특유의 다소 민숭민숭한 분위기가 힐링 포인트라는 평도 있지만 난 살짜쿵 지루했다. 투 머치 잔잔함이랄까 심심함이랄까.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정적이 느껴져서 영화를 보면서 '이런 예술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구나.'싶었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신기하게도 일과 중에 갑자기 영화에서 나온  장면들이 기억나는 거다. '아, 감독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로구나' 싶은 깨달음이 오는 순간들이 있는 걸로 봐서 결론은 참 좋은 영화인듯하다.

배경지식 없이 본 영화라 주연배우 '야쿠쇼 코지'가 셸 위 댄스에 나왔던 주인공과 동일 인물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이 분 연기 진짜 잘한다. 정말 도쿄에 사는 화장실 청소부인 줄 알았. 이 작품으로 제76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그의 연기력은 소름이 끼칠만큼 메소드급이었. 특히 마지막 장면 그의 표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극 중 도쿄 공공화장실의 성실한 청소부 역할로 나온 우리의 주인공은 단순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카세트테이프 속 흘러간 팝송을 들으며 일을  하러 가는 모습도 그의 변함없고 한결같은 성격을 나타내는 일종의 장치인 것 같다. 일하러 가는 일터를 제외하고는 목욕탕, 지하철 역사 안 음식점, 주말에 들르는 세탁소와 책방 등 배경이 되는 장소 역시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히라야마'씨의 모습은  마치 수도자의 일상을 연상케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이의 부모님을 찾아준다거나,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주는 모습에서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조카의 방문에 마음이 설레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요양원에 계신 부모님과 여동생과는 소원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그의 과거 행적이 심상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간 살이조차 얼마 되지 않는 미니멀리스트 그에게도 맥시멀리스트적인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는 신사 벤치에서 바라보는 나무 풍경을 감상하고 이를 필름 카메라로 찍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 사이에 비취어진 햇살 사진을 찍는 일이 그의 중요한 일과다.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인화하고 그중 멋진 작품을 날짜를 쓴 상자에 넣어 창고에 차곡차곡 보관한다. 남들이 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비슷한 풍경이고 사진이겠지만 그에게 있어 이와 같은 행위는 너무나 중요한 '의식'이다.


매일 달라지는 나무 사이 햇빛을 촬영하는 우리의 주인공. 일본어로는 이를 지칭하는 특별한 단어가 있다. '고모레비', 나무 사이에 비친 눈부신 햇빛이 비치는 찰나의 순간이라는 뜻이다. 우리 말로는 '볕뉘'라고 한다. '순간의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서 자신만의 '완벽한 하루'를 만드는 그 평온함이 무척 좋았다.

당신의 하루는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나요?

선 이 단어 '고모레비'란 단어는 사실 지난 겨울에 인연이 된 한 선생님께 배워 익숙해진 용어다. 방학 중 리코더 캠프에서 만난 우리 쌤과 나는 매일 카톡방에 글쓰기 인증을 남기는데 그 카톡방 이름이 바로 '고모레비'다. 소소하지만 어제와 다르고 내일과도 다른 오늘 하루의 나의 생각, 말, 행동들을 기록하는 일! 영화 속 주인공은 사진 찍기로, 나는 끄적끄적 글쓰기로 소중한 오늘을 살아낸 흔적을 남긴다.

완벽한 하루를 만드는 나만의 비법이 또 하나 있다. 하루의 마지막인 잠들기 전, 오늘 내게 있었던 기억에 남는 순간을 떠올리며 스마트폰 앱에 짧게 기록하는 것이다. 출퇴근길 버스에서 브런치에 사진과 글을 남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게 벌어진 희로애락을 기록하는 글쓰기 습관은 지난 일 년간 꾸준히 유지해온 나만의 소중한 루틴이다.

영화 속 그는 오래된 팝송 테이프를 들으며 운전하는 그 순간,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반면 나는 리코더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며 나의 마음을 나타낸다. 그가 헌책방에서 산 문고판 서적을 매일 읽듯, 나 역시 활자에서 지혜를 얻고 싶어 한다. 이쯤 되면 평행이론 도출이다. 와, 정말 신기하다. 나 역시 일상의 기쁨을 차곡 차곡 쌓고 있는 것이구나. 어머나, 이 영화 내 인생 영화가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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