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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ul 12. 2024

교장선생님! 강사님 맘에 안 들어요. 교체해주세요.

목 마른 사람이 샘파기

교과실에 있다보면 영어쌤, 과학쌤, 음악쌤, 체육쌤 모두 함께 점심을 먹으며 하루 일과를 나눈다. 그 중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 5학년 어떤 반 아이들은 정말 너무 힘들어요. 그 중 누구 누구는 진짜 예의가 없어요. 혼을 내도 실실 웃으며 뉘에 뉘에 죄송함돠 한다니까요." 모든 교과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요즘은 정말 착한 아이들, 모범적인 아이들이 드세고 시끄럽고 예의 없는 아이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구조다. 오늘 들어갔던 한 반도 다른 반 하는 활동의 절반도 못하고 몇몇의 아이들 혼내다가 시간이 다 가버렸다.

수업시간에 계속 떠들길래 집중하라고 주의를 주는데도 "뉘에~~."하더니 내가 대답 똑바로 하라고 하니 "넵!알겠습니다." 이미 예의는 상실했다.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필터링 없이 말하는게 거의 유튜브 게임 중계방송 수준이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건 아닌데 이런 아이들 몇이 있으면 반 분위기 전체가 무너지는건 시간문제다.

음악실에선 번호대로 앉는데 우연히 붙어 앉은  두 명의 남학생이 계속 눈에 거슬렸다. 노래를 부를 때 일부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낄낄댄다. 오늘도 그 두 명이 계속 웃고 장난을 치길래 그 중 한명을 제일 앞으로  떼어 앉혔다. 사실 그 아인 좀 나은 편이다. 제일 힘든 아이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쓸데없이 남을 이르고, 희안한 말로 웃음바다 만들고 그걸 즐긴다. 주의를 주었는데도 계속 느물느물 실실 웃길래 교실 밖 복도에 불러 혼을 냈는데도 전혀 달라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참다참다 수업 후 담임선생님께 긴 문자를 보냈다. 담임쌤도 본인 수업 때 버릇없이 굴어서 힘이 드셨다고 한다. 이 반 담임쌤은 한 달 전 대상포진이 걸려서 병가를 들어신 적이 있다. 이 때 시간 강사로 오셨던 분들이 드센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서 못 나오시겠다고 하여 강사님이 3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아, 나도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반 아이들은 담임선생님 대타로 오신 강사님이 자기들을 혼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교무실에 가서 교장선생님보고 도저히 저 선생님한테 수업 받을 수 없으니 강사님을 바꿔달라고 당당히 말했다고 한다. 오우 지져스. 말도 안 된다며 기함을 토했었는데... 정말 기분이 쳐진다.


사실 여러 반을 들어가다 보면 담임선생님마다 그 반의 금쪽이들이 신경쓰며 물샐틈 없이 관리하시고 자기 수업시간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 여기 담임쌤은 어려운 아이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본인도 힘들다는 말만 하시고 '저도 담임으로서 도와드려야 하는데 방법이 없네요.' 이러시는거다. 그래서 내가 먼저 제안을 드렸다.

"작년에 보니까 선생님 반 교실 칠판에 상벌점을 카운팅 하는 시스템이 있더라구요. 혹시 올해도 그걸 계속 하실까요? 그렇다면 회장단들에게 오늘의 수업 태도를 체크하게 해서 선생님께 안내해 드리면 어떨까요?"


담임선생님은 그렇게 하자며 내 말에 동의 하셨다. 사실 담임쌤이 이런 것을 내게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안 해주시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야지.


교과는 그 시간만 맡으면 되지만 담임 선생님은 하루 종일 말썽쟁이들과 함께 있으니 피곤하시고 힘드시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지도를 할 때 아이들이 아무래도 교과전담 선생님보다는 담임선생님 말씀을 더 잘 듣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조금만 더 신경 써 주시길 부탁드리는것이다. 이렇게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올해 초 유난히 자기 주장이 강하고, 성격이 지나치게 외향적인 아이들이 몰려 있어서 담임 선생님이 고생하시던 한 반이 있었다. 그 분은 아무 일도 없는데 먼저 교담쌤에게 "혹시 우리 반 아이가 선생님 불편하게 하지는 않나요?" 물으시며 아이들 단두리를 야무지게 하셨다. 그러더니 시간이 갈수록 교실 분위기가 정착되어서 이제는 하나도 힘들지 않은 반이 되었다. 나도 담임을 하게 되면 꼭 따라 하려고 그 분이 만든 '교과 시간 기록표'를 사진도 찍어 놓았다. 경력이 얼마 안 되는 젊은 후배쌤인데도 배울 점이 참 많은 존경스러운 선생님이다.

그 분 반의 성공사례를 보니 교과시간에 훼방을 놓는 금쪽이들이 많은 경우 담임 선생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무척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오늘 나의 뒷목을 잡게 한 5학년 한 반에도 부디 다른 반과 같은 수준의 수업 컨디션이 오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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