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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Oct 25. 2024

출근

  “만약에, 아빠가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면 엄마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거든. 그랬더니, 소중한 딸이라서 절대 수술 못하게 할 거라고 하셨어요. 수라 씨 어머니더러, 어쩜 그리 가혹하냐고 덧붙이셨고…….”

  수라는 씁쓸했으나,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배우자의 안위 보다 자식을 염려하는 모친을 둔 현영이 부러웠고, 사지로 내모는 자신의 어머니가 한없이 야속했다.

  “…그렇죠. 그게 아무래도 일반적인 반응일 거예요. 휴, 사장님은 좋으시겠어요! 어머님이 ‘소중한 딸’이라고 표현하신 걸 보면.”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남편이 간암 걸린 건, 본인이 건강 관리를 못한 거지. 처자식한테 피해 줄 것 없이, 제 명대로 살다 가야지!’라고 하셨어요. 수라 씨, 힘내! 간 이식 수술 안 할 거잖아요. 부모와 따로 살도록 해요.”

  현영이 수라를 다독였다. 

  “네, 저도 꿋꿋이 살아남아야죠…….”

  수라는 심란한 마음을 품고, 귀가했다.

  ‘부모와 분리해서 나가 살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까? 그래, 혼자 살 집을 어서 구해야겠어!’

  당장 인터넷에 접속해 적당한 곳이 있는지 검색했다. 전세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월세도 눈에 띄는 공간이 별로 없었다. 사진으로 보고 환경이 괜찮다 싶어 직접 찾아가 보면, 심지어 사진과 실물이 영 딴판인 곳도 있었다. 또, 가격 협의라고 돼 있길래 구체적인 액수를 질문하면, 만나서 직접 상의하자는 주인도 있었다.

  ‘이거, 순 사기꾼 아니야? 값을 말해야 흥정이라도 할 거 아니야! 바쁜데 사람을 오라 가라야? 어휴…….’ 

  신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현영이 사무실에 직원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3월은 유아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시기예요. 부모와 떨어져서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처음 맞닥뜨리는 시기거든요. 새로 오신 선생님들, 잘 부탁합니다. 서로 인사 나누세요.”

  “안녕하세요.”

  신입 강사들끼리 대화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떤 과목 가르치세요?”

단발머리를 한 통통한 여자가 수라에게 말을 건넸다. 앳된 얼굴이었다.

  “저는 미술 지도해요.”

  “아, 그러시구나. 저희는 다 음악 담당해요.”

  “아, 든든하시겠어요! 서로 수업에 대해 상의할 수도 있고요. 미술은 달랑 저 혼자네요.”

  한 과목에 대해 담당이 오직 한 명뿐이라는 건 장점도 있겠지만, 신입인 수라의 입장에선 단점이 더 많아 보였다.

  “대림에 사시는 거죠?”

  마른 여자가 수라에게 질문했다.

  “네. 어디 사세요?”

  “시외 거주자인데, 여기서 근무하려고 최근에 이사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고생하셨네요.” 

  마침내 3월이 됐고, 강사들은 각자 자신의 근무지로 출근했다. 긴장 반, 설렘 반 수라도 역시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디뎠다. 유치원 교사들의 인솔 하에 유아들이 질서 있게 교실로 들어왔다. 병아리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었다.

  4세 유아들의 첫 수업으로 클레이 팔찌를 만들었다. 그런데, 유아들은 할 줄 아는 게 도무지 하나도 없었다. 자녀는커녕, 조카도 없는 수라에게는 최대 난관이었다.

  진땀을 흘리며, 하나부터 열까지 강사가 유아들을 일일이 다 도와줘야만 했다. 여기저기서 수라를 찾는 애타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실은 그야말로 돛대기시장을 방불했다.     유치원 교사들이 참관해서 수업을 도왔으나, 세 명의 도우미가 모든 유아를 돌보기엔 한없이 역부족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현영이 수라를 미리내 유치원으로 호출했다.

  '왜 오라는 거지?'

  미리내 유치원에서 만난 현영의 모습은 사무실에서와 사뭇 달랐다. 머리에 쓴 납작한 노란 모자에는 더듬이가 대롱대롱 달렸고, 등에는 투명한 날개가 붙었으며, 펠트로 만든 몸통은 노란색과 갈색의 띠로 이루어졌다.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 마리의 꿀벌이었다.

  ‘오, 의상만 봐도 벌써 수업이 기대되는걸!’ 

  “유아들 수업, 어렵고 힘들죠? 내가 수업하는 거 보고, 참고하라고 불렀어요.”

  현영이 가르치는 과목도 역시 음악이었다. 그녀는 앙증맞은 기타 하나를 어깨에 메고, 유아들을 데리고 신나게 수업을 진행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업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왱왱, 꿀벌이 여행을 떠났어요. 자, 선생님 뒤로 와서 기차 한 줄 만들어 볼까요? 자, 천천히 따라 오세요?”

  약 30분 후, 유아들은 즐겁게 수업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교실에는 현영과 수라만이 남았다.

  “솔직히 말할게요. 수라 씨 수업 나갔던 유치원에서, 불만 접수가 들어왔어요. 수라 씨가 수업하는 게 마음에 안 든대. 너무 초보 티 난다나? 다른 선생님 보내주면 안 되겠냐고 하잖아? 그런데, 알다시피 미술 담당은 수라 씨 하나라서…….”

  “아, 죄송해요. 제가 유아 수업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애 좀 먹었어요. 더 노력할게요!”

  독립 자금이 필요했기에, 수라는 절박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그 다짐은 다음 날이 되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수라, 너 빨리 외출 채비해라.”

  “어딜 가는데요?”

  “오늘 오빠랑 셋이 서울 금와 병원 가기로 예약했다.”

  금와 병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저명한 항암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 수도 가장 많은 것은 물론이고, 예약하면 한참 대기해야 되는 그런 곳이었다.

  “금시초문인데요? 제가 거길 왜 가요? 곧 출근해야 돼요. 오늘 가는 유치원이 인원 제일 많은 곳이라서, 업무상 굉장히 중요한 곳이에요. 절대 빠지면 안 돼요.”

  “네가 벌면 몇 푼이나 번다고 그러니? 지금 아버지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까불지 말고, 순순히 따라와! 간 매칭 검사하러 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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