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태도는 완강함을 뛰어넘어, 표독스러웠다. 흡사 독을 잔뜩 품은 메두사 같았다.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표정은 딸이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수라는 한사코 거부했으나, 어머니의 우악스러운 손에 붙잡혀 강제로 질질 끌려갔다. 대문 밖에선 아들이 승용차에 시동을 건 상태로 대기 중이었다.
“자식이라도, 아버지와 조직이 맞지 않으면 수술 불가능하대. 설마 둘 중 하나는 수술할 수 있겠지. 너희들 중,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하는 자녀 한 명에게 전 재산을 물려줄 거다!”
수라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재산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어서 이 집구석을 뛰쳐나가고 싶다……. 목숨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부모가 재산을 자녀에게 퍽이나 물려주겠어!’
수라는 망연자실하며, 현영에게 연락했다.
‘사장님, 죄송해요. 오늘 출근 못 하게 됐어요. 간 매칭 검사받으러 금와 병원에 억지로 끌려가는 중이에요.’
아들은 운전석에, 어머니는 조수석에 탔다. 뒷좌석에 앉은 수라는 울적한 심정으로 차창 밖을 바라봤다. 오전 예약이라서, 공복을 유지해야만 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서, 말할 기운도 없었다. 허기졌다.
‘간 이식 안 하겠다고 분명히 의사를 밝혔는데, 간 매칭 검사를 받으라니! 이게 강요와 협박이 아니라면, 대체 뭐람? 이런 대접 받으면서 살기 싫다, 진짜……. 확 죽어 버릴까!
서른 살의 토끼전
민수라
옛날 옛적에
거북이를 따라
용궁으로 놀러 간
토끼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거북이의 감언이설에
칠렐레 팔렐레 헬렐레
간이 떼일 위기에 처하죠.
그땐 토끼의 심정을 몰랐어요.
얼마나 무서웠을지!
우리 집에도
용왕님이 계세요.
권위적인 아버지는
52년생 용띠,
간암 말기 환자셔요.
울며 겨자 먹기로
간암 매칭 검사받으러
병원에 갑니다.
87년 토끼띠이자 막내딸,
간 이식 제공이 내키지 않아요.
팽팽한 찬성과 반대.
효도 혹은 불효.
58년생 닭띠 어머니 왈,
'효도는 결국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
길길이 날뛰는
82년생 개띠 오빠는
대사증후군이라서
지방간인 주제에
큰소리만 뻥뻥 치네요.
본인이 아니면
그 심정은
아무도 모를걸요!
마치 귀양길, 아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
두어 시간 경과 후, 국내 최대 규모이자 간 이식 세계 1위라는 금와 병원에 도착했다. 길고도 지루한 대기 시간이 흘렀다. 어렵게 만난 담당의는 남자였고, 교수라고 불렸다. 수납할 때 보니, 특진료가 붙어 검사료가 무려 XX만 원이나 했다.
‘헐, 비싸다……. 돈 아까워!’
별다른 상담은 없고, 수납 후 검사가 바로 시작됐다.
X-ray
탈의실에 가서 검사복으로 바꿔 입고, 머리카락을 높이 묶었다. 방사선과 직원이 수라에게 임신 가능성 여부를 확인했다.
“임신 가능성 없어요.”
숨을 들이마신 후, 참으니 곧 검사가 끝났다. 예전에 보건증 발급받을 때 몇 번 해봐서, 수라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심전도 검사
손목과 발목을 집게로 물리고, 명치에도 작은 집게들을 다닥다닥 매달았다. 심장의 상태를 검사하는 모양이었다. 간호사는 수라에게 몸의 힘을 빼고, 휴식을 취하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하지만, 수라는 긴장한 나머지 줄곧 떨었다.
채혈
주먹을 쥐자, 왼쪽 팔의 주사기 안으로 피가 솟구쳤다. 간호사가 참 친절했다. 이곳 간호사들은 수라가 이제껏 본 어떤 이보다 상냥했다.
‘과연, 국내 최고라고 불릴 만하네.’
소변검사
아무리 기다려도 여자 화장실에서 사람이 나오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결국 수라는 남자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변으로 추측되는 물방울들이 바닥에 보였다.
수라는 종이컵에 소변을 담았다.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해서, 적정량보다 한참 미달이었다. 걱정돼서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라의 소변은 화장실 옆 냉장고에 보관됐다.
복부초음파 검사
대기 도중, 수라는 너무 지루한 나머지 옆에 앉은 한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대상포진 치료 도중,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간암을 발견했다고 한다. 조기에 수술하고, 지금은 건강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기 검진받으러 왔고, 수라와 같은 대림시 대정구 거주자란다.
‘허, 좁은 세상!’
수라가 상의를 명치까지 걷어 올리자, 간호사가 부위에 젤을 발랐다. 수라는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고, 참고 내쉼을 반복했다. 간호사가 초음파 기구로 명치와 오른쪽 갈비뼈를 강하게 압박했다.
“아파요!”
수라가 소리치자, 여의사가 강도를 약간 조절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휴, 미래가 두렵다!’
CT 촬영
동의서를 작성했다. 처음 보는 단어가 보였다.
‘조영제를 투여한다고? 뭐지, 약물인가?’
수라가 간호사에게 질문하자, 조영제를 넣으면 장기의 모습이 더 뚜렷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의사가 특별히 주문한 거예요.”
“혹시, 부작용이 있나요?”
수라는 거듭 질문했다. 석연치 않았다. 그러자, 간호사는 이제 막 설명하려던 차였다고 대답했다.
‘아, 정말 내키지 않는다!’
촬영은 여자 방사선사가 진행했다. 그녀는 편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수라가 그간 사연을 넋두리하자, 의료인은 조언했다.
“내키지 않으면, 절대 수술하지 말아요.”
조영제를 투여하자, 수라의 몸이 금세 뜨거워진다.
‘이대로 폭발하는 건 아닐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