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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Oct 25. 2024

빙수

  아버지로부터 꾸중을 들은 순간, 수라는 얼어붙었다. 온갖 생각들과 감정들이 교차했다.

  ‘딸이 지쳤다는데, 왜 화를 내? 이 영감이, 미쳤나? 교통비를 보태줄 생각은 않고…….’

아버지는 칠 남매 중 장남이며, 가부장적이었다. 수라는 자신이 왜 혼나야 하는 건지 모른 채, 지하철을 탔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2시간 이상 달려 근무지로 돌아왔다.

  기숙사에 도착한 수라는 방에서 동료 진주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그녀는 수라의 사연을 듣더니, 위로했다.

  “아빠가 너무하셨네. 왜 그러셨을까?”

  “이런 게 다 쌓이고 축적돼서, 멍들고 상처가 되는 거지…….”

  “수라 언니, 그럼 엄마랑은 사이 어때?”

  “어머니도 마찬가지야. 얼마나 모진지, 타의 추종을 불허해.”

  “아빠랑 엄마한테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

  “응.”

  “깍듯하네.”

  “거리를 두려고. 아무튼, 무슨 일이 있었냐면…….”

  수라가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이곳저곳에서 경력을 쌓으며 근무할 때의 일이다. 수라는 프리랜서라서 고정 수입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수라에게 어머니가 생활비를 요구했다.

  “너도 이제, 다달이 30만 원씩 생활비 내. 돈 벌잖아! 맨날 놀러 다니는 데 쓰지 말고, 저축도 하고.”

당시, 수라는 이에 대해 아는 언니들에게 상담했다.

  “언니들은 생활비 얼마씩 내?”

  “무슨 생활비?”

  “부모한테 생활비 안 드려?”

  “응, 안 내는데. 왜? 수라, 생활비 내?”

  “아니, 아직 내는 건 아니고. 어머니가 나보고 앞으로 생활비 내라고 하셔서, 언니들은 어떤가 싶어서 물어본 거야.”

  “어머, 수라네 어머니 너무하신다! 우리 부모님은 그런 거 안 바라셔. 오히려, 시집가기 전까지 쓰고 싶은 대로 쓰라시던데. 어차피 결혼하면, 그땐 자유롭게 돈 못 쓸 테니까 말이야.”

  “그렇지? 다들 나한테 물어. 친부모가 진짜 맞냐고…….”

  수라가 유치원 예능 강사를 그만두고 수입원이 없어지자, 어머니는 수라에게 용돈을 월 50만 원씩 지급했다. 수라는 쪼들렸고, 허리띠를 졸라야만 했다.

  그녀는 대학원 석사 마지막 학기에 재학 중이었고, 졸업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논문이 합격한다면, 오는 8월에 졸업할 예정이었다.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았지만, 집에만 얌전히 있을 수라가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바깥출입을 활발히 했다. 어느 날, 수라는 빙수를 먹고 싶었는데, 같이 먹을 만한 적합한 사람이 없었다. 혼자 외출하긴 싫어서, 아무나 만나서 빙수를 먹기로 마음먹었다.

  상대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4살 연하의 20대 남자였다. 그는 대림시의 반석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이었다. 취업 준비생에게 제안하자,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빙수요? 좋죠!”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 날이 싸늘했다. 수라는 단장을 마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걱정 반, 기대 반 가슴이 두근거렸다. 매장 인근의 고등학교에 주차한 후, 충민에게 연락했다.

  “너, 어디야?”

  “근처에 도착했어요.”

  “손 흔들어 봐.”

  수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선을 돌리자, 저만치서 곰 같은 남성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얼큰이에, A라인 어좁이네. 어휴, 빙수만 먹고 빨랑 헤어져야지!’

  충민은 흰 피부에 키가 큰 편이었지만, 어깨가 좁았다. 나름 데이트에 신경 쓴 옷차림이었으나, 통통한 몸매였다. 게다가 콧대가 낮고, 턱도 각진 편이었다.

  한 마디로, 수라의 취향이 아니었다. 초면에 외모에 대해 평가하거나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수라는 잠자코 있었다.

  매장에 입장해 빙수를 골랐다. 수라는 절반씩 내면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으나, 충민이 선뜻 결제했다.

  ‘취준생이 돈 좀 있나? 착하네. 뭐, 어차피 오늘만 보고 또 안 볼 건데, 뭐.’

곧 빙수가 나왔다. 충민이 빙수를 받친 쟁반을 들고 수라의 뒤를 따랐다. 둘은 의자에 앉아서 마주 봤다.

  “아, 잠깐만요. 누나 주려고, 준비한 게 있어요.”

  빙수가 나왔는데 안 먹고, 대체 뭐 하려는 건가 수라는 의아했다. 별안간 충민이 품 안에서 꺼낸 건, 드라이 플라워였다.

  ‘아, 남자한테 꽃을 받는 게 얼마 만인지!’

꽃다발은 손바닥을 겨우 가릴까 말까 한 작은 크기였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것쯤은 수라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수라는 충민에 대해 좋지 않았던 첫인상을 말하기로 결정했다.

  “음, 사실 이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뭔데요? 괜찮으니, 말해 봐요.”

  “너, 운동해서 어깨 넓히고, 살 빼. 키는 180cm라고 했으니, 그 정도면 괜찮은 키야. 근데, 살쪘어. 나보다 4살이나 어린데, 왜 배가 나왔어? 너 아저씨 아니고, 풋풋한 26살이잖아. 그러니까, 살 빼!”

  그때부터였다. 수라가 충민에게 마음을 연 시점은. 4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빙수를 얻어먹고, 그냥 헤어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도 베풀어야겠다고 다짐한 수라는 충민에게 밥을 샀다. 빙수보다 더 비싼 값이었다.

  ‘이 정도면, 얼추 꽃이랑 빙수값 되겠지? 휴, 누나 체면은 지켰다…….’   




대학로에서     

                        민수라 

                

어렵게 도착한

그의 자취방은

북향이라서,

음침하고 습하다.     

피자 한 판을 먹고,

또 아이스크림과

우유를 먹으러

밖으로 나온다.    

 

그는 대학로에 산다.

젊음이 북적북적

생동감 넘치는 거리를

그와 걸으니, 즐겁다.  

   

거리에 가득한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사랑을 하고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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