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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Oct 25. 2024

칭찬

  후기 학위 수여식이 열린 날은 무덥고,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수라는 방학 내내 피나는 노력 끝에 가까스로 만화학과 석사 졸업장을 거머쥐었다.

  실내 행사장엔 파릇파릇한 학사 졸업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드물게 박사 졸업생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박사들을 보며, 수라는 막연한 부러움을 품었다.

  ‘석사 졸업하기도 이다지 힘든데, 박사는 오죽하겠어.’

석사 졸업생들에 비해 박사 졸업자들은 나이가 지긋한 만학도가 많았다.

  졸업식을 마치고, 야외로 나와 수라는 동기들과 기념 촬영했다. 학사모를 하늘로 높이 던지며, 졸업을 만끽했다. 수라의 가족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환 중이니, 가급적이면 외출을 삼가는 중이었다. 다행히 고 교수가 졸업식에 참석했다.

  석사를 졸업하기엔 논문이 너무 부족하다는 교수들의 지적을 받았으나, 미흡한 실력은 수라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유학생들은 언어 장벽이 높기에 소통의 한계가 있었기에 논문 작업이 지난했다.

  “석사는 부족한 면이 많더라도, 대개 졸업시켜 주는 편이에요. 하지만, 박사는 달라요. 민 선생은 아버지 간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으니, 동정표를 얻은 것도 없잖아 있었어.”

  고 교수가 말했다.

  “석사 논문 작업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박사 진학은 아직 생각이 없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저더러 박사 과정을 바로 진학하라고 하시네요.”

  “그래? 그렇다면, 난 찬성이야. 민 선생은 창의성이 좋아.”

  “정말요? 고맙습니다!”

  “무릇, 연구자라면 남들이 시도 안 하는 분야를 찾아서 분석해야지. 민 선생이 선택한 주제는 남들이 접근하지 않은 관점이라서, 창의적이에요. 지역 캐릭터의 개발 현황을 살펴보고, 활용성을 분석한 글이니까. 석사 논문으로서는 괜찮은 편이에요.”

  “기분 좋네요, 하하. 박사 논문을 쓰게 된다면, 그때도 좋은 주제를 골라서 연구해야겠어요.”

  “민 선생은 ‘자기 성격에 신뢰와 자신감을 갖고 성격을 펼치며 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와, 굉장한 칭찬이네요!”

  “난, 민 선생이 이상하지 않아. 대화하면 대화가 되잖아. 서로 알아듣잖아.”

  “다행이네요.”

  “내가 알기론, 심리학적으로 이게 정상이라고 나와요. 미친 사람들끼리는 서로 대화가 안 돼요. 민 선생처럼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걸 자신감이라고 해요. ‘저 그거 몰라요. 공부 안 했어요.’ 이게 엄청난 자신감이래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에요. 직관형은 상대가 횡설수설해도 알아듣는대요. 선생은 직관이 분명한 사람이에요. 감각형은 항상 노심초사하고, 현실에 대한 불안이 커요.”

  “네.”

  “선생은 지나칠 정도로 현실에 대한 공포가 없어.”

  “아, 그런가요? 별생각이 없나 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 70%가 감각형인데, 그들이 선생을 봤을 땐 아마 이상해 보였을 거야.”

  “제 주변인들은 저보고 ‘너 여린데, 왜 강한 척해?’ 이렇게 물어요.”

  “그렇게 말한 까닭은 감각형이라서일 거야. 감각형들은 직관형이 어떻게 발동하는지 상상을 못 해요. 감각형들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지만, 직관형들의 상상력은 무제한이에요. 선생은 느낌으로 통찰해. 나랑 대화할 때, ‘이런 데서 막히나?’ 하고 느낄 거예요. 선생 가끔 나한테, 그런 질문해.”

  “어, 제가요?”

  “응. ‘교수님, 이렇게 안 해보셨어요?’”

  “아, 예. 기억나요.”

  “그럴 때 난, 한계를 느껴요.”

  “음.”

  “이 사람은 그 이상을 상상했거나, 행동할 수 있겠구나. 그런데, 왜 난 거기까지 안 가지? 그런데, 난 선생한테 이렇게 얘기해. ‘우리 사회는 보수적이에요.’”

  “아, 예!”

  “우리 사회는 권위적이에요. 난 직업을 갖고 있어요.”

  “그것도 일맥상통하네요.”

  “감각형은 결국 현실을 작동시켜요. ‘난 교수라는 한계를 갖고 있지.’”

  “저는 비현실적이군요.”

  이제, 수라에게는 간 이식 수술이라는 거대한 난관이 남았다. 수술 날짜까지 약 2주가 남은 시점이었다. 그녀는 불안한 심정으로 집에 얌전히 있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온라인 채팅에서 어느 낯선 사람과 대화하다 새로운 정보를 접했다.

  “아버지 간 이식 수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수술하기 두렵고, 정말 싫어요…….”

그러자, 낯선 이가 말했다.

  “가수 임구영 알죠?”

  “네, 알죠.”

  “그 사람도 어머니가 간암 환자셨대요.”

  “아, 그렇군요. 몰랐어요!”

  “어머니한테 간 이식 수술해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선, 수술 당일에 도망갔대요.”

  “앗, 정말요? 아니, 그럼 어머니는요?”

  “당연히, 돌아가셨죠.”

  “그냥 처음부터 못 한다고 말하지, 왜 그랬을까?”

  “아무래도, 무서웠겠죠. 배를 가르는 수술인데……. 그리고, 임구영은 기혼이에요. 가장이니까,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서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문제죠.”

  “휴, 나도 20대에 결혼이나 할 걸 그랬나? 그럼 배우자가 분명 방어해 줬을 텐데 말이죠.”

  “아, 그것도 방법이네요. 아무튼, 인터넷에서 검색 한번 해봐요. 임구영에 대한 기사 나올 거예요.”

  “안 그래도, 지금 검색했어요. 사실이네요. 방송 나와서, 어머니한테 그때 죄송했다고 사과했네요. 이미 죽은 사람한테 사과해 봤자,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나? 어, 근데 댓글이……. 세상에, 댓글이 가관이네요!”

  “뭐라고 쓰여있는데요?”

  “대중들이 임구영에 대해 욕설과 비난만 잔뜩 써놨어요. 아니, 자기가 간 떼줄 것도 아니면서 남의 가정사에 대해 이렇게 쉽게 생각하고 평가할 수 있는 건가? 사람들이 진짜 해도 너무하네요!”

  “남 일이니까, 쉬운 거죠. 아무튼, 님도 잘 판단하세요. 수술이 잘못될 수도 있는 거고, 그걸 누가 대신 책임지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힘내세요!”

  “고마워요. 제 주변인들은 오히려 부모 편만 들던데, 뵌 적도 없는 분에게 이런 정보와 위로를 받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복 받으세요!”

  수라는 문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함께 할 마땅한 상대가 없었다. 그러던 중, SNS에서 적합한 인물을 하나 골랐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 사용자에게 먼저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시간 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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