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는 맛집과 카페에 함께 갈 상대가 필요했다. 자신의 SNS 게시물에 가끔 ‘좋아요’를 누르던 낯선 이에게 대뜸 채팅으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디 사세요? 거리가 가깝길래, 혹시 근처 사시나 해서요.”
오래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사는 곳은 효서동이예요.”
“아, 꽤 머네요. 근데, 왜 2km로 뜨죠? 엄청 가까운 건데......”
수라가 접속한 SNS는 GPS를 켜놓으면, 사용자들 간의 거리가 측정되는 기능이 있었다.
“아, 직장이 재화동이에요. 직장에 있을 때 접속한 기록이라서, 그런가 봐요.”
“옆 동네네요. 반가워요.”
상대가 근무하는 회사는 수라네 근처였다. 그리고, 남자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일개미였다.
“맛집, 카페 가는 거 좋아해요?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해서요. 괜찮으면, 만날래요?”
수라는 용기를 내어 낯선 이에게 제안했고 다행히 그는 수락했다. 그들이 처음 만난 건, 소흥동에 위치한 일식당이었다. 대기 손님이 많았기 때문에, 식당이 영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입구에서 줄을 서 있었다. 일본 가정식이라고 했다. 조촐한 식사였다. 수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식이 특별하진 않는데, 왜 장사가 잘 되지? 일본식 집밥이 특별하진 않잖아. 인기의 비결이 뭔지 잘 모르겠다…….’
직장인의 이름은 순배라고 했다.
“만나자고 하실 줄은 미처 몰랐어요. 보통, 여자가 남자한테 먼저 만나자고 말하는 건 드물잖아요.”
“그래요? 대개 여자들이 소극적인 편이긴 하죠. 저는 원래,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편이에요. 순배 씨가 최근 몇 개월간 내 게시물에 '좋아요' 눌렀길래, 만나자고 한 거예요.”
“그렇군요. 누나, 편하게 말 놓으셔도 돼요.”
‘26살이랬지? 대학생보다 오히려 고등학생 느낌이네. 선해 보인다.’
수라가 느낀 순배의 첫인상은 단정한 학생 같았다. 풋풋했다. 갈색으로 염색한 숱이 많은 머리카락은 이마를 드리우고, 갸름한 얼굴은 순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자아냈다.
“밥 사주면, 후식은 내가 낼게.”
사실, 수라는 무려 4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식대를 내달라고 말하기가 다소 민망했다. 하지만, 그녀의 주머니 사정 또한 넉넉하지 않았기에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말을 꺼냈다. 그러자, 순배는 뜻밖의 대답을 해서 수라의 호감을 샀다.
“점심과 후식 모두 제가 낼게요.”
‘어라, 이거 그린 라이트야?’
그들은 식당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수라는 종종 인근을 지난 적이 있어서, 카페가 어떤 곳인지 대강 파악한 터였다. 그런데, 순배는 매장의 실물을 본 후 너무 실망하고 말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본 사진은 카페 규모가 꽤 커 보였거든요…….”
게다가, 그가 원하는 후식을 판매하지 않는 곳이었다.
“아, 케이크가 없네요…….”
한참 연장자인데 어린 사람으로부터 염치없이 막 얻어먹을 수는 없어서, 후식은 기어코 수라가 샀다.
‘식사하고, 후식도 먹었는데 이제 뭐 하지? 일정을 너무 빨리 마쳤네.’
수라가 생각하던 찰나, 순배는 대뜸 카페를 한 곳 더 가고 싶다고 했다.
“케이크를 참 좋아하는데, 못 먹어서 너무 아쉬워요. 제가 살 테니, 다른 카페로 가요.”
‘배부른데……. 휴, 이대로 헤어지기엔 좀 아쉬우니, 가야지 뭐.’
수라는 황망했지만, 수락했다. 걸어가기엔 좀 멀어서, 수라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아, 좀 민망한데!’
수라는 순배를 모텔로 안내했다. 그 까닭은, 수라가 모텔 주차장에 주차했기 때문이었다. 소흥동은 워낙 번잡하고, 협소해서 주차 공간이 부족했다. 수라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 만난 남자랑 모텔을 가는 건 아니지만, 모텔 근처를 가려니 수라는 온몸에 털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수라는, 아니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두 번째 만남에 나란히 모텔에 가게 될 줄이야.
순배와 첫 데이트를 마친 후, 수라는 그와 꾸준히 연락했다. 순배는 수라에게 메신저 그림말을 선물했다. 작은 것이었으나, 수라는 순배가 자신을 향해 호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수라는 대수술을 앞두고 있었기에, 수술 후 건강이 어찌 될지 기약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맛보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다.
그런데, 상대가 자신에게 약간의 호감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겨우 한 번 만난 그에게 다짜고짜 육체관계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공교롭게도,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남자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수라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름하여 질투 대작전!
“예전에 만난 적 있는 놈인데, 얘가 글쎄 낮에는 못 만난다는 거 있지? 왜 나를 밤에 불러내느냔 말이야. 흉흉한 세상인데……!”
“그 남자는 누나를 왜 만나자고 했는데요?”
“응? 아아, 남녀가 만나면 뭐 하겠어. 그거.”
“?!”
“수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사형 선고받은 기분이야.”
“며칠 안 남았네요. 그동안 제가 재밌게 해 드릴게요.”
“응? 넌 재밌는 성격은 아닌데. 날 어떻게 재밌게 해 줄 건데?”
입원하기 전날, 수라는 순배와 소흥동에서 재회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순배는 수라에게 꽤 다정하게 대했다. 카페에서 순배는 포크로 케이크를 떠서 수라에게 먹였는데 순간, 수라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찌나 수줍던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짐짓 태연한 척하며 입을 열었다. 수라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마치 아기가 된 것 같네!’
그들은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칵테일 바에 가서 칵테일도 마셨다. 순배가 방명록에 뭔가 끄적였다. 수라가 보려고 고개를 빼꼼 내밀자, 그는 몸을 일으키며 쓱 가려버렸다.
“뭐야? 왜 안 보여줘!”
“비밀이에요. 보지 마요.”
나중에 순배가 화장실에 간 사이 수라가 몰래 공책을 펴보니,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름다운 이와, 아름다운 밤에……
그날, 수라는 인생의 마지막 날을 산다는 기분으로 순배를 안았다. 수라는 사실, 순배가 여자 경험이 별로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그 이유는 순배의 나이가 어리고, 얼굴도 순진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침대에서의 순배는 수라의 혼을 쏙 빼놨다. 수라는 순배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소리 지르고, 자지러졌으며, 파르르 떨기 바빴다.
“너, 겉보기랑은 다르다? 엄청 능숙해! 이런 기술을 대체 어디서, 누구한테 배운 거야!”
“좋았어요?”
“어어, 으음…….”
“전(前) 여자 친구가 5살 연상이었고, 3년 사귀었어요.”
“헐, 연상녀를 좋아해? 어째서? 젊음이 갑 아닌가.”
“네, 연상녀 선호해요. 젊다고 무조건 다 좋은 거 아니에요. 어린 여자들은 찡찡대서 싫어요. 못 만나겠어요.”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몰라. 은둔고수!’
수라에게 순배와의 첫날밤은 충격과 경이로 오래오래 기억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