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수술 잘 돼서 잘 깨어나길……. 걱정하지 말고, 한숨 푹 자자…….’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수라가 정신을 차리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아까 잠들기 전의 그 수술실이 아니었다.
“심호흡 크게 해 보세요! 수술은 다행히도 성공적이에요.”
“후우, 윽…….”
환자는 간호사의 안내를 따르려 시도했으나, 고통이 엄습했다. 배는 찢어질 것만 같고, 목은 심각한 인후염 증상과 동일했다.
‘아, 고통의 극치로군!’
“자, 이제 침대를 통째로 옮길 거예요.”
“지금, 몇 시인가요?”
“17시요.”
잠시 후, 수라가 누운 침대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서관 3층으로 옮겨졌다. 이곳은 간호사들이 들락날락하는 사무실인 듯했다.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이종사촌 태승이 와 있었다. 태승이 수라의 좌측 팔을 지혈하고, 부채질을 해줬다.
“요즘 육류 이송하는 일을 임시로 하고 있어. 누나, 소고기 사줄게!”
명랑히 말하는 그의 얼굴을 수라는 올려다봤다.
‘이놈, 여드름이 심각하네. 피부 관리 좀 하지…….’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 수술은 22시에 끝난대. 기증자 수술보다 수혜자가 받는 수술이 더 복잡하고, 어려운가 보다.”
수라는 아까부터 계속 더위가 가시질 않았다. 혈압을 잴 때는 정상으로 나오지만, 열이 나서 이불을 덮지 못했다. 간이 잘려나가면 체온조절이 안 돼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공이 든 기구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호흡의 강도에 따라 공이 움직였고, 들어올려야 하는 공은 총 3개였다.
“이건 공 흡입기인데, 열심히 불어야 회복이 빠르대.”
“개복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는 호흡으로 공 들어 올리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수라는 앞날이 캄캄했다. 심호흡 후 날숨으로 공 흡입기의 공들을 모두 띄우기는 도통 어려운 일이었다. 수술받기 전에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환자인 현재로선 공 하나 올리기도 기진맥진했다.
배에 철심을 박은 살이 에이고 쑤셔서 눈물이 났지만, 수라는 빠른 회복을 위해 열심히 심호흡했다.
“간 이식 수술 환자는 전신 마취를 받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기 때문에 폐가 일그러지거든. 폐, 위, 장 등의 장기들도 악영향을 받는대. 그래서, 수술 후 심호흡을 여러 번 해서 폐를 펴주어야만 해. 심호흡은 코로 숨 들이마시기 2초, 숨 참기 3초, 입으로 숨 내뱉기 4초. 심호흡해야만 폐가 확장돼.”
어머니가 설명했다.
“근데, 그거 유료예요?”
준우가 질문했다. 수라 역시 궁금했다.
“글쎄, 무료일 것 같진 않은데. 개인이 흡입기를 물고, 빨고 하니까 아무래도 유료겠지. 이걸 공용으로 쓸 순 없잖아.”
아니나 다를까, 병원 측의 대여가 아닌 판매였다. 병원에서 입원 기간에 사용한 개인 물건들은 모두 퇴원할 때 일괄적으로 결제하는 체계였다. 그중 찜질팩도 역시 포함이었다.
“계속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면 욕창이 생길 수 있으니, 좌우로 번갈아 가며 적절히 돌아누워야만 해요.”
간호사의 설명을 떠올리며, 수라는 열심히 자세를 바꿨다. 태아 자세를 하면 수술한 부위가 눌려서 아팠다.
‘어서 회복해서, 한시라도 빨리 퇴원하고 싶어!’
어머니가 수라의 머리맡에서 낮은 소리로 걱정을 쏟아 냈다.
“수라는 금방 운동할 수 있겠다. 그런데 준우는…….”
“그러게, 생활 습관이 중요한 거예요. 오빠는 운동을 평소에도 안 하잖아요.”
수라는 벽걸이 시계를 보며, 30분에 1회씩 파란 단추를 눌렀다. 자가 진통제가 우측 목의 주사 바늘을 통해 체내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다 깨다를 되풀이하며, 밤새 진통제를 찾았다. 시간이 너무나도 느리게 흘렀고, 고통은 영원히 계속 됐다.
다시, 새 아침이 밝았다. 9시, 수라는 침대에 앉은 채 양치를 했다. 입안이 개운해졌다. 물티슈로 얼굴을 닦았다. 몸이 불편해서, 허리를 굽혀 세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라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 병원에는 낮과 밤이 없어 보였다. 그만큼 업무가 바쁜 것 같았다. 환자들은 넘치고, 매일매일 수술 건수가 가득하고, 의료진들은 부족한 듯 느껴졌다.
오전에 의사들이 회진했다. 수라는 앉아 있다가, 기다리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침대에 다시 누워버렸다. 곧 의사들이 들어왔다. 수라는 다시 침대의 각도를 조절해 일으키고, 기대어 앉았다. 제일 연세가 지긋한 백발의 노의사가 많이 아프냐고 질문했다.
“복통도 복통이지만, 공 흡입기를 이용해 심호흡할 때 우측 귀가 너무 아파요. 어렸을 적에 사고를 당해서 우측 귀가 인조 고막이거든요. 압력 조절이 안 돼서, 아파요.”
환자의 거동이 불편하니, X-ray를 병실로 이동시켜서 찍고 폐의 모습을 검사했다. 준우는 폐가 쪼그라들어 있다고 했고, 수라는 다행히도 폐가 정상이라고 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차이였다.
10시,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러 중환자실에 갔다.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수라는 20시에 갈 예정이었다. 수라와 준우는 세면대, 변기, 샤워기가 딸린 2인실 병실로 옮겨졌다. 어머니가 남매의 곁에서 간병을 도맡았다. 아버지는 아직 마취에서 깨지 않았다고 했다.
11시, 수라는 방광과 연결된 소변줄을 제거했고, 이제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 다소 번거로운 절차가 생겼다.
플라스틱 변기에 소변을 본 후, 용기에 옮겨 담아 용량을 재야 했다. 꼼꼼히 기록해야 간호사들이 그걸 바탕으로 수분 공급량을 결정한다고 들었다.
15시, 친척들이 문병 왔다. 그중 외숙모 한 분이 수라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했다. 통통하고, 눈이 크며 입담이 좋은 어른이었다.
“아이고, 평생 해야 할 효도를 다 했다! 어떻게 이런 큰 결심을 했니? 민수라, 장하다! 고생 많았어.”
수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겸연쩍었다.
‘가족의 협박에 못 이겨 억지로 수술에 임한 걸 외숙모가 아시면, 아마 지금보다 더 눈물을 펑펑 흘리시겠지요? 이렇게 공감 능력이 뛰어나신 걸 보면, 그럴 것 같아요.’
외숙모가 물티슈로 수라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 주었다. 수라는 그간 외가와 별 왕래가 없었기에 다소 어색했으나, 그런 대접이 싫지 않았다.
수라는 배가 근질거렸다. 복대를 착용한 부위의 공기가 통하지 않아서, 또 씻지 못해서였다. 수술한 부위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주먹 만한 투명한 용기에 붉은 피가 졸졸 고이는 모습을 수라는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침울했다.
20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면회했다. 그의 혈색과 표정은 꽤 좋아 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