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5일째가 됐다. 5시가 되자마자 수라는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갔다. 번호표를 뽑아 X-ray 접수했다. 수라의 순서는 8번째였다.
‘이 꼭두새벽에 벌써 내 앞에 7명이나 있구나!’
현재 수라의 상태는 간 수치가 높아져서 C.T를 찍을까 했는데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현재로선 안 찍어도 된다고 했다.
‘휴, 다행이다! 간호사들이 자꾸 채혈해서, 양팔이 시퍼런 멍투성이네…….’
10시 30분, 3층에서 주일 미사가 봉헌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월요일에 입원했는데, 이제 일요일이구나.’
“수라야, 미사 드리러 가자.”
어머니가 말했다.
“이곳 신부님이 너 수술할 때 한 번, 수술 후에도 한 번 찾아오셨어. 근데, 네가 마취 수면 중이어서 신부님을 못 만났지.”
안면도 없는 분이 자신을 보기 위해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헛걸음하게 됐다는 걸 알자 수라는 황송했다. 그래서, 순순히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11시, 미사는 지루했다. 수라는 맨 앞줄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잠들지 않으려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크게 떠보지만, 헛수고일 뿐이었다.
‘아아, 너무 피곤하다. 환자한테 고역이야. 간이 피로를 회복하는 기관이라는 건 참말이야…….’
수라가 주변을 둘러보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많았다. 의식불명인 듯한 이들도 보호자들의 손에 이끌려 나온 듯 보였다.
‘뭔가가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려 있구나. 휠체어에 앉은 걸 미루어 보아, 아마 걸을 수 없나 보다. 아, 나는 걸을 수 있으니 그들보다는 비교적 행복한 거구나!’
정오, 미사가 끝났다. 수라는 신부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안수를 받고 자리를 떴다.
‘나름 보람은 있네.’
18시 40분, 순배가 대림에서 서울까지 문병 왔다. 수라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순배를 맞았다.
“얼굴에 병색이 완연하네요.”
순배가 걱정스럽게 수라를 바라봤다.
“마스크 써서 가렸는데, 그게 보여?”
수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매가 퀭해요. 얼굴도 엄청 작아지고…….”
“아, 마스크를 절대 벗으면 안 되겠네.”
먼 거리를 달려온 순배에게 수라는 참 고마웠고, 기뻤다.
‘역시 거리보다는 마음의 문제지. 서울 사는 지인들은 문병은커녕 연락도 두절되던데.’
수라에게는 서울에 거주 중인 지인이 둘 있었다. 수라가 그들에게 입원 소식을 전하자, 한 명은 시험 준비해야 돼서 바쁘다며 핑계 댔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그 말을 들은 직후 갑자기 답신이 끊겼다.
‘어휴, 공부 하루 안 한다고 시험 결과가 크게 바뀌지 않을걸? 지방에서 서울까지 와서 결혼식 참석하고, 축의금도 냈는데 이럴 때 코빼기도 안 보이냐? 돈이 아깝네! 확, 이혼당해라!’
순배는 호사스러운 과일 바구니를 내밀었다. 문병 선물이라고 했다.
“와, 과일 바구니 엄청 크다! 들고 오느라 무거웠겠다. 나, 이런 거 처음 받아 봐. 어디서 샀어?”
“금와 병원 지하 마트에서요.”
어머니는 이 바구니의 가격이 궁금했는지, 다음 날 즉각 알아봤다. 10만 원이라고 했다.
‘호오, 순배가 돈 좀 쓸 줄 아네.’
20시 10분, 수라는 순배에게 석식으로 빵과 음료를 대접했다. 원래는 제대로 된 식사를 사려고 했으나, 환자는 지하 식당에 출입 금지였다. 환자복을 입지 않은 사람만 식사 가능한 공간이었다. 애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지만, 영업 방침이라니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1층으로 올라가 기념사진을 몇 장 찍은 후, 밖으로 나가 공원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순배는 수라와 만난 지 불과 40분 만에 헤어져야만 했다.
‘출근만 아니면,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는데…….’
순배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수라는 병실에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다. 수라가 순배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윽고, 서서히 출입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순배는 수심이 가득한 낯으로 수라를 말없이 쳐다봤다. 수라는 그를 향해 멋쩍게 웃었다.
‘안타깝고, 애절한 눈빛이었어.’
21시, 수라는 내일 오전에 C.T 촬영을 한다는 말을 간호사로부터 들었다.
“전날 밤부터 팔뚝에 왜 주사를 꽂아요? 이건 환자 중심이 아니고, 절대적으로 의료진 중심이잖아요! 내일 몇 시에 촬영하는데요?”
수라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는 몰라요. 그저, 주사만 놓으라고 지시받았거든요.”
너무 아프고, 불편한 나머지 결국 수라는 바늘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간을 절제했더니, 열이 나서 덥고, 땀이 뻘뻘 흘렀다. 수라는 도무지 잠을 통 이룰 수 없었다. 밤새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6시 30분, 월요일이라서 더 붐빈 탓에 X-ray 촬영을 하는 데만 약 1시간 대기해야만 했다. 수라는 차례를 기다리던 도중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버지를 마주쳤다. 초라한 환자의 모습이었다.
"식사 잘해."
수라는 눈물이 찔끔 나왔다.
7시 30분, 조영제를 투사하기 위한 주사를 수라의 오른팔에 맞았다.
“C.T 촬영 2시간 전인데, 벌써 주사를 맞나요?”
“환자들 일정보다 더 이른 시간에 신경계 간호사들이 움직여야 해서 그래요.”
수라의 질문에 간호사가 대답했다.
‘그래, 한가한 내가 바쁜 간호사들을 이해해야지. 아, 팔이 욱신욱신거린다…….’
9시 30분, 수라는 병원 2층으로 내려갔다. C.T 촬영 동의서가 먼저 필요하다고 해서, 예상보다 더 대기해야만 했다.
10시 25분, 병원 10층에서 카운터에 앉아 있는 간호사에게 수라의 우측 목과 팔에 꽂힌 바늘을 뽑아 달라고 요청했다.
“목의 바늘은 레지던트가 빼는 거예요.”
그녀는 수라의 팔의 바늘만 제거했다.
“그럼, 제가 직접 목 바늘을 빼도 되나요?”
“오, 그럼 급사할 수도 있어요!”
수라는 덜컥 겁을 집어먹고 마음을 바꿨다.
10시 30분, 수라는 병실로 돌아왔다. 이모가 와있었다. 수라는 일단 물을 들이켰다. 솔아가 사 온 두유 1팩, 순배가 사 온 과일을 먹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깎아 놓은 복숭아 2조각, 방울토마토 4알과 이모가 준 송편 2개를 입에 넣었다. 이렇게 꾸역꾸역 먹으니, 대변이 쑥 나왔다.
‘다행이다. 쾌변을 토했어!’
11시 15분, 녹색 상하의 위에 흰 가운을 걸친 여자 레지던트가 수라 목의 바늘을 빼러 병실에 찾아왔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바늘을 제거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침대를 180도로 눕히자 수술 부위가 땅겨서, 복통이 고스란히 수라에게 전달됐다.
“배가 너무 아파요. 침대 머리 부분을 좀 세우면 안 될까요?”
수라가 간신히 말하자, 레지던트가 대답했다.
“그 상태로 바늘을 빼면, 풍이 올 수도 있어요. 안 돼요. 고개는 좌측을 보세요.”
수라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말대로 따랐다.
‘악! 풍은 또 뭐야. 아, 무서워서 정말 정신병 걸릴 것 같아!’
“자, 숨을 가득 들이마신 후 참으세요!”
지시한 대로 수라가 숨을 찾은 순간, 레지던트는 바늘을 뺀 후 무거운 모래주머니로 압박을 가했다.
“그 상태로 바르게 누워서, 1시간 이상 안정을 취하시면 돼요.”
그때, 안내방송에서 코드블루가 언급됐다.
“코드블루가 뭐죠?”
“검사 도중 환자가 즉사한 상황이에요.”
‘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이곳은 정말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곳이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