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이 됐다. 수라를 비롯한 가족들은 승용차를 타고, 금와 병원으로 향했다. 수라는 어젯밤 순배와의 달콤한 추억 회상했다. 행복한 순간도 잠시, 그녀는 영락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이 된 기분이었다.
‘짐승도 끌려갈 땐, 아마 죽음을 예감할 거야. 바로, 지금 나처럼!’
수라 남매가 입원한 곳은 2인실이었고, 아버지는 홀로 다른 병동에 입원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부터 금식이라고 했다. 물을 마시는 것조차 역시 금지됐다.
키 크고 듬직한 남자 간호사가 수술 일정과 주의사항, 병원 시설 등을 친절히 설명했다. 피부가 희고, 눈매가 선해 보였다. 안경을 쓴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 간호사가 수라의 좌측 팔에 주사 바늘을 꽂고 나갔다.
잠시 후, 갈색 머리카락의 예쁘장한 여자 간호사가 링거를 들고 병실에 오더니 물었다.
“제모하셨어요?”
수라는 의아했다.
“제모를 왜 해요? 어디를요?”
“수술 부위에 털이 많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제모하시는 게 좋아요.”
“링거 꽂은 후에 제모하면 너무 불편하니까, 제모를 먼저 하시고 링거를 나중에 꽂는 게 나아요. 제모제를 몸에 바르고, 몇 분 지나서 물로 몸을 씻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팔에 주사를 꽂은 채 샤워하는 건 매우 부자유스럽고, 아파요.”
안내를 마친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고 몇 분 뒤, 눈이 큰 또 다른 여자 간호사가 제모제를 건네러 왔다.
“순서가 잘못된 게 아니에요? 링거를 꽂은 채로 샤워하라뇨!”
수라가 짜증내자, 간호사는 죄송하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수라의 배 위에 제모 크림을 바르고 커다란 휴지 한 장을 덮은 후, 총총히 사라졌다. 제모제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자, 수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윽, 역겨워!’
잠시 후, 수라는 물티슈로 쓱 크림을 닦았다. 그리고, 수건을 이용해 잔여물을 한 번 더 지웠다. 좀 꺼림칙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사를 꽂은 왼팔로 샤워기를 든 채 오른손으로 몸을 닦기가 힘들어서였다.
수라는 아까 링거를 꽂으러 온 간호사에게 다가가 어서 링거를 연결해 달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그녀는 병실에 들어와서 그 이유를 물었다.
“갈증 나서요.”
수라는 대답했다.
‘환자 입장이라고 해서, 병원에서 하는 곧이곧대로 믿고 수동적으로 따르면 아무래도 안 될 듯싶어.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하는 일이니, 실수도 분명 있을 테지. 안 되겠다, 짚고 넘어갈 것은 냉철히 따지고 가야지! 링거를 꽂은 후에 제모했으면, 대체 어쩔 뻔했어? 어휴…….’
예쁘장한 여자 간호사가 위 보호제를 주사했다. 차가운 액체가 왼팔을 통해 흡수되자, 수라는 시원함을 느꼈다. 간호사로부터 받은 음료를 들이켰다. 장을 비워주는 음료라고 했다. 22시, 또 다른 간호사가 수라에게 안부를 물었다.
“대변은 보셨어요?”
“아직이요.”
수라네는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진료실에서 대기했다. 턱수염이 숭숭 난 안경 쓴 남자 의사가 나타나 수술 후 합병증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는 계속 다리를 떨었는데, 수라는 그 점이 눈에 거슬렸다.
서류에 서명하던 도중, 수라는 의사의 허벅지를 살짝 눌렀다.
“신경이 쓰여서요.”
그러자 그가 당황하며, 곧 움직임을 멈췄다.
“혹시, 헌혈 증서를 쓸 수 있나요?"
“복강경 수술에 대해 문의하려는데요.”
가족들의 질문에, 의사는 잘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저는 그저, 동의서 설명과 작성만 담당하거든요.”
‘어휴, 답답하네! 모르면, 알아봐 주기라도 해야되는 거 아닌가?’
수라는 그의 소극적인 태도가 불만스러웠다.
신원 인증을 위해 오른쪽 엄지손가락의 지문을 기계에 대서 확인했다. 마침내, 수라는 취침에 들 수 있었다. 고단한 하루였다. 이제, 드디어 내일이 결전의 날이다. 수술은 8시부터 16시라고 했다.
‘장장 8시간을 어떻게 버틴담? 끔찍하군! 수술 시간이 짧을수록 좋은 거고, 길어지면 여러 합병증이 발생한다는데……. 아, 두렵다!’
23시, 마스크를 쓴 또 다른 여자 간호사가 병실에 와서 수라의 혈압을 쟀다. 내일 예정된 수술 중 수라네 가족이 첫 수술 환자라고 했다. 심지어 수술을 위한 준비는 새벽 5시부터 진행된다고 안내받았다.
‘잠이 안 온다. 잘 자야 하는데…….’
수라가 눈을 다시 떴을 땐, 새벽 4시였다. 불안감 때문인지, 그 어느 때보다 눈이 일찍 떠졌다. 30분 뒤, 변의가 느껴져서 화장실에 갔다.
용변을 보고 병실로 돌아오자, 변이 흘러나와서 다시 변기에 앉아야만 했다. 오물이 묻은 환자복 하의를 새로 갈아입고, 더러워진 옷은 오물실에 내버렸다.
수라가 키와 체중을 재자, 어제 잰 것보다 키가 컸다. 게다가, 체중은 적게 나왔다.
‘이른 아침이라서, 키가 크게 나왔군. 체중이 적게 나온 건, 어제 점심 식사 이후로 금식한 효과인 듯하군!’
어젯밤에 혈압을 잰 여자 간호사가 나타났다. 그녀의 모발은 갈색이며, 앞 머리카락이 꽤 길었다. 수라에게 위 보호제 주사와 좌약을 놓으며 설명했다.
“좌약이 체내에서 다 녹을 때까지 30분 기다렸다가, 다시 대변을 보면 돼요. 수술을 위해서 장을 모두 비워야만 해요.”
7시, 큰 키에 덩치가 있고 안경을 쓴 남자 직원이 수라를 데리러 왔다. 그는 불투명한 푸른 계열의 상의에 검은 하의를 입고 있었다.
수라는 그의 안내에 따라 휠체어에 앉았다. 파란 비닐 신발을 신고, 두 발을 발판 위에 올렸다. 남자는 휠체어를 밀어 수라를 안전하게 수술실 입구까지 이동시켰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간호사는 아닌 것 같은데. 이곳에는 의료진 외에도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이 많구나! 이송 담당 직원도 따로 있네.’
이번에는 진한 파란색의 반팔 상의와 하의를 입은 남자가 수라를 맡았다. 수술실 입구에서 또 긴 통로를 지났다. 수라는 몇 가지 궁금한 점들을 직원에게 질문했으나, 남자는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수라가 궁금한 건 각 방의 팻말에 써진 Rosette라는 글씨였다.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여자 간호사에게 묻자,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장미 매듭의 방’이라는 영어란다.
그녀는 두꺼운 담요로 수라를 덮어주었고, 수술 도구를 흰 천으로 닦는 등 여기저기 청소했다.
잠시 후, 마스크를 쓴 남자 간호사가 들어와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이번 수술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딸 민수라 님의 간 좌엽 24%와 아들 민준우 님의 간 좌엽 26%을 절제해 아버지 민수찬 님에게 이식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저 혼자 수술받나요? 다른 가족들은 어디서 수술받아요?”
“각자 다른 방에서 따로 수술합니다.”
‘아, 한 수술실에서 같이 수술하는 게 아니구나…….’
수술 침대는 좁았다. 남자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수라는 침대에 앉고, 여자 간호사가 수라의 꼬리뼈에 스티로폼을 붙였다. 긴 수술 시간 동안 욕창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여자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라는 상의를 탈의하고 누웠다.
수라가 덮고 있던 두꺼운 담요를 여자 간호사가 끌어당겨 수라의 반나체를 가려주었다.
‘어차피 수술할 땐 다 보일 몸뚱이인데…….’
그녀는 수라의 우측 팔을 들어 올려 어딘가에 고정했다. 겨드랑이가 드러났고, 좌측 팔은 붕대로 고정해 수라의 상체에 가까이 뒀다.
잠시 후, 마취 담당 남자 의사가 들어와 산소호흡기를 수라의 얼굴에 댔다. 그녀는 심호흡을 크게 서너 번 크게 했다. 목구멍 속에서 마취제의 이물질감이 느껴졌다. 수라가 눈을 감자, 곧 무의식의 세계로 빠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