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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떠난 하노이(12)

탕롱 수상 인형극과 기념품

by 슈히 Feb 19. 2025

  숙소 침대에 누워서, 잠깐 눈을 붙였다. 병자의 몸으로 고된 일정을 소화하려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심신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약 30분 남짓 쉬었을까? 인형극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탕롱 수상 인형극은 오후 3시부터 시작이었다. 극장에 도착하니, 인파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들은 발권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이야, 탕롱 수상 인형극의 인기가 대단한걸! 수준 높은 공연이야? 기대해도 되는 거야?"

감탄하며, 다랑에게 질문했다. 그가 대답했다.

  "그건 아닐걸? 하노이는 관광할 만한 게 너무 없어서, 그냥 시간 때우려고 왔다던데. 인터넷 감상평 대부분이 그래."

우리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였다. 하노이에서 특별히 갈 곳이 없고, 흥미로운 활동이 없어서 공연을 보러 온 차였다. 

  "우린 줄 안 서도 돼. 여기서 관계자한테 직접 표를 받으면 된대."

다랑이 설명했다.

  "그래? 근데, 관계자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의아했다. 덩치 큰 남자가 아까부터 우리를 보고 있는 듯했는데, 그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다랑에게 이름을 물었다. 다랑이 대답하자, 사내는 그에게 표를 건넸다. 이렇게 금방 관계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세상에, 얼굴만 보고 어떻게 안 거지? 이게 바로 짬밥인가!"

  극장으로 입장해 착석했다. 빈 무대를 보니, 수영장처럼 물이 있었다. 무대 양쪽에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앞줄에는 엄마와 아들이 앉았는데, 둘이 기념촬영을 하려고 하자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건넸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그러자, 엄마가 반기며 대답했다.

  "4명 나오게 부탁드려요."

옆줄에 딸과 아빠가 앉아 있었고, 그들은 4인 가족이었다. 반면, 내 옆에 앉은 남자는 혼자 온 모양이었다. 씁쓸했다.

  다른 이들이 사진 찍는 걸 보고, 우리도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두어 장 촬영했다. 곧 공연이 시작됐다.

  악공들이 나와 악기를 연주했다. 좌측에 앉은 여자는 비교적 젊고 미인이었지만, 무표정했다. 웃는 표정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반면, 우측에 앉은 여자들은 표정이 밝고 온화했다. 관객들을 향해 내내 웃는 표정이라서, 보기 좋았고 자연스러웠다.

  좌측에 앉은 여자가 악기를 연주했다. 처음 보는 악기였다. 베트남의 전통 악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여자가 줄을 튕겨서 소리를 내는데, 고음이었다. 떨리는 음색이 마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흥미로웠다. 나중에 검색하니, 악기의 이름은 단 보우라고 했다.


  베트남의 전통 악기. '단(Đàn, 彈)'은 '현악기', '보우(Bầu, 匏)'는 '박'을 뜻한다. 단 보우는 오른손에 작은 피크(pick)를 들고 왼손에는 물소 뿔로 만든 특이한 음 조절대(can dan)로 음을 만들어 연주한다. 줄을 튕기면 음 조절대에 연결된 공명통(박)을 통해 소리가 나온다.

  원래는 굵은 대나무 통으로 몸체를 만들고 그 위에 실크 현을 달아 연주했다. 오늘날 단 보우는 개량화를 거치면서 소리를 더 크게 하기 위해 실크에서 쇠줄로 바뀌었고, 왼손의 음 조절대도 대나무보다 더 유연성이 있는 물소 뿔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피크를 가로로 오가면서 터치하는 하모닉스(harmonics) 연주법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발전을 해왔다. (https://namu.wiki/w/%EB%8B%A8%20%EB%B3%B4%EC%9A%B0)



  우측에 앉은 두 여자들은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고, 성우의 역할까지 맡았다. 다랑이 스마트폰 번역기 앱으로 대사를 번역하려고 시도했으나, 먹통이었다. 

  "아이고, 묵묵부답이네. 어쩔 수 없지, 그냥 관람하자."

  앞줄에 앉은 서양인 가족의 어린 자녀들은 초등학생쯤 돼보였다. 아들, 딸들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데, 번역된 음성이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엄마는 열심히 영상을 촬영 중이었다.

  '허, 팔 아프겠다......'

  장막이 열리고, 인형들이 등장했다. 인형과 연결된 줄이 장막 뒤로 뻗어 있었다. 장막 너머에서 누군가 인형을 조종하고 있었다.

  '인형이 넘어지지 않고 잘 움직이네?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농부로 짐작되는 남자 인형들이 열심히 농사짓고, 군사로 보이는 남자 인형들이 힘차게 노를 저어 배를 움직이였다. 화려한 의상을 걸친 여자 인형들이 춤을 추고, 사라졌다. 인형의 크기가 달랐는데, 큰 인형은 신분이 높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거북이가 왕의 검을 입에 물고 사라지는 장면이 나왔다. 다랑이 말했다.

  "베트남 역사와 전설에 관한 이야기인가 봐."

  암수 봉황이 정답게 노닐다가, 갑자기 뿅 하고 알을 낳았다. 그 알에서 박 혁거세처럼 사람이 나오는 건 아닌지, 혼자 상상했다. 알에선 봉황의 새끼들이 태어났다.

  아무래도 인형극 볼 연령은 한참 지났기에, 공연은 시시했다. 언제쯤 마치나, 생각하고 있는데 장막이 열리고, 거대한 인형들이 대거 등장해 관객석 앞으로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인형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들의 하반신은 물에 잠겨 있었다.

  '물속에 계속 있으려면, 춥겠다......' 

  관객들은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극장을 빠져나오니, 오후 4시경이었다. 5시에 피자 포피스(Pizza 4 p's) 예약을 해놨으므로, 1시간이 비었다. 그래서, 또 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이번에도 역시 30분만 머물렀다. 60분 관리를 받고 싶었으나, 이동하는 시간이 더 필요했으므로 시간이 촉박했다.

  현지식을 선호하는 나와는 달리, 다랑은 유독 피자를 먹고 싶어 했다. 마침 숙소 인근에 피잣집이 하나 있었다. 그걸 보고, 그는 피자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던 중, 콩 카페에서 만난 어느 한국 남자가 포피스를 극찬하며, 추천했다. 

  "피자가 진짜 맛있어요. 꼭 가보세요!"

전혀 몰랐던 정보였다. 처음 듣는 상호였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당일 예약은 마감된 상태였다. 다랑이 구글에서 검색하더니, 숙소 근처에 포피스 지점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당장 예약했다.

  인기 있는 맛집이라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포피스를 방문했다. 우리 말고도 예약자들이 몇 명 더 있었다. 다랑은 맥주, 나는 유자에이드를 마셨다. 샐러드와 피자를 주문했는데, 양이 적어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여기 좋은지, 난 잘 모르겠는데. 한 번 실패하고, 어렵게 예약해서 온 거잖아. 근데, 그 정도로 노력해서 올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화덕 피자를 난생처음 먹는 건 아니라서...... 

  "별로였구나. 난 좋았어. 이 저렴한 가격에 화덕 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장점이야."

다랑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우리, 따히엔 맥주거리 가볼까? 괜찮은 곳 있으면, 거기서 뭔가 더 먹어도 되고."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둠이 짙게 깔리자, 맥주 거리는 현란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낮이든, 밤이든 관광객들이 붐비는 모습은 여전했다. 기념품이나 선물을 살 생각으로 상점을 열심히 드나들었는데, 하노이 철길 마을이 그려진 티셔츠를 발견했다. 게다가, 4XL 크기도 있어서 다랑도 입을 수 있었다.

  "오, 드디어 찾았어! 이거 사자.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상품이야."

  상인들이 한국어로 호객 행위하며 우리를 붙잡았으나, 배가 불렀기에 별로 끌리지 않았다. 맥주 거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편의점에 들러 베트남 맥주와 두리안 라테, 김가루가 뭍은 감자칩을 샀다. 셋째 날 일정이 모두 끝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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