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사진: 나이 만 60년 6개월인 중년 (필자)의 카포타사나. 요가시작한지 5년 3개월 4일이 지난 후.
2023년 12월, 만 예순이 되었다. 공자가 "60세에는 귀가 순해져 어떤 말이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하여, 예순을 이순 (耳順)의 나이라 한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한 유투브 강의에서 이순의 나이부터는 무성욕이 된다는 조금 더 생리학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이 근본원인은 중년부터 시작되는 근육량의 급격한 감퇴다. 몸의 신진대사도 변하여 예전과 비슷한 양의 식사를 하여도 체중이 불어나고, 그에 따른 질병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 건강의 쇠퇴다. 그 쇠퇴를 느리게 하기 위해 현대의학의 산물인 여러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나는 대략 6년 전부터 약 대신에 다른 방식으로 건강을 유지하여왔다. 사실 지금의 내 몸은 60 평생 가장 단단한 상태다. 속된 말로 슬림탄탄.
2019년 3월, 만 55살 때 요가라는 것을 시작했다.
내가 사는 곳은 미국 버지니아주 소도시 샬롯스빌 (Charlottesville)이라는 곳이다. 2005년에 이곳에 있는 버지니아대학에 교편을 잡아 이주를 하였었다. 그후 십여년을 물리학연구와 수업으로 바쁘게 지냈다. 그리고 어느날 거울을 보니, 반백의 사내가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오십대 초입이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때가 20대 중반이었는데, 눈깜짝하자 중년이 되었다. 반세기를 넘게 살아온 몸은 여러 곳에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뻐근한 목, 결리는 어깨, 아파오는 무릎 관절, 삼층에 있는 연구실까지 층계로 오르면 헉헉거리는 숨. 그 전에 거의 운동을 하지 않은 결과였다. 그래서, 못하던 수영을 시작했다. 몇 개월간, 수영장 물을 많이 먹으면서도, 거의 매일 연습을 한 끝에, 초보자딱지를 떼고, 수영이 재미있어졌다. 주중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주고, 수영장에 와서, 수영하고, 샤워하고, 그리고 연구실로 출근을 하였다. 그러한 일상이 한 일년 쯤 경과된 후부터, 가끔 수영장 탈의실에서 한 젊은이와 마주치기 시작했다. 매우 긴 머리카락을 뒤로 사무라이 상투처럼 묶은 것이 특이한 젊은이였다. 수영장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탈의실에서만 마주치곤 하였다. 외모로 볼 때, 동양인과 서양인을 부모로 둔 젊은이였다. 그리곤, 3년 정도 더 지났다. 그 사이에, 눈이 마주치면, ‘하이(Hi)’하기도 하고, ‘오늘 좋은 하루가 되길 (Have a good day)’이란 의례적인 인사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조금 더 깊은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었다했다. 자기는 수영은 못하고, 수영장 바로 앞에 위치한 요가실에서 아침마다 요가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수영장에 오며 지나칠 때마다, 그 곳에서 5-10명 정도가 무언가 심심한 몸 동작을 하는걸 보곤 했었다. 내가 워낙 사교성이 없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더 이상 깊은 사이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19년 3월 1일, 금요일. 다시 그와 탈의실에서 마주쳤다. 그날따라, 요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내가 물어보았다. 날씨 탓이었을까. 그날따라, 아침 차가운 수영장에 들어가는 것에 약간 심드렁해져 있었나보다. 그가 요가수업 수강신청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날 부로 별 생각없이 신청을 하였다. 첫 강의는 3월 3일 일요일 아침. (그때는 일요일에도 요가수업이 있었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의 이름은 아쉬탕가요가. 아쉬탕가요가가 무엇인지도 전혀 모른채 그 요가수업에 갔었다. 그리고 그는 며칠 후 샬롯스빌을 떠났다. 여자친구가 메사추세츠주 작은 도시에 소재한 대학에 금속공예하는 프로그램에 일자리를 얻어, 자기도 그곳에 가서 일을 찾아볼 거라며 떠났다. 그러니까, 몇 년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지내다가, 어느 해 봄이 다가오는 날 우연한 만남에서 나를 이 요가로 인도한 이 친구가 문득 떠난 것이다. 커피/차 한잔도 못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이렇게 스쳐 지나간 인연으로 시작된 아쉬탕가 요가를 꾸준히 수행한지 이제 5년 7개월이 넘었다. 이제 요가는 나의 일상에서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아니, 나의 삶은 새벽에 수행하는 요가를 중심으로 짜여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그리고 간헐적 단식을 한다. 아쉬탕가 요가는 다섯가지 시리즈가 있다고 한다. 초급, 중급, 고급 A, B, C, 시리즈. 요가를 시작한지 첫 일년가량은 초급시리즈의 아사나들을 배웠다. 그후엔, 초급시리즈에 더해서 중급시리즈의 아사나들을 하나씩 추가로 배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행하는 중급시리즈 아사나의 숫자가 많아졌다. 현재는 나의 요가 루틴은 중급시리즈 전체와 고급시리즈 A에서 몇가지 아사나들을 수행하는 것이다. 고도로 숙달된 요기들은 이 루틴이 대략 한시간 반이 걸릴 것이다. 난, 아사나들을 천천히 하고 또 중간 중간에 땀을 닦으며 잠시 쉬기도 하여 대략 2시간 30분이 걸린다.
요가는 나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나의 일상을, 나의 몸을, 나의 식생활을, 이 모두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중년의 삶을 위한 건강 뿐만아니라 취미생활도 바꾸었고, 친구들도 바뀌었다. 이 에세이집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