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
- 나.
'밥을 먹어야허는디.'
전화기 저편에서 어머니는 말한다. 이놈의 막내아들녀석이 밥을 먹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같으시다. 한국사람은 밥을 먹어야허는디. 어머니의 철학이다. 힘들고 굴곡이 많았던 한반도에서 90년이 넘는 길고 긴 세월을 산 한 여인의 삶에서 우러난 종교다. 흰 쌀밥. 밥심. 그것으로 이 여인은 긴 인생을 버티셨다.
- 어머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이 내곁을 떠난지 벌써 40년이 훌쩍 흘렀다. 쬬깐혀서 무거운 가방을 들면 땅에 질질 끌 듯 하던 꼬맹이 시절에 가까운 도시로 떠났다. 그 뒷모습이 얼매나 안씨러웠던지.. 그 다음엔 서울로, 그리고는 몇년 있다가 태평양 바다를 건너가부렀다. 떨어진 거리가 멀어져도 애틋한 마음은 더 커져가기만 하건만, 길어진 거리만큼이나, 날 찾아오는 빈도수는 줄어갔다.
가끔 찾아올때마다 아들녀석은 변해갔다. 하애지는 머리카락만은 아니었다. 2년전에 왔을때는, 한여름 더운날 방안에서 요상허게 몸을 비틀며 땀을 뻘뻘 흘렸다. 요가라나 뭐라나.
그놈의 코로나때문에 2년만에 날 보러 한국에 온 녀석은 바로 오지도 못하고 지 누나가 사는 도시에서 자가격리를 한다고 헌다. 2주간이라는데, 시간이 참 안간다. 혼자서 어찌께 밥을 해먹는지 걱정이다. 근디, 딸내미 말로는, 그놈이 거의 암것도 먹지 않는다고 헌다. 고기도 안먹는다커고. 뭐시, 과일이랑 채소랑, 달걀만 먹음시롱. 몸은 빼빼말랐다고 허고. 아이구, 밥을 먹어야허는디. 야가 인자는 밥도 안묵고 뭘 먹고 사나.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사는디. 그러고, 살도 좀 쪄야허는디. 걱정이다.
- 어머니와 나
아침마다 안부전화를 드린다.
'밥 먹었냐.'
'아뇨, 저 아침 안 먹어요.'
'아침밥을 잘 먹어야허는디.'
'우유 덥혀서 마셨어요.'
'아이구, 그리도 밥을 좀 먹어야제.'
'다른 것들 많이 먹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구, 한국사람은 밥을 먹어야제. 누나가 밥 좀 해다 안주냐?'
'...'
'...'
'저 한국에서 오래 안 살아서, 이제 한국사람 아니예요.'
'응?'
'...'
'...'
.
.
.
.
'제가 토요일에 가면 밥에 국 해서 같이 드시죠.'
'그려. 아이구.'
- 어머니.
아이구, 이놈 참 까탈스럽다. 어려서부터 까탈스럽더니, 머리가 반백이 되야서도 여전히 까탈스럽구나. 아니, 더 까탈스러워져부렀네. 에이구.
추신: 자가격리 종료 후, 어머니 집에 갔다. 애호박, 두부, 파, 다진 마늘, 고추를 넣은 된장찌개와 김치와 함께 흰 쌀밥 한 고봉을 쓱싹 해치웠다. ㅋㅋ 외국에 오래 살았어도, 난 한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