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우리 집에는 부엌 싱크대 위에 거울이 달려있다. 설거지를 할 때나 음식준비를 할 때, 아침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우유를 한잔 마실 때도 항상 나의 얼굴을 비추어 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거울은 정말 나를 예쁘게 비쳐준다. 요즘 나는 노년의 대열에 들어서며 늘어나는 주름이나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를 보며 유수같이 흐르는 세월의 흐름에 무상함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 거울만은 세월의 자취를 살포시 가리고 까므스름하게 탄력 지고 멋있는 모습으로 날 비쳐주며 진짜 “주인님이 가장 예뻐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달콤한 말로 속삭이는 거울 앞에서 깊은 만족감으로 미소도 지어보고 이런저런 표정도 지어보며 스스로 하는 짓거리에 폭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언젠가 워싱톤 디시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차 갔다가 함께 일하는 미국인 P 씨와 저녁식사를 했다. P 씨는 “조금만 더 미소를 띠면 교수님은 가만히 있어도 모든 일이 쉽게 이루어질 거예요. 조금만 부드러운 인상을 보여봐요”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었다. 나는 항상 “스마일”이란 별명이 붙어 다녔고 누구라도 한번 만난 사람은 나를 미소로 얼굴이 밝게 빛난다고 평하곤 했었다. 아마 싱글이며 장애가 있는 소수민족의 여성으로 백인 남성의 아성인 아이보리 타워에서 경쟁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어느덧 나의 모습은 미국인 교수들에게도 가이 두려움을 주는 강인한 표정으로 변했나 생각했었다.
나의 엄마는 웃을 시간조차 없었다. 원래 나와 말을 할 기회도 적었었지만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살림을 이끄시느라 무척 바쁘셔 얼굴을 볼 틈이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웃음을 가르쳐준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먼 친척 되시는 유모할머니로 내가 태어나서부터 5살까지 나를 키워주신 분이다. 나는 첫돌이 되기 전부터 몸이 약해 1년 정도 병원에 입원을 시키라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너무 어려서 흰색 벽으로 둘린 병원에 자라면 안 된다며 병원 옆에 집을 얻어 유모와 살며 매일 통원치료를 받게 했었다.
우리는 조그만 한옥집에서 살았다. 아침에 부드러운 햇살이 창문이 넘어 들어와 내 얼굴에 부딪치면 살포시 깨인 눈으로 방안이 들어왔다. 간식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백설기를 네모나게 썰어 담은 바구니가 숨겨있는 삼층 반닫이 옷장, 유모가 항상 동백기름을 발라 곱게 빗어 내린 머리를 올려 쪽을 찌기 위해 비스듬히 드려다 보시는 경대, 백열전등이 있어 쓰임새를 잃은 물건이지만 가끔 전기가 나갈 때엔 긴요히 쓰이는 등잔과 촛대등이 보인다. 모두 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안정감을 주는 훈훈하고 낯익은 물건들이었다.
잠에서 깨어 방안 구석구석과 낯을 익히고 있노라면 부엌으로 난 문에 달린 둥근 문고리를 잡는 기척이 난다.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드디어 문이 열리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유모의 얼굴이 온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얼굴보다 더 먼저 밀려들어오는 것은 그분의 환한 웃음이다. 그 웃음은 어려운 세월을 반영한 유모의 얼굴에 수많은 주름을 화알짝 곱게 펴 놓는 것이었다. 그리곤 명랑한 목소리의 “잘 주무셨나? 우리 아가씨?”라는 인사말과 함께 나의 하루는 시작됐다. 난 참 행복했다. 유모할머니의 웃음은 그분의 세계에는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 나의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미국 노동성에서 수천 명의 고용주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고용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결과에 따르면 그 첫 번째 기준이 사회성을 꼽고 있다. 능력이나 기술이 비슷비슷한 응시자 가운데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협력할 수 있는 인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다. 사회성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미소가 아닐까? 또한 엄마의 미소는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자신감을 준다. 어려서 배운 나의 미소가 험한 세상을 헤쳐가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나의 얼굴을 떠났었나 보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잃었을지 모르는 미소를 찾아 우리 모두 오늘부터 다시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예쁘니?”하고 물으며 가장 예쁜 미소를 골라 우리의 얼굴을 치장해 보자. 그리고 그 예쁜 얼굴로 자녀를 바라다 봐 주자.
웃음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복은 덤이다.
이 글은 2009년 1월 28일에서 미주중앙일보 전문가 칼럼에 기재되었던 내용을 업데이트 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