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최고의 대화법이며 치유로 이끄는 길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부를 때마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사함이 벅차오르고 특히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시편 55:1)"라는 구절은 찐 감동이다. 막내이고 장애가 있어 혼자였던 나는 가정에서나 밖에서나 어느 누구도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혼잣말에 익숙하고 외롭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하찮은 말도 가치있게 귀기우리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속의 작은 상처까지 경청하고 응답까지 해주신다. 와! 그 자체가 감동이고 또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어서 이 복음성가를 부를 때마다 신나는 감동과 감사의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한국 리서치 보고 (2024년 2월)에 의하면 72%의 사람이 "최근 한 달 동안 외로움을 느꼈다"라고 답을 했고, 19%는 "거의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나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어 외롭다고 생각했는데 나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는 것이다. 그들도 대화의 상대가 없어서가 아닐까? 쉽게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외로운 존재라고 하지만 1608년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 코리올레이너스 (Coriolanus)"에서 주인공은 로마의 탁월한 영웅이지만 주변에서 외면당해 홀로 두려움에 휩싸여있는 그를 표현할 때 처음으로 "외로운"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했다고 한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대화상대"가 가장 중요하다.
퀴블러-로스 (Elisabeth Kübler-Ross)는 사람이 상실감으로 슬픔을 마주할 때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으로 이르는 다섯 단계의 심리상태를 겪는다고 설명한다. 상실감을 주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단계로 시작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다음은 상실감을 가져온 사건을 마주하는 타협의 단계에 도달한다. 타협단계에서는 혼자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 효과적으로 탈출구를 찾지 못해 우울증의 단계로 빠진다. 어느 순간 불가피한 운명적인 사건을 인정하고 주변과 대화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찾는 수용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중요한 점은 수용의 단계까지 점진적으로 진행되지만 사람마다 수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진행 속도가 매우 다르고, 또는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기도 하고, 수용의 단계에 이르러서도 다른 단계의 감정들이 때와 상황에 따라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는 임신기간 내내 아이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앞으로 함께할 행복한 삶을 꿈꾸며 예쁜 아기가 태어날 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데 조산을 하거나 태어난 직후 장애로 판명을 받는 순간에 부모가 겪는 그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장애일리 없어"라는 부정의 단계를 시작으로 분노, 타협, 우울증의 단계를 거치며 마지막에 수용이라는 성숙한 심리단계에 도착한다. 성서적 특수교육에서는 장애아 지도만큼이나 부모님들이 하나님 안에서 장애를 수용을 하고 세상과 소통을 하며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자녀의 장애로 인한 상실감을 이겨내야 하는 부모들은 각기 다른 감정의 단계에 있으며 장애를 수용한 부모들도 순간순간 자녀의 장애를 부정하고 싶고, 분노하고, 우울하고, 속으로 타협해 보려는 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는 가장 큰 힘은 대화를 통한 인간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다. 대화의 방법은 역시 "대화의 달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막 4:23)"며 듣기 능력을 강조하셨다. 또한 듣기 능력의 최종 목적은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25).” 즉, 장애아동과 부모님들을 회복하게 하고 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열심히 들어야 하고 그로 인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절에 가보아도 인자한 엷은 미소의 부처님 상에서도 유독 신체비율에 맞지 않는 큰 귀가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도 역시 인간세계를 경청하고 계시고 속세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 듣는 힘이라는 비결을 전하는 것 같다.
특수교사로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에 동참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거나 억지를 부리고 이기적인 요구를 해서 매우 힘들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적으로 그들이 아직 장애로 인한 상실의 아픔을 아직 수용하지 못한 다양한 심리적 상태에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부모님의 행동이 교사에 대한 도전이나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서적 특수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목회자, 자원봉사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고통받는 이들을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심 (시편 9:12)"을 본받아 부모들의 "작은 신음소리"까지 듣고 또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소명의 첫 단계인 것이다.
교회생활이 바쁘고 고되다 보니 가끔은 "일"중심으로 분주한 주일을 보내곤 한다. 그렇게 바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를 통해 정확히 알려주신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타의 가정을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손님맞이에 몸과 마음이 분주했다. 반면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마르타는 손님맞이를 열심히 하는 자신의 노고를 알아달라는 듯이 예수님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리아에게 언니를 도우라고 말해주기"를 청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느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눅 10:41-42)"라 하셨다. 교회에서 일과 활동으로 바쁜 우리에게 우선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
좋은 대화법인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은 타인과 대화를 할 때 공감하고, 감사하고, 종합적으로, 분석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모델을 제시한다. 화자에게 완전히 주의집중을 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가끔 질문을 짧게 하여 듣고 있다는 진정성과 듣고 있는 내용의 정확성을 알려주며, 마지막에는 들은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말해주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 시에 눈을 맞추고, 적극적인 듣는 몸자세를 취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장단을 맞추는 "아!""그렇군요"등 짧은 응답을 해서 경청하고 있음을 알리는 등 다양한 실천방법을 훈련하고 있다. 듣는 방법이나 대화법은 타고난다기보다는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기술인 것이다.
이론에 따른 경청법과 그를 실천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성서적 특수교육을 담당하는 우리는 먼저 솔로몬처럼 기도하는 법를 배워야 한다. 지혜의 왕으로 지칭되는 솔로몬도 재판에 나서기 전에 하나님께 구한 것이 있었다. 바로 "듣는 마음"이었다. 솔로몬은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10)"라고 기도했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전에도 후에도 그런 현명한 사람이 가장 현명한 지혜의 왕으로 만들어 주셨다. 바로 "듣는 마음"을 통해 솔로몬과 그 시대의 사람들 모두가 의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듣는 방법을 배우기 전에 "듣는 마음"을 청하는 기도를 함으로 성서적 특수교육을 이끌 수 있다.
특수교육 전공자로서 특수목회에 이바지하시는 목회자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전체 성도들과 나눌 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 캘리포니아 풀러신학대학 (Fuller Seminary)에서 목회학을 수료했으나 특수교육이나 교육방법이라는 틀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글이라 성경말씀을 현대적 표현으로 쓰기도 하고 또 해석을 잘못했을 수도 있음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이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