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교육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교육은 학생이 졸업 후 사회인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시험성적으로 판단되는 교과서 속의 지식보다도 교육 중에 터득하는 지혜, 결정능력, 표현방법, 협동능력등이 사회생활에서는 더욱 빛을 발휘하게 된다. 미국교육에서 모든 교육과정이 각 교과에서 다루는 지식체계의 끝에 "문제해결능력"이 교육의 최종 목표로 정해져 있다. 교사는 도움을 주는 역할과 학생이 주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응원군 역할을 담당한다. 특수교육은 중학생 때부터 사회진출 후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에 초점을 둔 전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전환교육의 달인이시고 우리에게 전환교육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시다. 바로 여호와 "이레"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중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올라가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셨다 (창 22). 하나님께서는 이삭대신에 번제 할 어린양을 미리 "준비"해 두셨다. 즉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준비하셔서 인류의 구원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리 "준비하는"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다. 전환교육은 미래의 자립적인 생활을 위해 바로 어린 장애아동들을 미리 "준비시키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여호와 이레를 경험하려면 먼저 믿음으로 움직여야 하듯이 장애아동이 자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장애를 넘어서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을 믿고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전환교육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하는 말씀처럼 어려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교를 떠나 사회에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노년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어릴 때 가르쳐서 늙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성서적 목표는 "섬기는 자"와 "닮아가는 자"이다. "섬기는 자"는 겸손과 사랑으로 남을 섬길 수 있는 크리스천 리더십을 교육하는 것이다. "닮아가는 자"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예수님의 삶을 배우며 자신을 변화발전시키는 의무와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다.
한경국립대학교로 통합되기 전의 한국복지대학은 2001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장애인을 위한 대학교로 설립되었다. 국회 청문회에서 이미 장애인을 위한 직업교육기관들도 있고 장애인 우대정책으로 대학교육의 기회도 있는데 왜 장애인을 위한 대학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나왔었다. 나는 남자대학은 없는데 왜 여자대학은 있는 것일까? 남자위주로 편향된 남녀공학 제도 속에서 늘 여자들은 뒷전이다. 예를 들어 회장자리는 남자의 차지가 되고 여자는 아무리 뛰어나도 부회장이다. 그래서 여자대학은 여성의 리더십을 계발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와 같이 일반 대학교에서 학문적 교육은 받는다 하더라도 지도자적 역량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에 장애인들 만의 국립대학이 필요하다는 사견을 말한 적이 있다.
크리스천 리더십은 양치는 목자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성숙한 크리스천이 실천해야 하는 리더십의 모델이다. 특수목회가 장애아동에게 늘 필요이상의 도움을 주고 가르치고 교정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면 의도치 않게 수동적 크리스천으로 양육하게 된다. 성서적 특수교육에서는 전환교육은 궁극적으로 각 개인에게 주어진 달란트에 따라 다양한 방향과 방법으로 남을 "섬기는" 리더십을 계발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특수목회는 전환교육을 하기 위해서 장애인이 교회 내 또는 지역사회의 작은 일이라도 직접적인 도움을 베푸는 활동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성서적 특수교육에서 또 다른 중요한 목표는 "닮아가는 자"가 되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닮아가는 자"로 교육한다는 것은 평생교육의 기회를 의미한다. 일반 교회학교에서 다양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장애인 교인을 위해 "제자양성 I, II, III"처럼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이 있다. 특수목회에서도 그와 같이 다양한 수준의 교육자료와 교육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교육의 중요함과 필요함을 알고 교육기회를 찾아 동참하는 역량을 키워야만 한다. 이것은 전체 일반 목회자들에게도 강조되어야 한다. 늘 배우고 깨달음의 시간을 가짐으로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돼라 (고전 11:1)"라고 말한 것과 같이 늘 "닮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특수교육에는 특수교사 외에 보조교사가 있듯이 전환교육에는 직업훈련을 위한 잡코치 (Job Coach)와 자립생활 코치등이 있다. 잡코치의 개념은 특수목회에서 자원봉사자의 역할과 비슷하다. 하나님은 기원전 16세기에 이미 도우미의 가장 효과적인 모형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어 "애굽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자유롭게 하라(출 3:4)"고 하시자 모세는 자신의 말하는 능력이 부족하니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했다(출 4:13).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말을 잘하는 아론을 잡코치로 배치하신다. 아론의 직책은 "모세의 대변인 역할 (출 4:15-17)"이라고 분명히 모세와는 다른 역할을 주셨다. 그래서 모세는 언변이 좋지 않았어도 잡코치 아론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는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특수교사와 보조교사는 교육정도도 다르고 각각의 역할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경험이 많은 보조교사와 초보 특수교사 간의 갈등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론은 모세를 돕는 일을 꽤 오래 했으면서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을 볼 수 있다. 애굽을 나와서 처음으로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 모세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서 전쟁의 승패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출 17:9). 여기서도 잡코치와 보조교사, 또는 특수목회의 자원봉사자들의 올바른 실천방법을 볼 수 있다. 성서적 특수교육에 참여하는 목회자와 교사와 자원봉사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꼭 지키는데 충실하기 위해 아론과 훌의 보조활동에서 배워야 한다.
모세가 지팡이를 손으로 높이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데 모세가 피곤해 팔을 들고 있을 수 없으면 아론은 훌과 함께 보조를 한다. 피곤한 모세를 돌을 가져다 앉히고 양쪽에서 아론과 훌이 팔을 받쳐주는 것이었다 (출 17:12). 많은 보조교사들이 아동을 대신해 들어주는 과실을 범하는데 이때 교육에서 추구하는 목표와는 다르게 아동의 의존성을 키우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아론과 훌은 쉽게 모세와 셋이서 서로 돌아가며 한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두 사람은 쉬는 방법을 쓰면 더 오랫동안 지팡이를 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세 양쪽에서 지팡이를 들도록 팔을 받쳐주는 코치 역할에 충실했다. 그들이 도와준다며 대신 들어주거나 힘을 내서 들고 있으라고 응원만을 하는 것보다 주어진 도우미의 역할에 충실할 때 전쟁에서 이기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성서적 특수교육에서는 목회자, 교사,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도와주는 역할"을 감당해야지 "대신해 주는 역할"이 아님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리더십 능력은 태어나는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고 학습에 의해 계발되는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성서적 특수교육의 리더십 계발은 “리더는 타고나거나 육성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다 (국민대학교 백기복 교수)”고 보는 것이 맞다. 교육활동이나 치료와 같은 복지활동을 할 때도 우리가 주어진 도와주는 역할에 충실하기만 하면 바로 각 개인에게 주어진 달란트에 따라 하나님이 선택한 시간에 리더로 세워주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특수교육 전공자로서 특수목회에 이바지하시는 목회자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전체 성도들과 나눌 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 캘리포니아 풀러신학대학 (Fuller Seminary)에서 목회학을 수료했으나 특수교육이나 교육방법이라는 틀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글이라 성경말씀을 현대적 표현으로 쓰기도 하고 또 해석을 잘못했을 수도 있음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이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