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는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찬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어요. 혼자서 힘들지 않아요?"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에요, 도착하는데 30분쯤 걸리죠?"
"혼자 할 수 있어도 다 하지 말고 같이 해요,
그리고 집까지 그냥 갈 테니까 번거롭게 나오지 말아요"
"진서 데리고 가니까 바로 할머니 집으로 가서 준서 데리고 가요"
"알았어요, 그럼 조금 이따 봐요"
"엄마"
'엄마'라는 소리에 산하가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진서가 자동차 뒷 자석 카시트에 앉아서 자신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진서에게 다가가 창문을 통해 진서에게 인사를 했다.
"진서 잘 지냈어?"
"응"
진서의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보조석 문을 열어 차에 올랐다.
"집에 얘기는 잘하고 온 거예요?"
"네, 진서랑 같이 오빠 집에 놀러 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어요"
"진서, 낮잠 잤어?"
찬영의 얘기를 들으며 그녀는 몸을 돌려 보조석 뒤에 있는 진서를 바라 보았다.
"응, 할머니가 재워 줘쪄"
"잘했네, 오빠랑 같이 노는 거 알고 있는 거죠?"
눈은 여전히 뒤쪽에 있는 진서에게 향해 있지만, 질문은 옆에 앉아 있는 찬영에게 한다.
"얘기해 줬어요, 산하 씨 만나서 오빠한테 간다는 말도 해 줬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진서 옆에 앉을 걸 그랬어요, 아기가 뒤에 있으니까 계속 뒤를 보게 되네요"
"그럼, 진서 말고 나를 봐요"
농담 같은 이야기를 한 찬영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있지만, 시선은 여전히 자신의 딸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산하 씨, 진서가 엄마라고 하는 거 거슬리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고 알려 줬는데도 소용이 없네요.
준서가 들으면 기분 안 좋을 거 같은데 산하 씨 생각은 어때요"
"저는 괜찮아요, 나중에 진서가 마음 다칠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준서는 저도 잘 모르지만 진서가 아직 어리니까 뭐라고 하거나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 거에요. "
준서 이야기를 하는 사이 바람에 흩날리는 산하의 긴 머리카락을 정리해 준 찬영은 별 말 없이 준서를 데리러 가기 위해 차를 출발 시켰다.
오랜만에 산하를 다시 본 진서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뒷 좌석에서 아기 상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올라가서 준서 데리고 올게요, 시간이 조금 걸리 수 있어요. 진서야 준서 오빠 데리고 올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갔다 와요"
오빠를 데리고 오겠다고 아빠랑 잘 기다리고 있으라고 얘기를 하고선 산하는 차에서 내려 친정으로 향했다.
산하는 식탁에 앉아 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일 준서랑 어디 가기로 한 거야?"
"어디 가기로 한건 아니고, 준서 친구랑 오늘 우리 집에서 텐트 놀이하기로 했어요"
"텐트 놀이?"
"네, 거실에 텐트 치고 아이들끼리 노는 거예요, 잠도 같이 자고"
"요즘 애들은 그런 거 하면서 노는구나.
준서가 다른 날 하고 다르게 좀 들떠 보이더니 이유가 있었네.
처음으로 텐트에서 잠도 자 보고 이번 어린이날은 특별하게 보내네"
친정 엄마의 말에 준서를 바라보면서 산하가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게요, 지금까지 못해준 게 많았는데 이번에 하나는 해보게 돼서 다행이에요"
친정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산하야"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준서 아비한테는 연락 없었어?"
"네... 생일이나 이런 날에는 전날 연락이 왔는데, 올해는 생일에도 선물만 보내고 오늘도 아직까지 연락이 없네요. 일이 많이 바쁜 건지 말 안 해도 기다리고 있을 텐데"
혹시라도 준서에게 들릴까 봐 산하도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거실에서 짐을 챙기는 자신의 아들을 돌아보았다.
산하와 할머니가 얘기를 하는 동안 할아버지와 거실에서 짐을 챙긴 준서는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도 잊지 않고 하고는 현관을 나섰다.
"준서야, 진서랑 진서 아빠가 준서 데리고 같이 간다고 일층에서 기다리고 계서"
"어, 그래!"
지난 만남 이후 찬영을 좋게 받아들였는지 가끔씩 안부를 묻고는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준서가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가니 찬영이 운전석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준서,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네, 진서야"
준서는 찬영에게 인사를 한 후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진서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자신을 부르는 준서를 본 후 오빠를 연호하며 양손을 바쁘게 흔들고 있다.
찬영은 준서를 운전석 뒷자리에 앉히고 문을 닫아 준 후 산하가 들고 있는 준서 가방과 선물 상자를 받아 트렁크에 실은 후 운전석에 올라 차를 출발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찬영은 제일 먼저 내려 뒷 자석에서 준서를 내려 준 후 손을 잡고 자동차 앞쪽으로 데려왔다. 그 사이 산하가 카시트를 분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산하 씨, 벨트 풀기만 하고 그냥 둬요.
진서는 내가 내릴 테니까 이리 와서 준서 데리고 있어요"
준서를 산하에게 인계한 찬영은 카시트에서 진서를 분리한 후 자신의 한 팔로 안았다.
찬영이 진서를 안은 채 트렁크에 있는 짐을 꺼내려고 하니 산하가 찬영을 불러 세웠다.
"트렁크 짐은 제가 꺼낼게요, 그렇게 안은 상태에서 꺼내다 다쳐요"
찬영은 산하에게 알겠다고 한 후 나머지 한 손으로 준서 손을 잡고는 그녀가 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로 앞장 서서 걸어갔다.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양친 부모 슬하에 일남일녀 자녀가 있는 단란한 가족이었다.
오늘 이벤트가 궁금했던 준서는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먼저 내려 비밀번호를 누르고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엄마 텐트가 너무 예뻐"
여름이라 사위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 조명은 켜지 못했지만, 거실에 설치되어 있는 인디언 텐트와 거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만국기까지 '예쁘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잘 꾸며져 있었다.
"아저씨가 준서 보여 준다고 만들어 주셨어"
"오~ 너무 예뻐요"
준서가 아주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예쁘다'는 말을 반복하니 찬영은 흐뭇한 마음으로 준서의 머리를 부드럽게 만져 주었다.
준서를 따라 진서도 텐트와 천장에 붙어있는 만국기도 구경하면서 거실을 둘러보다 카펫 위 올려져 있는 선물상자를 발견했다.
"이거 진서랑 제거예요?"
준서가 찬영을 돌아보며 물어보니 찬영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작은 게 진서 거고 큰 게 준서 거니까 조심해서 뜯어봐"
"네, 이따 저녁 먹고 열어봐도 되죠?"
"그럼"
"오늘은 일곱 시쯤 저녁을 먹을 건데 그전에 준서 뭐 좀 먹을래?"
"아니요, 할머니 집에서 간식 먹어서 괜찮아요. 기다렸다 저녁 먹을게요"
"알았어, 진서랑 놀고 있어"
거실 구경을 끝낸 준서는 진서에게 자신의 방으로 가자고 했다.
"오빠가 지난번에 만들어준 블록 성 그대로 뒀는데 보러 갈까?"
"응"
준서는 진서를 데리고 블록을 가지러 방으로 향했다.
준서와 찬영이 이야기하는 동안 저녁 준비를 위해 냉장고를 열어 본 후 못 보던 재료들이 보이자 그녀의 눈은 찬영에게로 향했다.
준서와 이야기를 마친 찬영이 얼굴을 돌리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저녁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그가 주방으로 들어서자 산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오면서 장도 본 거예요?"
"네 사람이 2박 3일을 지내야 하니까 먹을게 필요할 거 같아서 사기는 했는데 잘 샀는지 모르겠어요, 장 보는 거 잘 안 해봐서"
"혼자 장도 보고, 텐트도 저렇게 예쁘게 만들고 너무 힘들었던 거 아니에요?"
"산하 씨도, 준서도, 진서도 행복하길 바라면서 한 건데,
세 사람이 행복해 보이니까 나도 행복해서 하나도 안 힘들어요"
출근을 위해 한 옅은 화장기 있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 당겼다.
그의 넓은 품 안으로 쏙 들어온 그녀는 얼굴을 들어 자신보다 위에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텐트도 너무 예쁘고, 이렇게 행복한 시간 만들어 준 것도"
"저녁 준비는 내가 먼저 하고 있을 테니까 씻고 나와요"
튼튼한 두 팔로 산하의 허리를 감싸 안은 그는 자신보다 낮은 그녀의 얼굴 위로 입술을 꾹 꾹 눌러 부드러운 볼에 한 번, 볼록하게 올라온 이마에 다시 더 한 번 키스를 해 주었다.
찬영의 품 안에 안겨 있던 그녀는 발끝을 들어 자신의 바라보고 있는 그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로 답례를 했다.
"좋은데요, 자기 전에 한번 더 해줘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찬영은 양팔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산하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산하와 찬영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준서는 블록 장난감 통을 가지고 거실로 나오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진서의 눈을 가리면서 머리를 좌우로 살살 흔들며 얼른 그 자리를 지나쳤다.
거실에서 준서와 진서의 목소리가 들리자 산하는 찬영의 팔을 풀고 안방으로 향했다.
찬영이 샐러드용 야채를 준비를 하는 사이 산하는 빠르게 세수를 하고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을 올림 머리고 바꾸고는 주방으로 돌아왔다.
산하가 애피타이저로 먹을 빵을 오픈에 넣고 샐러드를 만드는 동안 찬영은 베란다에서 스테이크를 굽기위해 바깥쪽 창문은 열어 놓고 거실 창문은 닿았다. 네 사람의 저녁이 마무리 될 쯤 해가 떨어지면서 사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찬영이 주방 전등을 제외 한 모든 전등을 끄고 거실 창틀에 설치한 캠핑 조명을 켜니 준서와 진서가 환호성을 울렸다.
"우와, 아저씨 조명 켜니가 더 예뼈요"
"이뻐, 이뻐"
준서를 따라 진서도 연신 큰 소리로 '이뻐'를 반복 재생하고 있다.
아이들의 환호성을 뒤로 한채 찬영이 주방으로 들어오다 산하와 눈이 마주쳤다.
"키스 다시 한번 더 받을 만하죠?"
저녁 식사 세팅을 마무리하면서 그녀의 얼굴에 입맞춤을 한 그는 아이들을 불렀다.
"준서야, 저녁 준비 다 됐으니까 손 씻고 와"
준서는 욕실에서 자신이 먼저 씻고 작은 그릇에 물을 담아 진서의 손을 씻겨 준 후 손을 잡고 주방으로 왔다.
자신을 대신해 진서를 씻겨 준 준서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찬영은 진서는 어린이용 의자에 앉히고 준서는 진서 옆자리에 앉혀 주었다.
먼저 먹으라는 찬영의 말에 준서와 진서는 산하가 직접 만든 귤 주스를 한 모금씩 마신 후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잘 구워졌는지 고기를 아이들이 문제없이 잘 먹자 산하와 찬영도 그제야 자리를 잡고 앉아 레드 와인 한 모금 마시는 것을 시작으로 네 사람의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준서는 어린이집 행사에 대해 이야기도 하며, 일곱 살이 되니 어린이집 행사가 이제 재미가 없었는데, 찬영이 만들어 준 텐트는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실제로 보니까 더 예쁜 거 같아요.
사람들이 인터넷 사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아저씨는 잘 만든 거 같아요"
"예쁘다고 해줘서 내가 더 고마워"
자신을 칭찬해주는 준서의 마음이 너무 예뻐 찬영은 고기를 먹느라 빵빵해진 준서의 볼을 톡톡 치며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오늘 엄마랑 같이 자는 거예요?"
"풉! 컥, 컥"
와인을 마시던 찬영의 돌발 질문에 놀라 사래가 들렸는지 기침을 했고, 산하도 입에 있던 고기 씹는 것을 멈추었다가 기침을 하고 있는 찬영에게 물 잔을 건네 주었다.
자신의 질문이 너무 직설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준서는 해맑은 눈으로 고기를 씹으며 답을 달라는 듯 찬영을 바라고 있다.
"음... 어디서 잘 건지는 아직 생각 못했는데,... 엄마랑 같이 자는 건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안되고,
준서랑 진서가 텐트에서 자니까 텐트 앞에서 자도 되고, 준서 방을 빌려 준다고 하면 거기서 자도 되고"
"아직 결혼 안 해서 엄마랑 못 자면 제 방을 빌려 드릴게요"
"텐트 앞에서 자도 되는데"
"그건 왠지 노숙자 같아서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닌 거 같아요"
"아, 노숙자 되면 안 되지, 고마워 준서 방 빌려줘서"
"결혼 안 해서 같이 못 자도 키스는 해도 되는 거예요?"
"컥!"
이번에는 조금 전 보다 좀 더 큰기침소리가 찬영의 입에서 나왔다.
"사귀는 사이니까 키스는 괜찮지 않을까? 키스도 못하면 사귀는 게 아닌데!"
찬영과 준서의 대화를 듣던 산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럼 사귀는 사이에 키스까지는 해도 되는 거예요?"
"아저씨랑 엄마는 어른이니까 키스까지는 괜찮은데,
준서는 어린이니까 여자 친구 생기면 손잡는 것까지만 가능한 거야. 알았지!"
준서는 찬영의 말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한숨을 쉬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산하의 얼굴을 부드럽게 터치한 후 잔에 남아 있던 와인을 단번에 마셨다. 자신이 생각했던데로 준서는 그녀에게는 아들이기도 하면서 꼬마 장인어른이 틀림이 없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