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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희 Sep 27. 2022

나를 설명하는 말

내가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던 인텔에서의 첫 직장 생활, 그 다음 한국에 들어와 ‘반도체 박사가 왜 이 일을 하냐’는 전형적인 질문에 개인의 철학이 섞인 긴 설명을 매번 반복해야 했던 전략/finance 관련 경력의 시간, 그리고 그 경험 다 살려 투자사에 들어와 딥테크 기업을 검토하고 투자 집행하는 데에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다채롭게 쓰고 있다고 하면 왠지 긴 설명하지 않아도 내 일을 비교적 쉽게 이해하는 사람들의 약간은 낯선(그래서 사실은 좋은) 반응

 

위에 설명한 여러 과정을 거친 나는, 일과 이직을 통한 성장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의 성격을 먼저 잘 이해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해 왔다. 어떠한 자리이든 배울 점이 넘치는 시기가 있고 한 템포 쉴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으며,조직의 염증이 진저리 쳐 질 만큼 잘 보이다가 또 왠만하면 내가 얻는 실제적 이득에 비해 별 일이 아닌 것으로 소화가 되며 내적갈등이 마무리되기도 한다. 여러 상황의 파고를 감내하는 인내가,여기보다는 저기에 뭔가 더 나은 배움이 있지 않을까 조바심 내는 뱃속의 나비(영어 표현에 ‘butterflies in my stomach’이란 말이 있는데, 어떤 성장의 기회가 눈 앞에 보이면 내 안에서 불처럼 일던 그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를 진정시킬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한 회사에서 오래도록 성장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인생의 길이 선택의 연속으로 연결되어 그 삶에 색채를 더하게 되는 가운데 젊은 시절에도 한 곳에 오랜 뿌리를 내리는 꾸준한 길을 선택한 이들을 나는 깊은 마음으로 존경해 왔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한 편, ‘조바심 내는 뱃속의 나비’를 먹이기 위해 “어찌 그런(용감한, 무모한, 어쩌면 생각없이 라는 말 대신이었을 수 있다) 선택을..?”이라는 질문을 받아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직종을 시도하던 내 30대를 돌아볼 때, 나의 원래 모습을 지키며 일해도 괜찮다는 누군가로부터의 약간의 가르침과 나 자신의 수행이 있었다면 내가 지나온 기억들 가운데 소위 ‘이불킥’으로 남은 것들이 좀 더 부드러운 경험으로 남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학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테마로 엔지니어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전략컨설팅 커리어로 방향을 크게 바꾸기로 마음을 먹고, 소위 “MBB” 라고 불리우는 글로벌 컨설팅 3사와 모두 인터뷰를 치렀다. 그 가운데, 나를 마지막 인터뷰에서 탈락시킨 한 회사 파트너의 마지막 질문은 “하박사의 엣지(edge)는 뭐에요?"였다. 앞선 케이스 인터뷰에서의 나의 답안이 그의 마음에 똑부러지게 들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질문으로 짐작한다. 어쨌거나, 질문의 의도를 조금 더 파악하고자 어떠한 것을 엣지라 말하는지 예를 들어 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Financial 모델을 기가 막히게 할 줄 안다든지, 파워포인트의 신이라든지 하는 거죠. 하다 못해 담배를 엄청 피우거나 술을 끝내주게 먹을 줄 아는 고로 클라이언트와 어떤 식으로든 어울려서 프로젝트를 의뢰하고 진행하는 진짜 의도를 알아낼 수 있으면 그것도 엣지이고.  그런 거를 하박사는 뭘 가지고 있어요?"


사실 그가 듣고 싶었던 나의 엣지란, 주니어 컨설턴트에게 요구되는 기술 정도에 해당되는 것이었겠지만, 나름대로 인종/국가 출신 그리고 젠더 다양성에 조금은 나은 환경을 제공하던 미국 서부에서 대학원 생활과 첫 직장생활을 했던 30대 초입의 내가 자신 있게 내세우고 싶었던, 나를 설명하는 말은 이랬다.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이 제 엣집니다.”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이런 거였다: 당신들이 사는 척박하고 살벌한 환경 아래, 당신들이 선호하는 인재들을 장기적으로 당신들의 회사에 오래 붙들어 두는 데에 이러한 엣지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지 보여줄 자신이 있다. 


이러한 설명을 아마도 꽤나 겸손한 투로 썰을 풀었을텐데, 지금과 같은 ‘쫌 쎈 언니’로 탈바꿈하기 전의 나는 표현력이 분명 희끄무레 했던 것 같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내용 자체가 그가 원하던 엣지가 아니었던 데다가, 그 시절은 그러한 정성적(定性的) 기술이 리더십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세상에 퍼지기 한참 전이었다. 당연하게도, 그에게서 "그게 이 판에서 무슨 엣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라는 일갈을 당한 뒤 최종 인터뷰였던 그와의 만남에서 나는 시원하게 탈락했다. 내가 내세운 엣지는, 담배를 엄청 피우거나 술을 끝내주게 먹을 줄 아는 것보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요소였을 거다.


지금의 내가 그 자리에 간다면 주니어 컨설턴트를 뽑는 인터뷰 자리에서의 모범답안과 멀어도 한 참 먼 대답 대신 출제자가 듣고 싶어할 스토리를 골라 풀어내는 영악함 정도는 발휘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지금도 사람의 마음에 얽힌 것을 조금 더 잘 읽어내는 데에 가치를 두는 것이 나의 여전한 엣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절의 미숙했던 나는 그 인터뷰 경험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나 자신이 가진 사람이 어쩐지 잘 이해가 되는 성격적 특질과 공학박사라는 길을 걷기까지의 훈련의 결과였던 진득한 공부 버릇 같은 것들이 그 환경에서는 부끄러움에 가까운 것처럼 받아 들여지나보다 하고 이해했고, 컨설턴트로 살았던 시절 나라는 사람의 틀 위에 나에게 맞지 않는 다른 색깔을 덧칠해 보려 노력했었다. 당연히 그것은 나 자신이 컨설팅사에 몸담았던 시간 내내 부자연스러웠고, 스스로를 부자연스러워 하는 나의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도 분명 어색해 보였을 것이다.


‘진짜 나’와 ‘일하는 나’를 다르게 만들며 살지 않아도 됨을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것은 그냥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간단치 않은 마음의 소모가 필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내 어린 두 딸은, 본인들의 길을 찾아 성장해 나갈 때가 되었을 때 나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뱃속의 나비들을 다독이거나 그들이 이끄는 길을 갈 때 늘 자연스러운 자신으로 살기를 바란다. 멀리 돌아가며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아도 속이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 -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 마음을 몇 자로 정리해 두면 내 딸들에게도 마음을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의 30대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공적자아(외부인이 보는 나)’와 나 스스로의 ‘자기개념’이 심히 달라 괴로운 시기였다. 그것은 때로는 나의 미숙한 상상에 기반한 선택에 기인한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상황에 적응하려면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그러나 하정희라는 사람과는 맞지 않는) 조언으로 비롯되기도 했다.

공적자아와 자기개념이 비교적 편안한 화해의 손을 잡게 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낸 뒤인 마흔 다섯의 내가 지금 돌아보자면, 여러 성장의 순간을 그만큼이나 괴롭게 지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사람은, 정말 이상한 사람의 범주 안에만 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느끼기에 그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편안한 말과 그 모습 그대로 사회 생활 안에서의 본인의 효용성을 증명하고 본인의 자아개념을 튼튼히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분위기가 뒷받침 되어야 할 때가, 이제는 되었다고 본다.


엣지의 다른 말은 ‘기술’일 수도 있고, 나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도 본인도, 보는 이도 어색하지 않은 그 상태, 그리고 그 상태를 바탕으로 열변을 토해 내도, 아 저게 하정희이구나 이해가 가는 그 상태. 그 모습이 일하는 하정희 그대로의 모습이어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그 상태. 무엇을 베끼지 않은 나다운 상태.


이 글은, 나에 대한 설명이 진짜 나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내게 필요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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