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퇴근 전, 학부모님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방과 후 한 친구와 이른바 '맞짱'을 뜨고 왔다는 이야기다. 가슴이 덜컹,했다.
유독 아이들끼리 큰 문제없이 1학기를 지내온 상황이라 내 마음이 한없이 풀어진 것도 한몫했으리라.
평소 불같은 성향의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의 성향이 그렇다한들, 정의와 예의를 항상 납득하는 아이였기에 놀라움 반, 잘 해결되리라는 믿음 반의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오늘, 이 문제는 '서로가 잘 지내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물론, 네가 먼저 했다는 식의 주장은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미결 상태로 남았지만 말이다.
처음에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학년부장님과 내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어떻게 보듬으며 이 사건을 마무리지을지 였다.
아이들의 문제는 곧잘 어른의 문제가 되었고, 아이들의 감정은 쉽게 갈무리가 된다고 하지만 어른의 자존심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저마다 가슴에 자식이라는 훈장을 하나씩 달고, 마지막에 가서는 사실이 아닌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 되고는 했다.
그런 모습을 7년간 참 많이도 봐왔고, 비슷한 일이 반복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하필이면 몇 해 전, 학교폭력자치위원회 담당 교사가 되며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끝내는 내 주위에 그득하게 고여버리는 타인의 감정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한 탓이기도 했다.
심정적으로는 백번, 천 번도 이해되는 일이지만, 거기에 절차와 서류가 더해지면 상황은 몇 배로 복잡해졌다.
심판관이 아닌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심판을 해야 하는 일은 항상 버거웠다.
저마다 상처 받은 마음들 앞에 뭐라도 된 것 마냥 굴 수 없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사람이라서 어디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마음을 수없이 다잡느라 버둥거렸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툼은 그토록 단순해 보여도 다만 해결이 쉽지는 않았다.
아들, 왜 맞기만 하고 때리질 못했어
엄마 난 친한 친구와 싸운 게 너무 슬펐어요
입에 멍들고 반에서 구경 온 것보다 아파요
-AKMU, 맞짱(Feat. 잔나비 최정훈)
왜 너는 맞기만 하고 때리지 못했냐고 물어보는 부모의 마음도, 친한 친구와 그렇게 싸우고 싶지 않았다는 아이의 마음도 모두 옳아서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래. 어른과 아이의 마음에는 항상 간극이 존재하고, 부모와 자식은 평생 그 간극을 조율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식은 항상 어렵고 시린 모양이다.
이번 일로 남편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아마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아, 교사로서의 이성과 부모로서의 감정은 매 순간 짜증 날 정도로 줄을 탄다.
그냥 차라리 휙, 떨어져 버리면 후련하고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