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딱지만 한 바다라도 좋아
얼마 전 위드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창원에 계신 시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얼마만의 비행기인가. 매번 그림책 속의 비행기를 보며 '슝~'하던 딸에게 비행기를 실제로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설레었던 것도 같다. 공항으로 가던 길, 택시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요즘 제주도 진짜 많이 가요. 오늘 아침에는 국내선 앞에 차가 얼마나 막혔는지, 원."
어쩐지. 남편에게 항공사 문자가 왔다고 한다. 공항이 붐빌 수 있으니 빨리 수속을 밟으라는 내용의 문자란다. 해외는 아직 무섭고, 비행기는 타고 싶다. 그러니 이왕이면 제주도 그곳이 딱 제격 이리라.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의문 하나. 왜 굳이 제주도여야 할까.
시댁에 다녀오고 일주일쯤 흘렀나. 남편이 문득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겨울에 제주도를 가잔다.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결혼 후 경제적 이유에 치여 여행다운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여행을 가자는 남편의 마음이 참 고맙다.
제주도. 그 세 글자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공항에 내리면 보란 듯이 펼쳐지는 열대나무, 구름과 파란 하늘을 품에 안은 바다, 화산섬 중앙부에 단단히 솟아오른 산, 낮고 높은 오름들이 그리는 장관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자, 이해가 간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화려한 삶을 버리고 낮은 구릉의 소박한 삶으로 돌아가는지.
같이 유럽여행을 떠났던 친구가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 이런 농담을 꺼냈다.
"스위스 들판에 흐르는 냇물이 에비앙이래."
그 비싼 생수가 졸졸 흘러내리는 스위스의 들판이라니! 그때는 깔깔 웃으며 넘겼지만, 이탈리아 북부로 갈수록 점점 달라지는 창밖 풍경에, 어느 순간부터는 둘 모두 하염없이 풍경만 바라봤다. 먼저 말을 하면 지는 게임을 하듯, 청록의 호수와 낮은 들판과 드문드문 심어져 있는 집들을 그렇게 바라보기만 했다.
주변에 스위스에 다녀왔던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견이 비슷하게 모아지는 접점이 있다. 가게들이 너무 빨리 닫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루즈하며, 딱히 재미있거나 익사이팅하지는 않지만 스위스의 풍경은 정말이지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다는 말. 지금도 그때의 유럽여행 사진들을 가끔 들춰본다. 그러다가 유독 사진을 넘기는 손이 느려진다면, 그 부분은 스위스 여행 사진이 곤 했다.
제주도와 스위스. 바로 이런 점이 닮았다.
자연이 그려낸 풍경은 눈을 오래도록 사로잡는다. 오래도록 바라본 것들은 으레 잔상을 남기는 일이 쉬웠다. 그리고 그 잔상은, 마치 당연한 경로처럼 우리 마음에 별사탕처럼 콕 박혀 유독 쓰던 어느 날, 우아한 단맛을 흘려 넣어주고는 했다.
한동안 남편이 부동산에 빠져 같이 임장을 다니던 시기였다. 우리가 살던 동네는 우리 지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비싼 집들의 특징은, 서해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 하나에 집은 무려 몇 천이 더 비싸졌다.
그때는 집에서 바다가 좀 보인다는 게 무슨 이점이 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알게 됐다. 뻥 트인 곳으로 흘러들어오는 햇살이 얼마나 귀중한지, 나갈 곳 없이 베란다에 서서 바라보는 코딱지만 한 서해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될 수 있는지 하는 것들을.
딱딱한 콘크리트에도 풍경의 가치가 투영되는 세상이다. 하물며, 우리 삶이라고 다르겠는가.
내 삶의 풍경은 어떠한가. 나의 풍경에는 제주도가, 스위스가, 아니면 그 코딱지만 한 서해라도 있는가. 아니, 내 삶에는 풍경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있는가. 과연 내 풍경의 색은 어떠한가, 잠시 앉아 고민해본다.
다행인 건, 충분히 풍경이라 할 만한 것들이 내 곁에 있는 사실이다. 온통 밝은 빛을 내뿜는 딸아이가, 든든히 등 뒤를 받쳐주는 남편이, 호기심으로 가득한 스물세 개의 눈동자가, 적어도 내 이름 앞에 붙을 수 있는 많은 이름표들이 나의 풍경이다.
물론 잃은 풍경도 많다. 결혼 전의 자유와 남아돌던 시간 같은 것들. 하지만 같은 나무라도 꽃이 폈다가, 녹음으로 물들었다가, 잎사귀 옷을 벗고 앙상한 가지가 되듯 삶의 풍경도 시시각각 변할 것임을 나는 안다.
이것을 안다는 건 어쩌면 축복일지 모른다. 그러니 이제 내 역할은, 변하는 풍경 속에서 아주 작은 것들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크기와 비례되지 않는 큰 의미를 부여해 감사와 위로를 느끼는 것일 테다.
텅 빈 교실, 아이들이 떠나간 차가운 교실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전 내내, 이곳을 채웠던 따스한 온기 하나하나에게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줘서 고맙다고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