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었다. 아이들은 곧 맞이할 방학과 크리스마스 때문에 한창 들떠있다. 덕분에 아이들은 매일같이 내 머리 꼭대기 위에서 훨훨 날아다닌다. 다른 말로 하면, 생활지도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요즘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단연코 이 세 가지다.
자리에 앉자, 누가 수업시간에 노래를 부르니, 제발 화장실은 뛰지 말고 가자.
내가 잔소리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때마침 교무부장님께서 거대한 압축파일 하나를 전송해주셨다.
이름하야, [2021학년도 생활기록부 관련 자료 모음]
그렇다. 아이들은 연말의 기쁨에 흠뻑 젖어있다만,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생활기록부라는 서류에 멱살을 잡힌 채 눈 뽑힐 기세로 워드를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놈들은 내가 지금 저희들의 행동발달 및 종합의견을 쓰는지도 모르고 앞에서 칠렐레 팔렐레 종이로 만든 인형들처럼 뛰어다닌다. 제발. 선생님이 앉으라고 벌써 세 번 얘기했잖아.
아무튼, 바쁘게 산 지 어언 2주. 총 네 번의 점검을 거치느라 걸레짝이 된 학생부 ver.1은 최종 점검자에게 수합되고, 선생님들은 잠시 숨을 돌리나 싶었는데. 또 교무부장님께서 거대한 압축파일 하나를 보내신다.
이름하야, [2022학년도 학급편성 관련 자료 모음]. 신이시여.
내년도 학급을 편성하는 일은 올해 이 아이들을 지도했던 현 교사의 몫이다. 착실한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생활부라는 벽을 어찌어찌 넘자마자 또 학급편성이란 산맥을 눈보라 맞아가며 헤쳐나간다. 다행히 이 작업은 학년 선생님들과 함께라는 점에서 그래도 조금 수월하다.
자, 두꺼운 등산장비를 입고 높은 히말라야의 눈보라를 헤쳐나가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각자 한 손에 아동 명부, 다른 한 손에는 연필과 지우개를 든 여섯 명의 선생님들이 몰아치는 눈보라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나누는 대화이다.
"부장님!!!!! 가 반에 얘는 필시 쟤랑 떨어뜨려야만 합니다!"
"아악! 2반 선생님! 그 반 생활지도 요망 학생은 내년에 몇 반이지요!"
"어머나! 라 반에 이름이 똑같은 애들이 있어요!!!!!!"
"쌍둥이! 얘네 쌍둥이끼리 붙이나요, 떨어뜨리나요!"
"학부모한테, 전화해보세요! 선생님!!!"
헉헉. 무려 두 시간의 고된 블록 맞추기가 끝나고 드디어 완성된 2022학년도 새 학급편성을 서류화한다. 무슨 서류가 이렇게도 많단 말인가, 도대체!
오늘로서, 가장 큰 학기말 업무가 두 개 끝났다. 그래. '가장 큰'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이 외에도 비전자 문서 등록, 건강기록부 마감, 통지표 작성, 체험학습 문서 대장 정리, 그 외에도 소소한 학기말 서류 정리들이 빼곡하게 남아있지만 일단 오늘은 학급편성을 끝냈기에 다른 일은 내일의 나에게 넘기도록 하자.
그 와중에 하교를 하던 한 녀석이 물어본다.
"선생님! 크리스마스 카드는 언제 만들어요?"
...... 할 말은 많지만 굳이 하지 않겠다.
"얘들아, 너희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멋진 12월이지만, 나에게는 그저 할 일 많은 학기말이란다."
"아하!.... 근데, 학기말이 뭐예요? 그래서 카드는 언제 만들어요?"
엉엉. 내가 괜한 얘기를 했어. 미안해. 밥 다 먹었으면, 얼른 학원차타러 가. 사범님이 기다리셔.